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결핍’의 한국문명 (1/9)

1회 ― 문제제기: 한국에만 유독 없는 ‘금송아지’

by 수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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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 문제제기: 한국에만 유독 없는 ‘금송아지’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자기 집 자랑을 한다.

“우리집엔 금송아지 있걸랑!”

“나도!”

“우리집에도 있어!”

마지막에 어느 아이가 더듬거리며 말한다.

“우리 집에도 금송아지 있어…”

그러나 그건 거짓말. 그 아이 집엔 금송아지가 없다. 아이는 부모에게 묻는다:

“왜 우리 집엔 금송아지가 없어?”

부모는 답변한다:

“그거 만들다간 죽어. 그래서 우리 집엔 아무도 만들 수가 없었다!”



금송아지란 무엇인가 ― 보물의 은유

한국에만 유독 없는 ‘금송아지’는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인 ‘신화결핍’이라는 문제설정으로 이어진다.


한국문명론의 근본문제설정은 ‘신화결핍’이며, 이 결핍은 곧 ‘금송아지’의 구조적인 부재에서 기원한다. 금송아지는 어느 문명이 자기만의 신화적인 형상화를 통해 세운 집단적인 보물, 자기화의 결정체로,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집단표상의 상징이다.



신화들은 인류의 원초적인 언어이며, 집단무의식의 기본단위들이다
Myths are the primordial language of humanity, the basic units of the collective unconscious.

- 칼 융C. G. Jung, 『사람과 그의 상징들』Man and His Symbols


중국의 『산해경』및 민간도교신화, 일본의 신토와 『기기』記紀신화, 서양의 헤브라이즘‧헬레니즘 및 가즌 게르만‧슬라브신화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아즈텍-카톨릭 혼종신화 등은 모두 각 문명이 지닌 ‘금송아지’들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단군신화나 무속전승이 한낱 민족주의적인 장식, 또는 미신의 범주에 머물렀을 뿐, 체계화되거나 정규화된 집단표상으로 승화해 ‘금송아지’가 된 적이 없다.


이 결핍은 단순한 창조역량의 부족이 아니라, 신화를 만들고 형상화하려는 시도가 곧 탄압과 금기, 생존의 위협에 직결됐던 되풀이된 금기구조에서 비롯된다. ‘금송아지를 만들다간 곧 죽는다’라는 금기는 전근대 유교문화의 억압, 20세기 식민지기의 배척, 분단과 전쟁의 정치화, 서양합리성의 모방독점으로 인한 미신화 등 역사적인 단절이 누적되며 집단심성으로 각인됐다.


따라서 한국문명의 신화결핍은 자체 문화예술역량의 빈곤 보다 앞서는 문제이다. 자기화의 보물 없이 외부의 타자프레임을 모방하는 것만 허용돼 온 기나긴 문명구조적인 병리의 한국적인 표지다. 한국문명의 신화결핍이라는, 이 문제설정 없이는 한국의 집단표상, 역사적인 상상력, 사회정체성의 한계, 더나아가 한국병의 핵심인 집단주의적인 이기주의의 병리적인 반복을 해명할 수 없다. 신화결핍은 오랜 세월 모방과 차용의 굴레 속에서만 그 생존이 허락된 한국문명의 자기정체성 위기와 창조역량의 공백, 자국신화빈곤의 핵심적인 키워드로 자리잡는다.



한국에만 금송아지가 없다는 사실

세계 문명사의 보편적인 궤적에서 한국의 신화결핍은 단순한 지체가 아니라 구조적인 금기로 설명돼야 함


신화결핍은 ‘우발적인 결핍’이 아닌 구조적인 결과다. 그 핵심에는 4겹의 금기가 중첩돼 집단표상을 봉인하는 구조로 있다. 전근대시기에는 유교가 억압했고, 식민지시기에 한국신화는 제국주의의 도구로만 활용되거나 미신이라는 이름 하에 체계적으로 격하, 추방됐다. 근대시기에, 서양적인 합리성 아래서 신화적인 상상력은 지식체계에서 배제되고 전통자산으로서의 위상은 약화됐다.


분단과 전쟁의 시기, 신화를 창조하려는 모든 시도는 곧바로 정치권력의 우상화, 곧 건국신화와 수령신화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폭력, 숙청, 생존 위협 등의 이데올로기 도구로 써먹혔다. 이 단계에서 신화는 자유와 창조의 표상이라기 보다 억압과 배척, 국가주의의 도구로 고착된다.


마지막으로 근대화와 모방추격의 단계에서 서양모델의 모방만이 허용되는 풍토가 만연해지고, 자기만의 금송아지를 세우는 모든 시도는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혔고, 사회 전반에 ‘금송아지를 만들면 죽는다’는 내면화된 금기가 자리 잡았다.


