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결핍’의 한국문명 (3/9)

3회 ― 신화풍요 vs 신화결핍 (세계문명 비교 1: 문학)

by 수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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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자기 집 자랑을 한다.

“우리집엔 금송아지 있걸랑!”

“나도!”

“우리집에도 있어!”

마지막에 어느 아이가 더듬거리며 말한다.

“우리 집에도 금송아지 있어…”

그러나 그건 거짓말. 그 아이 집엔 금송아지가 없다. 아이는 부모에게 묻는다:

“왜 우리 집엔 금송아지가 없어?”

부모는 답변한다:

“그거 만들다간 죽어. 그래서 우리 집엔 아무도 만들 수가 없었다!”




3회 ― 신화풍요 vs 신화결핍 (세계문명 비교 1: 문학)



신화풍요와 집단표상쌓기

신화풍요는 집단표상의 층위를 두텁게 쌓아올리는 과정이며, 한국의 결핍과 가장 극명하게 대비된다


<신화풍요와 신화결핍>이라는 눈으로 세계문명을 훑어 보면, 그것이 공동체의 집단표상과 자기화 역량, 문화적인 상상력의 심연을 가르는 결정적인 지표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신화란 단순히 과거로부터 전승된 유휴자산이 아니라, 공동체가 되풀이해서 해체하고 다시-구성(리디스크립션)하는 과정을 통해 쌓여가는 집단표상의 복합체이다.


신화풍요문명의 공동분모라면, 그것은 고전적인 신화가 되풀이해서 해체되고 다시-구성되면서, 공동체의 상상력과 집단표상의 언어가 겹을 더하면서 깊게 축적되는,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의 창조적인 회로에 있다.


이렇게 두텁게 축적된 신화적인 집단표상들은 문학 속에서 뿐만아니라, 미술·음악·정치담론 등 다양한 매체와 장르에서 집단표상의 확장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이런 되풀이되는 소환과 심미감성적인 변주는 신화풍요의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집단표상쌓기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문학은 신화의 되풀이와 전복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 노쓰럽 프라이Northrop Frye, 『비평의 해부』Anatomy of Criticism


그리고 이 지속적인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의 회로 덕분에 공동체는 역사적인 위기, 사회적인 변혁의 국면마다 자국신화를 부수고 다시-형상화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이는 곧 문화적인 자기화의 내공, 집단적인 상상력의 두께로 연결됐다.


그 결과, 신화풍요문명은 위기의 순간마다 새로운 집단표상과 미래 비전을 창출할 수 있는, 신화적인 상상력이 활발히 작동하며, 예술과 사회 담론, 대중문화까지 신화의 구조적인 패턴이 살아 움직이게 된다.




단테·괴테·카프카·마르케스의 리디스크립션

서양과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신화를 반복하고 변주하며 새로운 서사를 창출했고, 이것이 신화풍요의 증거다.


서양문학 속 신화풍요의 계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


유럽 르네상스와 근대에, 신화는 회화·조각·오페라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가로지르며 집요하게 소환되고 변주돼 왔다. 이런 반복은 단순히 고대 잔영의 재현이 아니라, 각 시대의 위기와 변동 속에서 공동체가 자기화의 내공과 집단표상의 층위를 깊이 구축하는 창조적인 회로로 기능했다.


위 표는 서양문학 속 신화풍요의 대표적인 계보를 정리한 것이다. 한번 더 그 가운데 몇몇 사례들을 뽑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단테는 『신곡』에서 기독교 신화의 전통적인 구조를 지옥·연옥·천국의 3부작으로 새롭게 편성하며, 중세서양의 언어·우주론·윤리질서를 시적인 상상력으로 다시 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악마계약이라는 고전신화를 근대적인 주체의 내적인 갈등·실존적인 딜레마로 재구성한다. 카프카는 유대-기독교 구원신화를 관료제와 법의 구조로 치환함으로써 신화원형에 대한 전복적인 실험을 보여준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마르케스가 『백년의 고독』에서 아즈텍·마야 신화, 가톨릭, 식민 트라우마를 혼종화해 완전히 새로운 문학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셰익스피어는 『한여름 밤의 꿈』, 『맥베스』 등에서 켈트·브리튼·그리스 신화와 집단전승을 극적인 심층구조로 변주했다. 요정·마녀·예언 모티프가 욕망과 비극, 근대적인 갈등의 구조로 끌어올려진다.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에서 호메로스의 서사를 20세기 더블린 일상에 이식해 신화의 세속화·내면화를 모더니즘적인 텍스트의 구조로 구현했다.


T.S. 엘리엇의 『황무지』는 켈트 신화, 성배, 동서양 신화를 파편화·혼종화하여, 현대의 상실·황폐를 신화적인 구조로 재편한다. 러시아 근대시인 츠베타예바, 아흐마토바, 만델슈탐 등 역시 고전·성서·슬라브 신화를 혁명·망명이라는 근대적인 운명과 충돌시키며, 신화 언어와 자기의식을 혼종·전복적으로 뒤섞는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 『싯다르타』 등에서 그노시스, 불교, 기독교, 이집트 신화 등 다양한 계보를 근대적인 자기 탐색·내적인 진화의 서사구조로 녹인다. 뷔히너, 릴케, 로베르 무질, 칼비노, 보르헤스 등 현대 시·소설가들은 오르페우스, 디오니소스, 판도라 등의 고전 신화를 파편화 또는 실험적으로 재해석하며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의 지평을 넓혔다.


