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결핍’의 한국문명 (4/9)

4회 ― 신화풍요 vs 신화결핍 (세계문명 비교 2: 영화·드라마·아니메

by 수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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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자기 집 자랑을 한다.

“우리집엔 금송아지 있걸랑!”

“나도!”

“우리집에도 있어!”

마지막에 어느 아이가 더듬거리며 말한다.

“우리 집에도 금송아지 있어…”

그러나 그건 거짓말. 그 아이 집엔 금송아지가 없다. 아이는 부모에게 묻는다:

“왜 우리 집엔 금송아지가 없어?”

부모는 답변한다:

“그거 만들다간 죽어. 그래서 우리 집엔 아무도 만들 수가 없었다!”





4회 ― 신화풍요 vs 신화결핍 (세계문명 비교 2: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스타워즈와 현대 신화 만들기

『스타워즈』는 현대 대중문화에서 신화를 리디스크립션한 대표 사례로, 신화풍요의 전형을 보여준다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분야는 신화풍요의 계보들이 무성한 정글이라 할만 하다. 아래짤은 신화리디스크립션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반지의 제왕』,『해리 포터』,『나니아 연대기』,『왕좌의 게임』,『신비한 동물사전』,『판의 미로』,『어벤져스』시리즈, 『헝거 게임』『퍼시 잭슨』같은 영화들은 생략하고, 몇 개만을 살펴보기로 하자.


대표적인 신화풍요의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들


1977년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는 단순한 SF 오락물이 아니라, 현대 대중문명이 신화의 구조와 상징을 어떻게 다시 쓰고 집단표상으로 축적하는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의 창조적인 모범이었다.


이 작품에서 루카스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제시한 영웅 서사의 보편적인 패턴—부름, 스승과의 만남, 시련, 대립, 귀환—을 채택하지만, 그것을 과학기술과 우주전쟁이라는 배경, 광선검과 포스라는 새로운 상징으로 치열하게 다시-구성했다.


광선검은 고대신화에서 반복되는 신검聖劍의 현대적인 변주였고, 포스force는 초월적인 신神의 힘의 미래적인 에너지로의 번역이었다. 은하제국과 반란군의 대립 역시 고대신화에서 왕국과 피지배자의 갈등을 우주적인 질서의 반란과 회복이라는 현대적인 프레임으로 전환했다.




신화는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으로 되살아나며, 현대의 신화는 고대의 구조를 미래적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다.

-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천의 얼굴을 한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스타워즈』의 결정적인 의의는 신화의 반복과 변주, 그리고 미디어적인 집단표상으로의 이행에 있다. 이 영화는 과거의 신화를 재현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집단적인 상상력·정체성의 언어로 시각적·서사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그 결과 『스타워즈』는 단일영화의 시리즈를 넘어 수십년에 걸쳐 후속작, 스핀오프, 파생게임, 소설, 만화, 광범위한 팬덤의 문화를 낳았고, 세계인의 집단표상에 현대적인 영웅신화를 각인시켰다. 이 신화 체계는 과거의 신화가 기념비와 연극, 종교적인 제례를 통해 사회에 각인됐던 것과 동일하게, 영화‧게임‧캐릭터‧유행어 등 다층적인 미디어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신화적인 우주를 공동체적인 경험으로 구축한다.


이와 같은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의 순환은 단순한 오락적인 파급을 뛰어넘는다. 현대인이 신화의 구조와 의미, 집단표상을 되풀이해서 체험하고 축적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한다. 이는 곧 신화풍요를 가능하게 하는 집단표상의 다시구성의 창조적인 모델이고, 자기 금송아지를 세우고 부수는 역사적인 순환을 실재적인 실천의 차원으로 구현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스타워즈』는 오늘날 신화없는 문명, 신화결핍 사회와의 대비축을 제공한다. 아직도 신화를 표면 장식이나 단순소재, 장르적인 기호로만 소비하는 한국문화예술의 현실은, 신화의 리디스크립션과 집단표상 축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일본 아니메와 신화적인 구조의 변형

일본 아니메는 신화를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변주와 혼종의 방식으로 현대적으로 형상하고 집단표상을 풍요롭게 축적해왔다.


일본 아니메는 현대대중문화의 장르 가운데 신화적인 구조의 해체와 변형, 혼종의 실험이 가장 집요하게 전개되는 영역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군에서 이런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의 계보는 분명히 드러난다.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는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토토로는 일본 신토와 다층적인 주술신앙에서 유래한 숲의 정령으로, 사람과 자연, 생명과 비사람적인 존재의 경계를 허물면서 집단표상 속에 잠재된 신화적인 상상력을 영상미와 내러티브 구조 속에 불러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신령, 요괴, 신과 사람의 다른세계異界가 교차하는 신화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소녀의 통과제례와 성장서사를 구축한다. 여기 등장하는 다양한 초월적인 존재들은 일본문화의 신화‧종족지학적인 전승을 현대적인 서사와 결합하는 변주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이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은 전통적인 주술신화의 생산물을 단순히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사의 구조와 영상미학을 통해 집단표상의 깊은 층위까지 확장시킨다.


