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결핍’의 한국문명 (7/9)

7회 ― 집단표상의 결핍과 한국사회

by 수군작
신화결핍 복사(7).png



신화와 집단표상의 관계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집단표상의 구조를 형성하는 장치이고, 집단표상의 토대다


신화와 집단표상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은 인류 문명의 상상력과 자기 이해에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신화는 단순한 전승이나 옛이야기의 집합이 아니라, 공동체가 무의식적으로 공유하는 상징, 이미지, 그리고 구조화된 의미망의 창조방식이다.


이미 앞에서 장르별 사례들을 통해 쭈욱 살펴 봤듯이, 이런 상징과 이미지는 되풀이되는 형상화와 집단적인 기억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인 상상력을 조직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는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며 세계를 해석한다. 곧, 신화는 집단표상의 근원적인 원리로, 집단표상은 신화의 역사적인 다시창조를 통해 형성된다.



집단표상은 개인을 초월해 사회적인 현실을 조직하는 힘이다.

- 에밀 뒤르켕Émile Durkheim, 『종교적인 삶의 초등요소적인 형식들』Les Formes élémentaires de la vie religieuse

유럽에서는 이같은 신화-집단표상 관계가 중세성당의 벽화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극적으로 입증된다. 이들 시각적인 장치는 성서의 신화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다시구현하고, 문맹률이 높던 시기에 신화적인 상징을 집단심성에 각인시키는 집단표상의 매개체로 기능했다.


더 나아가 바그너의 오페라와 같은 음악적인 실천은 게르만신화의 서사를 청각적인 집단표상으로 전환하고, 신화의 다시형상화가 단일매체를 넘어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사례의 경우 신토제례와 불교적인 아이콘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집단표상의 형태로 축적됐고, 이는 현대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신화적·상징적인 이미지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신화적인 존재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현상은, 신토와 불교적인 메시지, 그리고 애니미즘적인 세계관이 집단표상에 깊이 내면화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멕시코벽화운동의 사례에서 봤듯이, 디에고 리베라나 호세 시케이로스 등이 원주민 신화와 혁명적인 서사를 한 화면에 병치함으로써, 집단적인 기억을 시각적인 상징으로 전환했다. 이들 벽화는 단순한 예술작품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집단표상을 형성하고 정치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화적인 표상으로 다시탄생했다.


결국 신화란 공동체가 되풀이해서 구축해온 집단표상의 원천이고, 집단표상은 신화가 현대적으로 축적된 형식이다. 문명이 신화를 창조적으로 다시해석하고 쌓아갈 수 있을 때, 집단표상 역시 풍요로워지고, 이는 사회적인 상상력의 기반이 된다.


반면, 신화가 부재하거나 금기시되는 사회에서는 집단표상 자체가 피상적이고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화와 집단표상의 관계를 연구하는 일은 어느 사회의 상상력, 자기화 역량, 그리고 문화적인 역량 전체를 이해하는 작업에 필수적이다.




신화결핍이 낳은 원초적인 다정함의 상실

신화결핍은 단순한 이야기 부재가 아니라, 원초적인 다정함의 상실을 한국사회 전반에 불러왔다


신화가 부재한 사회에서 가장 먼저 감지되는 현상은 집단표상의 황폐함이다. 신화란 단지 전승돼 오는 이야기의 집합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통적으로 매개하고 내면화하는 집단표상의 근원적인 저장고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신화결핍이 장기적으로 진행되면서 한국사람들의 집단기억 속에 신화가 주는 ‘원초적인 다정함’primodial intimacy은 심각하게 빈곤해졌다.


교육적인 맥락에서 신화를 상상력의 레거시로 인식하는 대신, 주로 미신이나 낡은 전통으로 치부했고, 이에 따라 세대별로 신화적인 다정함을 경험적으로 학습하고 형상화하는 과정이 사라졌다. 문학과 예술영역 역시 신화의 창조적인 다시구성을 시도하지 못한 채, 피상적인 소재 차용에 머물렀고, 집단적인 상징체계를 축적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미 봤듯이, 대중문화 속에서 단군신화나 무속신화가 부분적으로 소환되는 일이 있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1회적인 배경장치 또는 교과서적인 네이션주의 표상에 그쳤다. 단군은 공교육의 네이션주의적인 이미지로 환원됐고, 무속신화는 현대적인 예술이나 대중서사에서 주로 토속적·미신적인 장식거리로만 소화됐다. 그 결과 신화적인 상징성의 반복이 집단심성의 심층을 구성하지 못한 채, 공허한 소비와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작동만 되풀이될 뿐이었다.