이 계보에 윌리엄 블레이크와 매들린 밀러, 토마스 만의 사례를 추가하면 신화적인 상상력의 해체와 다시-구성이 시대·장르를 넘어 어떻게 지속되는지 한층 입체적으로 조명된다.


블레이크는 18~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인·화가로, 『천국과 지옥의 결혼』, 『순수와 경험의 노래』, 『예루살렘』 등에서 고전적인 신, 예언자, 천사, 악마 등을 사람의 내면과 혁명의 상징적인 언어로 재편했다. 신화를 예술·영성·사회변화의 극한에서 해체하고 재창조하며, 내적인 구원과 집단 해방의 잠재력을 제시했다.


매들린 밀러는 『키르케』, 『아킬레스의 노래』에서 고전그리스의 전통영웅신화를 젠더, 주체, 욕망의 현대적인 관점에서, 페미니즘적인 자기서사, 자기정체성 탐구, 존재의 복합적인 욕망의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로 뒤집음으로써, 신화의 동시대적인 다시-창조에 성공했다.


토마스 만은 『요셉과 그 형제들』에서 구약 신화를, 『마의 산』에서는 고대신화적인 집단표상(순례, 변신 등)을 근대인의 실존, 내면적인 성장, 유럽문명사의 자기탐구의 서사로 치환했다. 만은 신화를 내러티브와 철학의 뼈대로 삼아, 변주와 다시-구조화를 통해 존재론적, 문명론적인 자기화를 실현했다.


이와 같은 신화풍요의 계보는 신화가 단순히 과거의 전승물이 아니라, 공동체가 위기와 변혁 속에서 반복적으로 해체·창조하며 집단표상과 상상력의 두께를 쌓아가는 창조적인 언어임을 입증한다.


이는 문학 뿐만아니라 르네상스 미술, 바그너 오페라, 일본 애니메이션, 라틴아메리카 벽화 등에서도 되풀이된 신화의 소환과 변주를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과 의미 구조, 자기화의 내공을 축적해왔다. 반대로, 근본적인 리디스크립션 전통이 누적되지 못한 한국문학예술은 이런 ‘집단표상의 빈곤’과 ‘역사적인 상상력의 한계’라는 특수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낸다.



한국문학의 신화결핍

한국문학은 신화를 다시-쓰는 창조 대신, 신화를 소비하거나 회고로만 다루고, 신화없는 서사에 머물렀다


반면 한국문학은 이런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의 전통이 실질적으로 축적되지 못한 사례군에 속한다. 단군신화와 무속, 대규모 역사적인 트라우마 등 집단표상으로 작용할 자산들은 있었지만, 그것을 새롭게 다시-구성하고 사회적인 상상력의 질서를 전복하는 창조적인 구조에 접속해내지 못했다.


한국문학의 서사들은 주로 현실고통의 증언과 정서적인 표층에 머물렀고, 신화적인 서사구조의 창조적인 변주나 해체를 통한 집단표상 전반을 다시-조직하는 근본동력으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그 결과 역사적인 상상력, 집단표상의 언어, 문화적인 자기화 역량 모두가 구조적으로 결핍된 상태로 남았다.


이 불균형은 결국 신화적인 서사—집단표상의 축적이 풍요롭게 이루어진 문명과, 신화결핍으로 자기화 회로가 차단된 문명 간의 심층구조적인 차이를 형성한다. 신화풍요 문명은 위기와 변동의 순간마다 자신만의 금송아지를 해체하고 다시-세우는 경험을 통해 사회적인 미래와 정체성의 비전을 능동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화결핍문명, 특히 한국은 그 경험 자체가 금기로 봉쇄되어 신화는 차용과 피상적인 변주, 장식적인 소비에만 머물렀고, 집단표상의 심층과 창조적인 자기화 역량은 필연적으로 빈곤해졌다.


