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결핍’의 한국문명 (2/9)

2회 ― 신화결핍의 구조 : 금송아지를 만들다간 죽는다

by 수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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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자기 집 자랑을 한다.

“우리집엔 금송아지 있걸랑!”

“나도!”

“우리집에도 있어!”

마지막에 어느 아이가 더듬거리며 말한다.

“우리 집에도 금송아지 있어…”

그러나 그건 거짓말. 그 아이 집엔 금송아지가 없다. 아이는 부모에게 묻는다:

“왜 우리 집엔 금송아지가 없어?”

부모는 답변한다:

“그거 만들다간 죽어. 그래서 우리 집엔 아무도 만들 수가 없었다!”





2회 ― 신화결핍의 구조 : 금송아지를 만들다간 죽는다



전근대 조선왕조 때 유교문화에 의한 신화결핍

조선유교문화는 ‘금송아지만들기’를 터부시하는 전형을 만들었다


한국문명의 신화결핍 구조의 전형은 조선왕조의 유교이데올로기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은 성리학을 국가통치이념으로 채택하면서,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멀리하는 예교질서를 중심으로 문명을 재편했다.


이 과정에서 단군신화를 포함한 고유의 신화들과 무속, 불교적인 세계관은 ‘음란한 제례’淫祀 곧 이단적이고 사악한 ‘괴력난신’으로 치부돼 공식적인 담론의 장에서 체계적으로 배척됐다. 지배층인 사대부들은 신화적인 상상력을 공동체의 상징적인 자산이 아닌, 교화하고 통제해야할 미신으로 간주했다.


이는 ‘자기금송아지’ 제작시도를 좌절시킨 한국문명의 신화결핍의 전형을 보여준다. 성리학적인 세계관이라는 유일하고 강력한 ‘진리’ 체계 아래, 신화가 지닌 다원적이고 창조적인 세계해석의 기능은 억압됐다.


신화는 국가나 공동체의 공식적인 표상에서 밀려나 민간신앙과 구전orality의 영역으로 유배됐고, 문명 전체를 아우르는 집단적인 상상력의 원천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신화적인 상상력에 대한 이런 전근대 시기의 억압은 신화를 저급하고 천박한 것으로 여기는 집단심성을 각인시켰고, 이는 그뒤 식민지시기, 분단과 전쟁, 근대화 과정에서 겪게 될 신화추방과 금기구조의 단단한 토대가 되었다.




식민지시기의 신화 추방

식민지시기의 신화 추방은 한국의 신화결핍 구조에 되돌릴수없는 각인을 남겼다.


식민지시기는 한국문명의 신화결핍구조에 가장 깊은 각인을 남긴 결정적인 시기였다. 이 시기, 신화는 더이상 공동체의 자기문명을 형상화하는 자산이 아니게 됐고, 집단표상의 원천에서 강압적으로 추방됐다.


일제는 자국의 국가종교인 신토를 보편신화로 설정하는 한편, 그나마 남아있던 한국신화들 마저 철저하게 배척하고 제거했다. 단군신화와 무속 전승은 민속학·박물관의 전시품으로 격하시켰고, 창조적인 예술자산이 아니라 미신적인 유물, 낡은 학술적인 대상일 뿐이라는 인식을 사회 전역에 안착시켰다.


이것은 단지 한국주술신화의 산발적인 손실이나 1회적인 절단에 그치지 않았다. 신화적인 상상력은 미신, 후진성의 레테르 아래 사회적으로 격하됐고, 신화를 공동체통합과 자기문명의 상징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상상력의 계기 자체가 차단됐다.


문학에서도 이광수의 『무정』,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 초기근대문학은 신화모티프를 근대계몽의 도구로 재배치하는 데 머물렀을 뿐, 고유신화의 창조적인 리디스크립션이나 집단표상적인 혁신에 이르지 못했다. 근대미술 또한 채색화와 국민화라는 계몽적인 틀로만 전환됐고, 신화는 주로 박물관 미술품의 장식적인 소재로 유폐됐다. 예술과 지성계 전반에서 신화를 상상하고 창조하는 회로는 체계적으로 차단됐고, 신화는 민족주의적인 장식이나 학술적인 오브제로만 잔존하게 됐다.