급진적인 신화 변형과 혼종의 전범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집약돼 있다. 이 작품은 유대-기독교신화의 서사(천사, 릴리쓰, 아담, 인류보완계획)를 일본적인 심미감성과 심리학적인 모티프, SF 장르의 실험적인 문법과 결합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신화적인 우주를 구축했다.


엔젤이란 적대적인 존재는 성서적인 천사의 상징을 뒤틀어 만든 생산물이고, ‘에반게리온’은 전통적인 신화의 신체성—거대한 신·괴물의 이미지—를 현대적인 이미지와 청춘기의 불안, 자기동일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겹치게 한다.


이처럼 『에반게리온』은 신화의 원형적인 패턴을 해체하면서 장르적인 혼종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단일문화권에 갇혀 있던 신화적인 상징들을 탈맥락화‧다시맥락화 하고, 세계적인 팬덤과 신화적인 체계로 쌓았다.


뿐만 아니라, 『원피스』는 범세계적인 신화의 원형(항해와 모험, 우정과 시련, 보물 탐색 등)을 이색적인 장르설정과 결합하여 루피 일행의 대해적 서사를 영웅모티프의 현대적인 변주로 길어낸다. 『나루토』 역시 닌자라는 전통적인 집단표상에 신화적인 성장과 운명, 귀속과 혁명서사를 혼합한다.


이처럼 일본 아니메는 단순히 전통 신화를 모티브나 장식적인 모방이나 소비로 활용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구조적인 해체와 혼종, 변주의 되풀이라는 창조 원리를 통해, 대중문화의 차원에서 집단표상의 잠재력을 확장하고, 집단표상을 풍요롭게 축적하는, 전혀 새로운 집단적인 신화를 생성한다.


이는 최근까지도 신화를 표면적인 배경이나 장르 소재로만 소모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콘텐츠산업의 빈곤한 상상력과 구조적으로 대조된다. 일본 아니메에서 구현되는 신화풍요는, 신화없는 서사와 구조적인 리디스크립션의 결여 속에 머무는 한국 대중문화의 결핍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라틴아메리카 영화의 신화적인 서사

라틴아메리카 영화는 신화를 현대적인 매체 속에서 변주하고, 집단의 역사적인 상처를 신화적인 서사로 승화시켜 신화풍요의 계보를 이어간다.


라틴아메리카 영화는 현대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신화적인 집단표상의 갱신과 역사적인 상상력의 변용에 가장 치열하게 도달한 장르 가운데 하나다. 이 지역의 영화는 식민주의의 트라우마, 원주민 전승orality, 가톨릭신앙이라는 혼종신화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내면화하면서, 단순한 현실재현을 넘어 새로운 신화적인 구조와 시간의 층위를 구현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멕시코의 『아모레스 페로스』는 범죄와 폭력이라는 현실의 표면 너머에 윤회와 얽힘, 운명의 반복이라는 아즈텍신화의 세계상을 교차시킨다. 인물들의 삶과 죽음, 연속과 단절, 그리고 우연과 필연이 중층적으로 조직되고, 각자의 경험은 신화적인 패턴 속에서 존재와 운명을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같은 맥락에서 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 역시 망자의 날을 모티프로 삼아, 죽은 자와 산 자가 제왕나비와 금잔화라는 상징을 매개로 다시 만나는 장면을 통해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아즈텍적·가톨릭적 혼종 신화를 대중적으로 재현했다. 이는 영화가 개인적 상실을 공동체적 기억으로 전환하고, 가족의 이야기를 신화적 서사로 승화시키는 전형적인 사례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영화에서도 이런 신화적인 혼종은 두드러진다. 원주민의 우주론, 가톨릭의 상징, 식민과 혁명의 기억이 결합된 서사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초월적인 차원으로 고양시키고, 현실적인 억압과 해방의 층위마저 신화적인 윤리로 재배열된다.


집단적인 기억과 사회적인 상처는 단순한 리얼리즘의 틀을 넘어서, 신화적인 서사구조로 승화된다. 이때 영화는 자신들의 문명을 되풀이되는 윤회와 치유의 모티프로 새롭게 해석하고, 상처를 공동체적인 이야기―신화적인 패턴―로 전환함으로써 상상력의 위계와 집단표상의 층위를 두텁게 한다.


