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결핍’의 한국문명 (6/9)

6회 ― 신화풍요 vs 신화결핍 (세계문명 비교 4: 게임·디지털아트)

by 수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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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파이널판타지의 신화적인 구조

게임은 신화를 단순히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직접 체험하게 하는 형식으로 리디스크립션하며 신화풍요를쌓기시킨다.


비디오게임은 20세기 후반 이래로 현대적인 창조신화의 새로운 장으로 기능해왔다. 아래짤은 그것들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 가운데 몇개를 살펴보도록 하자.



『젤다의 전설』과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는 각각 고대 영웅서사와 신화적인 서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젤다의 전설』의 서사 구조는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이 체계화한 ‘영웅의 여정’과 정확히 조응한다.



주인공 링크는 부름에 응답하여 시련을 극복하고 세계 질서를 복원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핵심은 이 신화 구조가 단순한 서사적인 배경에 그치지 않고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게임플레이를 통해 체험된다는 점이다. 곧, 신화가 수동적인 서사가 아닌 능동적, 행위적인 형식으로 전환되며 플레이어는 서사의 수용자를 넘어 신화구조를 다시구현하고 변형하는 참여자가 된다.




플레이어는 서사의 수용자가 아니라, 신화적인 구조를 다시구현하고 변형하는 참여자다.

- 제스퍼 쥬울Jesper Juul, 『반쪽-실재: 실재규칙들 및 허구적인 세계들 사이의 비디오게임들』Half-Real: Video Games between Real Rules and Fictional Worlds

반면,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는 크리스털, 소환수, 신적인 존재 등 상징적인 모티프를 통해 독립된 신화체계를 구축한다. 이 시리즈는 특정 문화권의 신화에 국한되지 않고 그리스, 북유럽, 일본 등 다국적인 신화 요소를 혼종적으로 통합하여 새로운 대서사를 창조한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디지털 매체 속에서 구축된 신화적인 집단 상상력과 새로운 집단표상collective representation을 경험하게 된다.


두 시리즈 모두 신화를 단순 차용하는 단계를 넘어, 플레이어를 신화적인 행위의 주체로 위치시켜 서사의 리디스크립션re-description을 구현한다. 이처럼 고대신화의 원형을 새로운 매체 환경에 맞게 변주·확장함으로써 ‘현대적인 신화풍요’mythological abundance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는 소재적인 차용에 머물러 ‘신화결핍’mythological deficit의 양상을 보이는 일부 국내 게임의 한계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어쌔신크리드·하데스의 리디스크립션

두 게임은 신화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적인 체험과 다시구성의 장으로 만들어 신화풍요의 새로운 층위를 열었다.


그다음으로, 『어쌔신 크리드』와 『하데스』는 신화의 현대적인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를 다른 방식으로 실현한 사례로 주목된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역사적인 사실과 신화적인 요소를 교차시켜 서사를 구축하는 실험을 전개한다.


『오리진』과 『오디세이』에서 고대이집트나 그리스의 역사적인 맥락은 정교하게 재현되는 동시에, 미노타우로스와 같은 신화적인 존재가 게임플레이의 일부로 병치된다. 신화와 역사는 분리되지 않고 단일한 경험의 장 속에서 중첩적으로 작동하고, 이를 통해 신화는 허구적인 장식이 아닌 플레이어의 실질적인 경험을 구성하는 변형적인 서사 장치로 기능한다.




한편, 『하데스』는 그리스 신화 자체를 게임의 내적인 규칙 및 시스템으로 재구축한다. 플레이어는 신의 아들 자그레우스가 되어 지하 세계 탈출에 도전하고, 이 과정에서 신들은 권위적인 존재가 아닌 개성적인 인격체로 다시해석되어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한다. 특히 반복되는 죽음과 재도전이라는 로그라이크 장르의 핵심적인 규칙은, 죽음과 부활이 순환하는 신화적인 시간성을 게임플레이의 조건으로 직접 다시창조한 것이다. 이로써 신화의 서사 구조와 시간성이 게임의 내재적인 규칙과 완벽히 결합된다.


두 게임은 신화의 전달방식을 탈바꿈시켜, 고정된 과거의 이야기를 상호작용적인 경험의 장 속에서 ‘현재화’한다. 『어쌔신 크리드』가 역사적인 현실 속에서 신화의 실재적인 체험을 가능케 했다면, 『하데스』는 신화의 구조 자체를 체험의 양식으로 번역했다. 이처럼 플레이어는 신화 재서술 과정의 적극적인 주체가 되며, 신화는 21세기 게임문화의 집단표상 속에 새로운 위상을 점하게 된다.