권력은 늘 신화를 필요로 하며, 그것을 제도화된 ‘진실’로 바꿔치기한다.

-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신화』Mythologies




이처럼 식민지시기 신화추방의 효과는 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았다. ‘신화적인 형상화 시도=위험·부적절’이라는 인식이 집단심성에 각인됐고, 창조적인 자기화의 시작점을 근원적으로 차단했다.


이 통념은 오늘날까지도 예술계와 사회문화 전반에 내면화돼, 전통신화 모티프가 민속적인 소재 활용이나 제례적인 장식의 수준에서만 소모되고, 집단표상의 본격적인 인프라로 승화되지 못하는 신화결핍의 반복·재생산되는 구조로 남았다.



분단과 전쟁이 낳은 신화의 정치적인 우상화

분단과 전쟁은 신화를 공동체의 자기화 자산이 아니라 정치적인 도구이자 생존의 위협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 “신화를 만들다간 죽는다”는 공포가 집단표상에 각인됐다.


분단과 전쟁의 시기는 한국문명의 신화결핍구조의 심층적인 고착과 ‘집단주의적인 이기주의 사회’의 토대를 형성한 결정적인 역사적인 계기였다. 해방 뒤 한반도에서 신화의 창조, 곧 공동체적인 자기화의 보물은 더 이상 자유롭고 창조적인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권력의 정당화 도구, 체제의 유효성 증명, 그리고 생존의 위협을 동반하는 우상화의 한 형태로 전환됐다. 북한의 수령신화는 김일성을 초월적인 지도자이자 적대적인 국가 질서의 중심으로 신격화했으며, 남한의 건국신화는 국가영웅 서사와 국가 정통성을 생산하는 체제의 근간으로 활용됐다.


문화예술 전반에서도 신화는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회로에서 철저히 차단됐다. 1950~60년대 공식적인 국전國展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민족상징이나 단합, 분단 극복 등의 ‘국가주의적인 상징주의’에 머물렀다. 1970~80년대 민중미술조차 농민·광부 등 집단정체성에 집중했으나, 신화구조의 창조적인 재해석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이는 표면적인 문화적인 현상 이상의 것이다. 실재로 북한에서 수령신화를 거부하면 곧 숙청·사망의 위협으로 직결됐고, 남한에서도 건국신화와 정치영웅 내러티브에 대한 비판이나 이견 표명이 사회적인 배척, 탄압, 반체제 낙인으로 이어졌다.


신화의 형상화 시도 자체가 불온시·적대시돼 창조적인 리디스크립션의 회로가 원천적으로 봉쇄됐다. 집단표상 역시 신화적인 상징 언어나 상상력의 결집이 차단된 채, 금기와 공포, 차단의 구조로 채워졌고, “신화를 만들기는 재미없다”라는 금기가 심층적인 집단심성에 각인됐다.


이 금기 구조는 김동노 교수의 ‘집단주의적인 이기주의 사회’ 진단과 밀접히 결합한다. 집단의 정체성이나 공동체적인 비전은 창조적인 신화로 조직되지 못하고, 이기주의적인 폐쇄성, 생존 전략, 권력집중만이 우위에 놓이는 왜곡이 강화됐다.


신화는 억압적인 권위주의·분단체제 이데올로기에 종속됐고, 상징적인 언어의 빈곤과 상상력의 수축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신화결핍 구조는 사회 전반에 지속적으로 각인되며 문화예술의 창의성 회로를 원천적으로 단절시켰다.




근대화와 모방의 독점

근대화는 자기 금송아지를 세우는 시도를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어 근대화와 모방추격성장의 시기에, ‘모방의 독점’과 자기화 불능이 사회 전반에 구조화되는 형태로 신화결핍은 더욱 굳어졌다. 1960~80년대 한국은 서양 모델—정치·경제·교육·문화까지—를 신속하게, 완벽히 모방해야만 생존한다는 국가 강박 아래 놓였다.


