4. [인생나침반] 명문대 프리미엄의 탄생과 변이

명문대 프리미엄이 약화된 것을 사라졌다고 착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

by 열혈청년 훈

서론 : 知彼知己 百戰不殆


일부에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지피지기 백전불태로 오늘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유명한 손자병법 모공편에서 나오는 말로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지피지기가 되어 있으면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으며, 설령 패배할 경우에도 치명상을 피해 재기를 위한 기반을 남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는 때로는 이기는 것만큼이나 잘 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단판승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명문대생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명문대생이 누리는 프리미엄이 뭔지를 제대로 탐구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프리미엄이 적용되지 않거나 비교적 약하게 적용되는 분야에서 승부를 걸어볼 수 있습니다.



1. 희소성의 원칙


인류가 '저장'이란 개념을 생각하고 실현해냄으로써 잉여생산이 발생한 이래 인류의 역사는 이 잉여생산물을 누가 생산하고 어떻게 분배할 것이며 그 분배를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해도 크게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장담컨데 문명, 역사가 시작된 이래 잉여생산을 가장 많이 소유하는 지배계층은 실제 그 시대의 부를 창출한 생산계층보다 언제나 소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한 산수입니다.

10억을 10,000명이 나누면 1인당 10만원에 불과하지만 100명이 나누면 1,000만원이 되고 10명이 나누면 1억이 되기 때문입니다.


10명을 이루는 구성원은 각 시대, 각 나라별로 상이했으나 구성원이 1,000명으로 늘어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혈통에 의한 왕, 귀족, 성직자 등이 10명을 구성했으며 19세기에 이르러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에 힘입어 자본가가 구성원에 추가된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명문대 프리미엄에서도 희소성의 원칙이 적용될까요?

정답은 '그렇다'입니다.

다만 명문대 프리미엄이 작동하는 모습이나 영향력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은 달리 나타났다고 생각되는데, 이 부분을 이제부터 차근차근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ㅇ 프리미엄의 정의

프리미엄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만, 앞으로 제 글에서는 프리미엄을 다음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특정한 경력, 자격의 보유만으로 경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게 하는 제반사항"


예를 들어 특정 경력과 자격을 보유한 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선발하는 가장 강한 단계에서부터, 다른 사람들의 이력서는 3초 보고 넘어가지만 일단 심사자의 눈을 붙잡아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읽게 만드는 약한 단계까지를 프리미엄으로 아우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프리미엄을 이렇게 정의하는 이유는 지원자의 역량과 준비가 상향평준화되고 허수경쟁자가 적은 상황에서는 아주 작은 사소한 차이도 당락을 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1930~60년, 대학졸업 = 실업인 시절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을 얘기입니다만 대학졸업이 곧 실업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최근 실업률이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10~40%대로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1930~60년대 우리나라 대학의 취업률은 그 수준으로 매우 처참했습니다.


1930.7.30. 조선일보의 "就職難(취직난)과 內務省統計(내무성통계)" 제하의 기사를 보면,

"동경발, 내무성 사회국 중앙직업소개사무국이 동년 5월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학졸업생 8,288명 중 취업자는 41.8%, 학술연구부문에 들어간 자가 16.3%, 미취업자가 41.9%"라고 나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을 나타내주는 자료는 찾지 못했으나 각종 산업, 경제시설이 일본 그것도 도쿄에 집중되어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당시 대졸자의 취업률은 이보다 낮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정은 광복 이후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악화했습니다.

1949.7.25. 조선일보 "最高學府(최고학부)를나와서도 就職難(취직난)은매一般(일반)"를 보면,

그 해의 대학학부, 전문부 졸업생 3,700여명 중 취직자는 의사, 교직 등 취업자 503명에 불과하여 취업률은 13.59%로 취업률이라고 말하기도 처참한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제강점기, 독립 직후의 혼란기에만 잠시 있었던 것 현상 아니냐?"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이 종료되고 7년이 지난 1960년 기사를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1960. 11.28. 동아일보의 "새해大學卒業者(대학졸업자) 就職戰線打診(취직전선타진)" 제하의 기사입니다.

61년 봄에 대학을 졸업하는 인원은 21,111명인데 이 중 1만여명은 입대를 하고 나머지 11,111명 중 5,000여명이 취직이 될 것 같다는 전망을 볼 수 있는데, 입대는 취직을 뒤로 미룬 것에 불과하여 실질 취업률은 대략 23.6%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다만 특이한 점은 국관기업체의 채용인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결론적으로 1950,60년까지는 명문대 프리미엄이란 제대로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프리미엄에 대해 정의한 것처럼 경쟁자에 비해서 상대적인 메리트가 있어야 하는데, 대졸자 대부분이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던 시기에 프리미엄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3. 1960년대~1997년, 명문대 프리미엄이 확실한 시기


저를 포함해 지금의 10대부터 40대 대부분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만 되어도 취업을 결정하고 2학기는 그저 설렁설렁 다니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온라인 교육사이트의 모대표가 입시설명회에서 부모님들께 "여러분은 놀아도 갈 회사가 많은 운좋은 세대"가 대략 이 시기를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1977.9.12. 경향신문의 "大學街(대학가)에 불붙은 必死(필사)의 스카웃作戰(작전)" 제하의 기사를 보면 당시 수많은 대기업들이 채졸업도 하기 전의 명문대생들을 입도선매식으로 스카웃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학기에 입사가 결정된 학생이 2학기의 면학분위기를 흐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지금과는 격세지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의 경우 졸업예정인원은 110명인데 73개업체에서 400명의 추천의뢰를 받고 있다."고 나옵니다.