이 4겹의 금기는 단군신화, 무속 등 전통 신화자원을 집단표상으로 승화하는 창조적인 회로 자체를 차단한다. 신화의 자리는 차용, 장식, 미신의 잔재로만 남았고 사회적인 상상력, 예술창작, 공동체 조직역량까지 근본 제약을 받는다.


결국 ‘신화결핍’은 단순한 서사의 부재가 아니라, 집단표상의 빈곤과 ‘집단주의적인 이기주의’의 사회적인 조건, 공동체를 다시-창조하는 역량의 결여로 이어진다. 한국식 ‘집단주의-이기주의’ 역시 신화결핍으로 인한 ‘다정한’ 집단심성의 황폐화와 직접 맞닿아 있다.



단순한 결핍이 아닌 구조적인 부재

한국의 금송아지 없음은 단순히 “만들지못함”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인 층위에서 되풀이해서 차단된 구조적인 부재다.


세계문명과의 비교는 한국문명의 신화결핍의 특수성과 문명적인 병리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신화는 단순 과거로부터 전승들의 집합이 아니라, 되풀이되는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를 통해 집단표상과 문화적인 자기화를 심화하는 문명사적인 회로다.


단테는 『신곡』에서 기독교신화를 해체해 중세 뒷시기 서양의 집단표상을 갱신했고, 괴테는 『파우스트』로 전통적인 악마계약 신화를 근대 주체성의 딜레마로, 카프카는 유대-기독교 구원신화를 관료주의·법률의 구조로 변형시키며, 집단표상의 상징구조와 세계관을 새롭게 다시 썼다.


라틴아메리카의 마르케스는 원주민 신화, 가톨릭 신앙, 식민의 기억을 혼종화해 『백년의 고독』으로 집단표상을 재창조했다. 이들 문명군에서 신화는 되풀이된 해체와 다시-구성으로 집단표상과 상상력, 예술 전반의 창조 회로를 제공한다.


반면, 한국문학은 단군신화·무속·역사적인 트라우마 등 다양한 신화자원이 있음에도 그것을 표면적인 소재, 감정적인 증언, 역사적인 회고에만 머무르게 했을 뿐, 집단표상의 차원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한국신화의 주요 서사소들은 사실 기록이나 감정에만 한정되고, 신화적인 구조의 변형, 상징적인 해체 및 다시-창조라는 과정은 부재했다. 이로 인해 한국문명의 ‘신화결핍’은 단순 신화적인 소재·이야기 빈곤보다, 집단표상과 역사적인 상상력, 자기화 역량의 병리적인 구조로 자리잡는다.



리디스크립션이라는 것은 ... 현행의 사회적인 상황을 우리가 새롭게 매력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미래의 선택지를 발명하는 수단이다
Redescription … is the means through which we invent novel, attractive depictions of our current social situation as well as our future options.

- 로티Richard Rorty, 『자유주의와 리디스크립션의 정치학』Liberalism and the Politics of Redescription


곧 신화를 반복·변주하며 집단표상을 누적하는 문명과, 신화가 금기·차용에만 머무는 문명 간의 차이가 극명하게 대립하며, 한국적인 신화결핍은 세계사적인 자기화 불능의 역동 속에 고착돼 있다.



'신화결핍'이라는 문제설정

한국문명론의 핵심문제설정은 ‘신화결핍’이며, 이는 단순히 예술의 빈곤이 아니라 문명적인 구조의 문제다.


현대 대중문화 영역에서도 신화풍요의 문명과 신화결핍의 문명은 구체적으로 대비된다. 서양의 『스타워즈』는 고대 영웅 신화구조를 SF장르로 변주해, 전 세계 팬덤의 집단표상 속에 새로운 신화를 각인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신토, 불교, 민속신앙의 신화적인 이미지를 되풀이된 변주와 혼종의 방식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에반게리온』, 『원피스』, 『나루토』를 통해 변용됐고, 새로운 일본적인 집단표상을 현대적으로 다시-창조했다.


라틴아메리카 영화는 원주민 신화와 가톨릭의 혼종을 현대영화매체에서 집단상처와 기억의 신화적인 서사로 승화시킨다.


반면, 한국의 대중문화는 신화를 그저 시각적인 장식이나 장르적인 소재로 차용하는 한계를 반복한다. 『신과 함께』, 『아스달 연대기』, 『검은사막』류의 게임은 신화의 배경과 소재를 활용하지만, 그 구조를 해체하고 다시-구성해 집단표상으로 만드는 창조적인 리디스크립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는 신화적인 상징경험의 차단, 집단표상의 구조결핍, ‘집단주의적인 이기주의 사회’의 상징빈곤으로 표출된다. 신화는 대중문화에서조차 배경 소비에 머물고, 집단표상으로 누적되지 못한 채 반복된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비교는 한국문명의 신화결핍이 단순한 예술계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문화 방면에서도 집단표상의 빈곤, 상징언어의 부재, 자기화 불능의 문명적인 병리로 이어지고 있음을 입증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