NFT·메타버스 신화창작

디지털 네트워크는 신화를 창작·유통·집단체험하는 새로운 장을 열었고, 이는 신화풍요의 21세기적인 확장이다.


21세기에 이르러 신화의 형상화는 전통적인 예술의 물질적인 질곡을 벗어나 디지털 네트워크의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됐다. 이 변화의 선두에는 NFT 아트가 위치한다. 비플Beeple과 같은 작가들이 블록체인에 기록한 디지털 작품은, 단순히 소유와 거래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신화적인 상징을 창출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비플의 초현실적인 이미지는 현대인의 욕망, 공포, 기술에 대한 정념을 신화의 언어로 변형하고, 온라인 공동체는 이런 이미지를 되풀이해서 호출하고 변주함으로써 새로운 집단신화의 문법을 형성한다.



이런 디지털 창작신화의 흐름은 메타버스 공간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로블록스』Roblox나 『제페토』Zepeto와 같은 플랫폼에서 사용자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아바타라는 자신만의 분신을 제작하고, 가상세계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나간다.


이런 과정은 신화적인 토템과 기원을 가상공간에 이식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메타버스 내의 특정창작물은 공동체 전체가 공유하는 신화로 발전한다. 곧, 과거사회에서 토템이 공동체 집단표상의 핵심이었듯, 오늘날에는 블록체인과 메타버스 기반의 NFT가 디지털 토템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디지털 네트워크는 신화를 창조하고 유통하는 새로운 신전神殿이다.

- 마크 포스터Mark Poster, 『정보를 플리이즈: 디지털기계시대 속의 문화 및 정치』Information Please: Culture and Politics in the Age of Digital Machines


NFT 아트와 메타버스의 신화적인 상상력은 과거 부족사회의 집단신화의 생산구조와 유사하고, 신화창조의 장소만 디지털 네트워크로 이동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블록체인은 NFT를 '디지털 신화의 조각'으로, 메타버스의 아바타는 개인의 토템이자 창조신화의 표상으로 기능하게 한다.


이런 현상은 고대신화가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창작·유통·체험되는 '디지털 신화풍요' 시대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신화를 장식적인 소재로만 소비할 뿐, 신화의 다시창조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글로벌 디지털 집단표상이 급속히 축적되는 시대에 한국의 '신화결핍' 문제는 더욱 심화된다.




한국게임의 차용과 자기화 실패

한국게임은 신화를 창조적인 리디스크립션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차용·소재화에 머물러 신화결핍의 구조를 반복한다.


한국게임 산업은 세계적인 흥행 성과와 기술적인 완성도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의 층위에서는 뚜렷한 한계에 직면해 있다. 다양한 신화적인 레거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한국게임은 신화를 서사의 내적인 구조로 다시편성하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고, 표면적인 소재 또는 상업적인 장치로서 소비하는 데 머무른다.


대표적으로 웹툰과 영화로 성공한 『신과함께』의 모바일 게임화는 저승 신화의 구조적인 다시해석이 아니라, 캐릭터와 세계관의 상업적인 소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의 게임적인 확장 역시, 창세 신화를 빌려왔으나 실재로는 서양 판타지의 장르 문법을 모방하는 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국내 대표 MMORPG인 『검은사막』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 세계관과 신화적인 도상들은 중세유럽의 기사, 용, 마법 등의 서양 판타지 계보와 연속돼 있다. 한국고유의 신화나 무속 전통을 독창적으로 리디스크립션하려는 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쿠키런』 시리즈에서 일부 신화적인 모티프가 캐릭터의 특성 부여용으로 활용되거나, 『데이브 더 다이버』의 해저 세계에서 신화적인 상징이 등장하지만, 이것 역시 장르적인 요소의 다변화 이상의 의미를 확보하지 못한다. 신화가 게임의 서사 골격을 이루고, 집단표상을 창출하는 장치로 작동하기에는 역부족인 셈이다.




한국게임의 한계는 사회 전반의 '신화결핍' 구조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서양 및 일본의 게임이 신화를 현대적으로 다시해석하여 새로운 집단표상을 창출하는 반면, 한국게임은 신화를 상업적인 기호로 소비하는 데 그치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기술적·상업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신화의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를 통한 고유한 정체성 확립과 집단표상 구축에는 실패하는 2중적인 구조가 나타난다. 21세기의 새로운 신화매체로 불리는 게임에서조차 고유한 상징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현실은, 한국문명이 겪는 구조적인 신화결핍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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