라틴아메리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시간성의 구조적인 변형이다. 서양적인 직선시간과는 다르게, 라틴아메리카 영화의 시간은 단절이 아니라 반복과 윤회, 과거와 현재의 공존, 죽은자와 산자의 경계 해체로 형상화된다. 이는 영화라는 현대적인 장르 안에서 신화적인 시간성을 새롭게 촉발하고, 공동체의 역사적인 기억을 현재화하고 문화적인 무의식을 풍요롭게 조직한다.


결국 라틴아메리카 영화는 신화를 배경 장식이나 장르적인 소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상처와 역사의 굴곡을 신화적인 서사―곧 혼종구조, 윤회적인 시간성, 초월적인 상상력―로 전환하는 문화적인 실험의 전위에 서 있다.


공동체는 이런 신화적인 서사를 통해 자신의 문명을 다시쓰고, 집단표상과 역사적인 상상력을 다시구성한다. 바로 이 대목이 라틴아메리카 영화가 신화풍요의 계보를 잇는 이유이고, 신화의 구조적인 결핍 속에서 되풀이해서 소재적인 차용과 장식에 머무르는 한국콘텐츠의 한계와 결정적으로 대비되는 지점이다.




한국콘텐츠산업의 신화차용과 한계

한국콘텐츠산업은 신화를 차용해 시각적인 화려함을 제공하지만, 신화적인 구조를 리디스크립션하지 못해 신화결핍의 반복을 드러낸다.


한국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은 신화적인 자산의 활용을 여럿 시도해왔으나, 그 대부분은 신화구조를 해체하거나 다시창조하는 리디스크립션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표면적인 차용과 장르적인 장식의 범주에 머문다.


대표사례인 영화 『신과 함께』는 불교와 주술신앙의 저승관을 스펙터클한 영상으로 재현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저승은 신화의 존재론적인 질서나 윤회적인 시간성, 죽음과 재탄생의 구조를 새롭게 뒤집는 창조가 아니라, 주인공 가족 간의 화해와 정서 드라마에 종속된 배경에 불과하다. 신화적인 소재는 화려한 시각적인 자원으로 활용되지만, 서사구조의 틀을 다시 짜거나 공동체의 비의식적인 상상력을 활성화하는 힘으로 승화되지 않는다.




집단표상은 신화적인 상징을 통해 현재화되고, 이 되풀이되는 현재화가 없을 때 상상력은 빈곤해진다.

- 칼 융Carl Gustav Jung, 『원형들과 집단무의식』The Archetypes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도 창세신화의 외연을 빌려 웅대한 세계관을 구축하려 했으나, 실재로는 서양의 판타지장르의 외피와 서사문법을 거의 그대로 벤치마킹한 사례에 가깝다. 등장인물과 세계관의 설정은 비주얼적으로는 화려하지만, 신화적인 시간성의 개입이나 존재론적인 질서의 리디스크립션, 곧 신화구조 자체를 해체하고 새로운 집단표상으로 집적하는 역량은 드러나지 않는다.


드라마 『아라문의 검』 역시 신화적인 소재를 포장된 외형으로만 차용했다. 고대신화를 호출하는 듯하지만, 실재로는 기존 장르문법과 상업적인 공식의 반복에 그친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콘텐츠산업의 신화활용이 집단표상과 문명적인 자기화의 새로운 회로를 열지 못하고, 소재의 단순차용·장식적인 소비에 머무르는 전형적인 결핍구조임을 드러낸다. 시각적인 화려함과 정서적인 연출은 어느 정도 확보되지만, 신화의 집단표상적인 힘—곧 공동체의 상상력을 조직하는 새로운 구조—를 창출하지 못한 채, 신화는 배경적인 정경이나 인테리어로만 소비된다.


서사의 뼈대나 뒷면, 존재론적인 전복을 시도하지 못한 신화활용은 문화적인 깊이를 획득하지 못하고, 문명병리인 신화결핍을 다시생산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다.


결국 한국의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은 신화를 차용하는 데는 익숙해졌으나, 그것을 자기언어와 구조로 해체하고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의 회로―말하자면 집단표상과 사회적인 상상력을 새롭게 조직하는 근본적인 리디스크립션―에는 이르지 못했다.


다른 신화풍요문명에서 신화는 문학, 예술, 영화, 대중서사에 걸쳐 되풀이해서 구조화되고 해체되며 새로운 집단표상과 정체성을 쌓는 힘의 원천이 됐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신화적인 구조의 이런 창조와 자기화 역량이 되풀이해서 차단되면서, 차용과 소비, 장식의 얄팍한 활용만 되풀이하고 있다. 신화결핍의 구조가 어떻게 한국문화콘텐츠산업 전반에 이식돼 있는지를 정확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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