이런 경향은 97년 IMF 전까지 이어지는데 명문대 출신자만이 지원할 수 있는 전형이 있었고("주공 채용 학교차별", 동아일보 96.6.22),

학력철폐를 내세웠지만 내부적으로는 서울대 경제 54점, 연세대 경제 50점, 부산대 경영 47점, 전북대 법학 37점 등 대학별 차등점수를 부여하고 있었으며("대기업 입사 신종 학벌순", 한겨레 96.10.23.),

아예 현직에 있는 대학선배가 모교를 방문해 현지에서 면접한 후배를 추천하여 전형을 진행하게 하는 경우("학교후배 추천제 도입 확산", 매일경제 96.10.18)도 있었습니다.


제가 정의한 것처럼 프리미엄이 남과의 경쟁에서 차별화된 지위, 기회를 보장받는 것이라고 한다면 1960년대부터 IMF가 터지는 1997년까지만큼 명문대 프리미엄이 확실히 작동한 시기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



4. 1997년~현재, 전과 같지는 않으나 여전히 존재하는 명문대 프리미엄


1997년의 IMF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그 영향을 다룬 책과 논문, 경험담은 우리 주위에 넘쳐날만큼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명문대 프리미엄에 대해서만 한정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1997년 IMF 이후 명문대 프리미엄은 사라졌을까요?

외견만 보면 없어졌거나 크게 완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2020.5.25. 매일경제 기사 "SKY 출신도 취업 쉽지 않네"를 보면 SKY 대학의 취업률은 모두 70% 초반대로 다른 4년제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대 학부졸업생의 취업률은 70.1%로 성균관대 77%, 한양대 73.4%보다 낮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2019년 전체 4년제 대학졸업생 취업률이 63.4%이니 그보다는 거의 10% 높기는 하지만 과거 서울대 재학중 취업을 결정하던 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낄만 합니다.


또한 2019년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 이후 10개 금융공공기관 중 6곳에서 SKY비율이 하락했으며 똑같은 곳은 1곳, 증가한 곳은 3곳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명문대 프리미엄은 없다, 어느 대학을 나오건 똑같은 학부졸업생일 뿐이고 그 이후는 순전히 자신의 노력과 실력에 달렸다.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요?


아마 이 글을 읽는 적지않은 분들이 선뜻 고개를 끄덕이시지는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명문대 프리미엄이 분명히 전보다 약화된 것은 사실이나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한 다수의 비명문대 출신이 크고 작은 장면에서 한 번쯤은 그러한 것을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장 위에서 말씀드린 2019년 최운열 의원실 보도자료를 잘 보면, 금융권 공공기관 내에서도 누구나 1차적으로 가고 싶어하고 선망하는 금융감독원,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은 이미 47.8~52.3%로 높았던 SKY 비율이 오히려 더 늘었거나 블라인드 도입에도 불구하고 같은 비율을 유지했습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2016~2018년 3년간 김앤장 등 국내 5개 대형로펌의 신입변호사 출신로스쿨, 출신대학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확연한 명문대 프리미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5개 대형로펌 신규 취업변호사 322명 중 SKY로스쿨 출신은 77.3%(249명), 학부가 SKY출신인 경우는 80%(256명)로 SKY로스쿨 정원(390명)이 전체 로스쿨 2,000명 중 차지하는 비중이 19.5%에 불과함을 고려하면 압도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는 언론계는 어떨까요?

방송기자연합회에서 2016년 초 KBS‧MBC‧SBS‧YTN 기자 1,28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방송기자 중 SKY를 졸업한 사람의 비율은 60.1%에 달하고,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조선일보가 채용한 신입기자 232명 중 ‘SKY’를 졸업한 사람의 비율은 80.6%이며 이 중 서울대 출신은 47%였다고 합니다.("기자들 눈에는 안보이는 청년들", 미디어스 강남규 칼럼, 2020.7.13)



소결 및 다음글에서 다를 이야기


부족하나마 과거 기사를 검색하며 명문대 프리미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명문대 프리미엄은 제대로 된 취업처가 없던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산업화가 본격화에 따른 공채제도가 시행되면서 날개를 달았고,

IMF 이후에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으나 완전히 없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명문대 프리미엄의 변형된 작동형태에 대해서 제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 느낀 점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얘기들을 종합해서 본격적으로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여전히 글을 쓰면서 제가 다루기에 버거운 주제를 잡은 것이 아닌가 걱정도 되지만, 부족한 주장이나마 하나의 작은 논의의 장을 열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언제나 여러분의 많은 의견과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