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결핍’의 한국문명 (5/9)

5회 ― 신화풍요 vs 신화결핍 (세계문명 비교 3: 미술)

by 수군작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자기 집 자랑을 한다.

“우리집엔 금송아지 있걸랑!”

“나도!”

“우리집에도 있어!”

마지막에 어느 아이가 더듬거리며 말한다.

“우리 집에도 금송아지 있어…”

그러나 그건 거짓말. 그 아이 집엔 금송아지가 없다. 아이는 부모에게 묻는다:

“왜 우리 집엔 금송아지가 없어?”

부모는 답변한다:

“그거 만들다간 죽어. 그래서 우리 집엔 아무도 만들 수가 없었다!”




르네쌍스와 신화의 형상화

르네쌍스미술은 신화를 단순히 다시구현한 것이 아니라, 사람적인 형상과 예술적인 질서로 다시 쓰며 신화풍요의 집단표상을 구축했다.


고대암각화부터 현재까지 미술쟝르는 가장 오래된 신화풍요의 보물창고이다. 아래 짤은 그 대표적인 사레들이다. 다 언급할 수는 없기에 간단히 몇몇 사례들만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르네쌍스미술은 신화적인 형상화의 패러다임 자체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킨 매개였다. 중세의 신화는 주로 기독교적인 권위와 교리적인 상징의 질서 속에 포섭돼 있었으나, 르네쌍스는 고대그리스·로마 신화와 기독교신화를 예술적—특히 사람 중심의—언어로 대담하게 다시조합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창세기의 한 장면 이상을 제시한다. 사람의 육체를 통해 신적인 창조 행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면서, 신화의 상징체계를 인체의 아름다움과 결합시켰다. 거기에는 신이 사람을 단순히 만든다는 신화적인 서사가 아니라, 사람을 신의 형상·주체로 승화시킨다는 르네쌍스적인 리디스크립션이 자리한다.




신화적인 이미지는 단순히 과거를 다시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집단적인 질서를 조직하는 시각적인 언어다.

- 에른스트 카씨러Ernst Cassirer, 『국가의 신화』The Myth of the State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를 이탈리아 르네쌍스회화에 이상화된 여자의 현현으로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한다. 신화적인 상징들(비너스의 탄생, 조개, 바람 등)은 예술적인 형식과 새로운 심미감성으로 다시구성돼, 아름다움과 조화, 에로스와 순수의 토대를 근대적인 집단표상으로 갱신한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역시 고대신화와 철학의 인물들을 하나의 장면 속에 다시형상화한다. 신화와 이성이 분리되지 않고, 예술과 학문, 사람과 초월이 상징적으로 교차하는 집단표상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르네쌍스미술은 신화를 단순히 한낱 장식적인 이미지로 소비하지 않는다. 되풀이되는 형상화와 해체, 창조적인 조립의 과정을 거치고, 각 집단표상에 신화적인 상징의 계보를 축적한다. 그리하여 신화는 위기의 순간마다 공동체가 다시 불러내는 집단표상, 곧 새로운 질서를 기획하는 심미감성적·예술적인 언어로 기능한다. 신화적인 상상력이 캔버스와 조각, 건축의 언어에서 되풀이해서 호출되고, 그 심층쌓기가 유럽사회의 문화적인 자기화, 집단표상의 토대를 심화시킨다.



르네쌍스미술의 신화풍요의 이 전복적인 힘과 상상력의 두께는 한국미술의 신화결핍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단군신화와 무속적인 상징은 한국예술에서 독립적이고 되풀이되는 형상화의 계보를 형성하지 못했다. 신화적인 상징들이 미술의 실험과 창조적인 조립의 원천으로 작동하지 못한 채, 네이션주의적인 장식이나 표면적인 소재로 소비됐다.




앞-라파엘주의자들 및 예이츠의 아이리쉬 르네쌍스/켈틱 리바이벌

영국 및 아일랜드의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 운동은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라 네이션적인 자각과 근대적인 집단표상의 구축을 이끌어냈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앞-라파엘주의 미술운동은 신화적인 상상력의 회귀와 다시창조를 예술실천의 핵심적인 동력으로 삼은 중대한 사례이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존 에버렛 밀레이, 에드워드 번 존스 등은 아서왕 전설과 성배, 중세성자들과 여신들의 이야기를 단순한 과거의 유물들로써 소환하지 않았다. 르네쌍스 앞의 순수함을 환기하고, 신화—곧 집단표상의 원형적인 이미지를—회화적인 언어로 그들은 다시썼다. 단순한 복고적인 향수에 머무르지 않고, 고전과 중세신화를 색채와 상징, 밀도 높은 구상력으로 파격적으로 변주했다.