이런 구조는 곧 한국문학의 신화결핍이 세계문학의 신화풍요사례들과 구별되는 근본적인 특수성임을 보여준다. 신화결핍이 ‘집단표상의 빈곤’과 ‘역사적인 상상력의 한계’의 문화적인 조건으로 휘감기는 지점에서, 한국문학은 사건의 단순 묘사와 회고를 반복할 뿐, 사회적·존재론적인 실험의 장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현대적인 병리에 도달한 셈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현기영의 「순이 삼촌」은 제주 4·3의 집단적인 비극과 상처를 세밀하게 증언하지만, 그 사건의 고통을 신화적인 구조로 변형·재편하지 못한 채 사실기록과 정서호소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역시 방대한 역사자료와 인물정서를 서사적으로 정교하게 풀어내면서도 역사적인 기억을 신화적인 질서로 전환·승화하는 구조적인 실험에는 이르지 못한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황석영의 『바리데기』 등은 전통신화나 무속서사의 이름을 표층적으로 호명하지만, 실상 신화의 내적인 구조를 해체하거나 새로운 존재론적·서사적인 방식으로 다시-조립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바리데기』가 무속서사의 외피를 빌리기는 했으나 리디스크립션의 본질, 곧 신화구조의 해체와 현대적인 내러티브의 다시-창조는 실현되지 않았다. 『엄마를 부탁해』 역시 모성 신화의 표상은 가족적인 추억·정서의 차원에서만 소모되며 서사실험이나 집단심성의 심층을 확장시키지 못했다.


이런 작품들은 신화를 단순한 인용이나 장식으로만 소유할 뿐, 앞의 서양문학가들이 보여줬던 것과 같은, 신화적인 상상력을 문학적인 관습과 기존서사구조를 전복시키는 동력으로 삼지 못한다. 이로 인해 한국문학은 디스크립션/그저쓰기, 곧 사건과 정서를 기록하고 나열하는 패턴에 고착됐고, 근본적인 역사적인 상상력의 리디스크립션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신화풍요문명 속에서 문학이 신화의 반복적인 리디스크립션을 통해 역사를 새롭게 서술하고 공동체의 정체성과 문화적인 자기화의 근거로 작동했다면, 그러나 한국문학은 신화없는 서사에 머물렀고, 이로 인해 한국문명의 자기화 역량 또한 결정적으로 제약됐다.




예외로서의 한강의 작업

한강은 한국문학의 신화결핍 속에서 드물게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에 도달한 예외로, 한국문학이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한강의 작업은 신화결핍이란 구조적인 한계에 갇혀온 한국문학에서 극히 드물게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에 도달한 예외적인 성취로 평가된다. 그의 소설들은 신화를 표면적인 모티프나 장식적인 인용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화적인 심층구조와 존재론적인 함의를 내면화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문학적인 질서와 집단표상의 심층을 구현한다.




신화를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하는 것은 곧 역사적인 상상력의 구조를 여는 열쇠다.

-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신화와 실재』Myth and Reality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이 ‘사람-식물’로 변모하는 과정은 단순한 은유를 넘어 동물, 자연, 비사람 등 존재 자체의 경계선을 뒤집는 현대적인 변신신화의 계보에 있다. 이 소설은 전통신화의 모방이나 단순차용을 넘어서, 신화적인 변형 자체를 해체하고, 다시-구성해 자기만의 집단표상을 제시한다. 단절된 가족관계, 사회적인 규범, 신체성과 윤리질서 사이의 긴장을 신화적인 변환 구조로 끊임없이 한강은 전복한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 5·18의 학살을 단순한 보도나 증언으로 다루지 않고, 죽은 자의 시간과 산 자의 윤리라는 2중적인 층위를 동시에 병치한다. 이 소설에서 현실은 직선적인 연대기나 단일 서사로 환원될 수 없는 신화적인 시간성——곧 현현·윤회·체화의 구조로 변형된다. 역사적인 참사는 신화적인 구조의 리디스크립션을 통해 사회적인 기억, 존재론적인 윤리의 새로운 질서로 환원된다.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4·3항쟁의 집단적인 상흔을 단순기록이나 회고의 장에서 멈추지 않는다. 죽은 아이와 살아남은 자, 망각된 주체와 현재의 인물들이 시간과 존재의 경계를 넘어 상호 침투한다. 한강은 분리된 현실/죽음의 경계를 해체하고, 도덕적이고 초월적인 리디스크립션의 서사를 형성한다. 이 작품은 현실적인 증언이 아닌, 잊힌 존재들의 시간을 회복하는 신화적인 복원의 언어다.


『흰』은 신화의 표면이 아닌, 신화 부재의 조건 자체를 형상화한다. 태어나지 못한 생명, 이름없는 기억, 형상없는 존재들이 ‘흰’ 사물들의 나열로 조직되고, 사라진 언어의 틈에서 새로운 상징들의 신화적인 다시-형상들이 창조된다. 이 소설은 신화적인 구조를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 부재의 공간과 상징의 공백에서 출발해, 신화 그 앞과 뒤를 동시에 리디스크립션하는 극단적인 실험을 감행한다.


이 4작품은 일관되게 신화를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하는 서사적인 실천을 통해, 역사적인 현실과 존재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다시-형상화한다. 한강의 작업은 신화결핍으로 고착된 한국문학에서 드물게 창조적인 리디스크립션의 예외로 자리매김하며, 신화없는 서사의 한국적인 고질병을 넘어선 새로운 문화적인 자기화의 길을 탐색한다.


이런 예외적인 성취는 한국문학이 향후 지향해야 할 본질적인 실험의 방향을 선명히 보여준다. (한강 말고 천명관의 『고래』도 좋은 사례이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대신 아래 관련기사를 읽어주길 바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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