신화적인 자기화 실험, 고유 신화구조의 변형 시도는 모두 비생산적이고 위험한 실험으로 간주됐다. 대중문학은 하드보일드, 로맨스, 추리 등 서양 장르 공식을 공격적으로 차용했지만, 진정한 신화구조 리디스크립션이나 집단표상 창조는 극히 드물었다.


김수영·김현 등 동시대 비평계 역시 신화 대신 사회현실·계몽담론, 실험미술(신미술협회, 모노크롬 회화 등)은 서양적인 형식실험이 중심이었고, 대중드라마·영화 역시 헐리우드 장르 모방이 주류로 정착했다. 2000년대 게임 산업마저, MMORPG 대흥행(리니지, 뮤, 카트라이더 등)에도 불구, 원형적인 신화구조 실험은 대부분 서양 판타지의 현지화에 머물렀고, 고유 신화적인 집단표상 혁신에 이르지 못했다.


더나아가 이런 사정은 80~90년대 문학예술운동권 속에서도 되풀이됐다. 민중적이고 민족적인 리얼리즘이라는 거대서사의 이데올로기 역시 마찬가지로 주술신화적인 상상력의 리디스크립션을 억압했다.


이런 문화적인 흐름 속에서 자기 금송아지를 세우려는 창조적인 실험은 사회시스템의 전반적인 수준에서 무의미, 심지어는 잠재적인 위험으로 인식됐다. 자연스레 “모방이 곧 생존”—즉, 진짜 자기화의 시도보다는 타자의 모방·차용만이 장려되는 집단표상이 문화 전반에 견고하게 고착됐다.


신화결핍의 구조는 근대적인 도약이라는 외양 뒤에서 오히려 심층적으로 공고화돼, 한국 문명은 여전히 ‘금송아지를 만들다간 죽는다’는 금기와, 모방만을 반복하는 집단적인 굴레 속에 머물게 됐다.




금송아지를 만들면 죽는다는 금기 구조

4겹의 경험이 누적되며 한국에만 유독 작동하는 금기 구조가 형성됐고, 이는 신화를 창조적인 형상화가 아니라 생존 위협으로 내면화하게 만들었다.


4겹의 경험(조선 유교, 식민지, 분단·전쟁, 근대화)이 누적되면서, 한국에만 유독 작동하는 ‘신화결핍’의 금기구조가 형성됐고, 이는 신화를 창조적인 형상화가 아니라 생존위협으로 내면화하게 만들었다.


서양의 『스타워즈』, 일본의 애니메이션, 라틴아메리카의 주술적인 리얼리즘 문학과 영화가 각자의 고유 신화를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창조하며 집단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는 것과 달리, 한국의 대중문화는 신화적인 모티프를 피상적인 장식이나 기능적인 소비에 그치는 경우에 그치게 된 것이다.


『신과 함께』, 『아스달 연대기』, K-POP의 무속 콘셉트 등은 고유 신화 소재를 활용하지만, 근본적인 신화 구조를 해체·재창조하여 집단표상으로 승화시키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시각적인 화려함이나 장르적인 소비에 머물며 문화적인 자기화로 확장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날치와 앰비규어스컴퍼니의 협업 같은 예외적인 시도가 있으나, 여전히 주류에서 집단적인 자기화로 확장되는 계보는 미약하다.




문화의 억압은 집단표상 속에 금기 구조를 낳으며, 그 금기는 세대를 거쳐 반복된다.

- 클로드 레비-스트로쓰Claude Lévi-Strauss, 『야생의 마음』The Savage Mind


이처럼 다른 문화권이나 나라들의 현대 대중문화 사례를 비교하면, 저들의 신화풍요사회는 신화의 되풀이된 재창조가 집단표상의 누적으로 이어지는 반면, 한국은 신화결핍의 구조가 대중문화에서도 반복되어 창조적인 자기화 가능성에 결정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이 특수성은 오늘날 한국문명의 구조적인 신화결핍이 단순한 창조의 빈곤을 넘어, 상징언어와 집단표상, 자기화 역량의 심층적인 불능임을 명확히 입증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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