앞-라파엘주의 그림들


이 과정에서 신화는 빅토리아시대 영국사회의 새로운 집단표상을 조직하는 풍요로운 상징체계로 다시탄생했다. 화려한 색채, 상징적인 인물 배치, 비의적인 서사 구조 등은 신화를 사적인 판타지가 아니라 대중적·사회적인 상상력의 실천의 장으로 만들었다.


동시기 아일랜드의 예이츠와 아이리쉬 르네쌍스/켈틱 리바이벌은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의 실천이 네이션적인 자기화와 정치적인 자각의 토대가 되는 또 다른 사례를 보여준다. 예이츠는 켈트신화와 드루이드 샤먼주의, 요정·정령·영웅서사를 근대적인 언어와 극형식으로 리디스크립션하면서, 영국식민지배에 대한 아일랜드인의 저항과 해방의 상상력을 치밀하게 결집했다.


아이리쉬 르네쌍스/켈틱 리바이벌 그림들



그의 시와 연극은 단순한 낭만화의 틀을 거부하고, 신화적인 집단표상을 당대의 정치적·정신적인 동력으로 전환한 작업이었다. 그 결과 아이리쉬 르네쌍스는 문학·연극·미술 전반으로 확산돼, 신화를 언어·이미지·행동주의의 차원에서 되풀이해서 해체·다시조립했고, 이는 곧 “신화다시쓰기=네이션 다시쓰기”라는 자기화의 명제를 실천적으로 입증했다.


이처럼 앞-라파엘파와 아이리쉬 르네쌍스의 공통점은 신화가 예술적인 장식이나 과거의 스토리텔링 레거시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위기와 전환의 국면에서 예술가와 공동체가 공유하는 집단표상, 새로운 상징체계를 창출하는 근본적인 리디스크립션의 레거시로 기능했다는 점이다.


19세기 후반 영국 및 아일랜드의 두 운동의 공통점은 신화를 단순한 장식, 표면적인 소재로 소비하지 않고, 예술적·네이션적인 리디스크립션의 원천으로 활용했다는 데 있다. 이 지점에서 예술은 신화의 해체와 다시편성, 그리고 집단표상의 결집의 장이 됐고, 신화풍요의 힘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신화의 다시창조전통은 그뒤로도 쭈욱 이어진다. 상징주의회화들이나 존 사전트의 보스톤 라이버러리 벽화는 이런 전통의 계승이다.


상징주의 그림들


존 사전트의 보스톤 라이버러리 벽화들



반면 한국미술은 신화적인 레거시를 이 같은 방식으로 변주한 본격적인 경험이 거의 부재하다는, 곧 신화결핍의 특수성과 구조적인 한계를 더욱 선명히 드러낸다.




초현실주의 및 멕시코벽화운동의 사례

신화는 무의식과 혁명의 언어로 다시탄생하여, 집단표상을 형성하고 정치적·문화적인 자기화를 이끌었다.



20세기 초 유럽의 초현실주의와 라틴아메리카 멕시코의 벽화운동은 신화적인 형상화가 어떻게 새로운 집단표상과 정치적·문화적인 자기화의 동력으로 전환되는지를 매우 이질적인 맥락에서 입증한 사례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과 무의식이론을 창조적으로 수용해, 신화를 더 이상 합리의 외피나 표면적인 장식에 가두지 않았다.


멕시코벽화운동 및 초현실주의 달리의 그림들


살바도르 달리의 녹아내리는 시계, 괴기한 신체는 단순한 현실 왜곡이 아니라, 고대신화의 질서(예컨대 아폴론적, 오이디푸스적인 공식)를 분해하고, 사람욕망의 혼돈과 불안을 새롭게 언어화하는 리디스크립션의 실험이었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과 막스 에른스트의 꿈-몽타주 구성, 환각적인 이미지의 연쇄 등은 신화를 상상력의 심연에서 다시불러내어, 예술창조의 논리를 근본적으로 전복했다. 신화는 이 과정에서 억압된 의식의 욕구와 불안, 집단적인 트라우마의 원형으로 해체되고, 이를 예술의 언어와 패턴, 이미지 구조에 새로운 질서로 다시배치하는 도구로 승화됐다.


이에 비해 멕시코 벽화운동은 정치적인 혁명과 네이션의 집단기억을 신화적인 서사로 새롭게 조직하는 사회적인 실천의 현장이었다. 디에고 리베라, 오로스코, 시케이로스는 거대한 공공벽화에 아즈텍·마야 신화와 근대멕시코혁명의 기억을 한데 아울렀다. 이 벽화들은 단순한 미술작품이 아니라 민중교육과 정치적인 각성의 집단기억의 역할을 수행했다.




상징은 집단적인 에너지의 응결이고, 공동체의 삶을 지속시키는 무의식적인 힘이다.
–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신화와 실재』Myth and Reality


고유신화들이 혁명의 현재적인 기억과 결합하여, 공동체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하는 서사 장치로 기능했다. 신화는 더이상 과거 전승의 휴지조각들이 아니라, 혁명적인 집단정체성과 미래를 향한 비전, 실천적인 자기화의 동력이 됐다. 이런 신화의 예술적인 리디스크립션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가 신화풍요의 집단표상과 상상력을 어떻게 미술적·사회적인 실천의 핵심적인 언어로 조직했는지 보여준다.


그에 반해 한국미술은 이런 신화의 내적인 해체·조립, 의식의 심연의 언어화와 집단혁명서사로서의 실천에 체계적으로 도달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문명이 신화결핍 곧 예술창작의 구조적인 한계, 집단표상결핍, 그리고 자기화불능에 빠져있음이 이 비교틀에서 다시 확인하게끔 한다.




한국미술의 신화결핍

한국미술은 신화적인 이미지의 집단표상을 축적하지 못했고, 이는 한국문명의 신화결핍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단면이다


서양의 위와 같은 신화풍요의 사례들을 보니 어떤가? 왜 한국미술에는 저런 신화의 다시형상화 작업들이 없었나? 한국미술은 오랜 세월 신화적인 형상화의 계보를 축적하지 못했다. 자국신화에 대한 시각적인 다시형상화는 턱없이 빈곤했다.


단군신화는 네이션주의의 상징으로 되풀이해서 호출됐지만, 그것이 르네쌍스나 멕시코벽화운동처럼 집단적인 무의식의 풍요로운 이미지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단군상은 주로 기념비적인 조각으로만 존재했고, 그것이 예술적인 실험이나 서사적인 리디스크립션으로 확장된 적은 거의 없다. 민화와 무속이미지들은 한국적인 정서를 드러내는 예술양식으로 전승됐지만, 그것 역시 소재적이고 장식적인 디스크립션/그저쓰기에 머물렀고, 새로운 신화적인 구조를 창조하는 집단표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근대 이후 신화는 더욱 철저히 배척됐다. 식민지시기 신화는 미신으로 격하됐고, 근대화 시기에는 서양적인 미술형식과 제도가 절대적인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미술제도 안에서 신화는 창작의 원천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잔재로 취급됐고, 예술가들은 신화를 매개로 한 리디스크립션 훈련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미술은 신화적인 이미지를 축적하지 못했고, 집단표상 속에 메꾸기힘들 정도의 시작적인 결핍을 남겼다.


물론 예외적인 시도들이 있었지만, '겨우' '에게~?!?'라고 할 정도이다. 박수근의 회화는 일상의 소재를 통해 집단기억을 환기했고, 최민화는 한국적인 서사를 현대적으로 다시구성하려 했다. 무용가 안은미, 이희문, 이날치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작업은 무속적인 신화를 현대적인 퍼포먼스언어로 다시쓰려는 실험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고립된 예외일 뿐, 집단표상으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최민화의 그림들 및 안은미, 이희민, 이날치X앰비규어스


결국 한국미술의 신화결핍은 단순히 예술적인 소재의 부족 뿐만이아니라, '금송아지를 만들다간 죽는다'라는 뿌리깊은 문명사적인 금기구조의 시각적인 반영이다. 신화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되풀이해서 변주하는 집단적인 계보가 부재했기 때문에, 한국사회는 신화적인 이미지를 집단표상으로 축적하지 못했다. 다른 문명에서 미술은 신화풍요의 창고였지만, 한국에서는 신화결핍이란 공허를 드러내는 장이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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