정치영역에서도 상징의 빈곤은 뚜렷하게 확인된다. 분단과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신화적인 질서와 상징들은 체계적으로 억압되거나 왜곡됐고, 그 공백을 얄팍한 구호, 상업적인 이미지, 단발적인 정치적인 동원이 잠식했다.


국가적인 정체성과 결집의 상징은 역사적이고 신화적인 서사에서 나오지 않고, 순간적인 사건과 선전에 의해 대체됐다. 결과적으로 한국사회는 정치적인 상상력 측면에서도 신화적인 상징의 심층을 확보하지 못했고, 원초적인 다정함의 고갈만 되풀이됐다.


이처럼 신화결핍의 되풀이는 단순히 이야기의 부재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공동으로 매개해주는 원초적인 다정함이 한국사람들의 집단심성 속에 구축되지 못한 구조적인 증상이다. 예술, 교육, 정치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원초적인 다정함 곧 신화결핍의 이런 무력증은, 가장 직접적이고 현저하게 표출되는 한국문화의 아픈 지점이다.




정치사회적인 상상력의 결핍

신화결핍은 정치와 사회의 상상력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공동체는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언어와 상징을 상실했다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의 상상력은 신화적인 집단표상에 근원적으로 의존한다. 공동체는 신화적인 서사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 미래 비전, 그리고 질서구축의 언어를 획득한다. 서양사회에서는 자유, 평등,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적인 이상이 신화적인 서사와 결합해 집단표상을 형성했고, 프랑스혁명은 고대신화의 은유와 기독교 종말론을 결합하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정당화했다.


미국독립혁명 역시 ‘건국의 아버지’들을 신화적인 존재로 다시구성함으로써 정치적인 상상력과 정체성을 확장했다. 중국의 경우 혁명신화가 네이션해방 및 사회주의 질서의 정당화 장치로 작동했으고, 일본은 천황신화를 통해 국가 통합과 정체성의 근거를 마련했다. 이들 사례에서 신화는 정치적·사회적인 상상력의 심층적인 토대였으고, 장기적인 비전과 집단적인 자기이해의 언어를 제공했다.


그러나 분단체제와 경제성장담론을 근본서사로 자리잡게하고, 집단비전으로 형성해줄 신화적인 집단표상이 한국사회에는 결핍돼 있었다. 분단 뒤, 북한의 수령신화와 남한의 건국신화는 각각 권력의 정당화 도구에 머물렀을 뿐,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승화되지 못했다.


1960년대 뒤 경제성장의 신화적인 서사는 “다이내믹 코리아”와 같은 구호로 일시적인 활력을 불어넣었으나, 이는 신화적인 심층을 갖지 못한, 단기적인 동원과 홍보의 성격에 그쳤다. 이런 과정은 새로운 집단표상을 설계할 언어와 상징의 빈곤을 지속적으로 심화시켰다.




신화적인 상징은 사람이 세계를 이해하고 사회적인 질서를 정립하는 언어다. 그것이 부재하면 역사의 의미도 사라진다.

- 에른스트 카씨러Ernst Cassirer, 『사람에 관한 어느 에세이』An Essay on Man



이와 같은 한국문명의 신화결핍으로 인한, 정치적·사회적인 상상력이 근본적으로 황폐한 상황에서, 정치담론은 되풀이해서 단기적인 이해관계와 권력 투쟁으로 환원되고, 극단적인 이념대립과 적대적인 공생의 답정너 프레임에 갇힌다.


공동체가 장기적인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할 역량은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의 유통구조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한국의 경우 이 회로가 구조적으로 차단돼 있다. 결과적으로 정치와 사회적인 논의는 본질적으로 공허하고 임시방편적일 수밖에 없고, 깊은 집단적인 자기이해와 미래설계로의 이행은 언제나 지연된다.


요컨대, 한국사회의 정치·사회적인 상상력의 빈곤은 신화결핍의 직접적인 귀결이다. 신화의 구조적인 부재는 미래설계의 언어를 생산하지 못하게 만들고, 이는 곧 현재를 반복적이고 임시적인 방식으로 연명하게 하는 조건으로 귀착된다.


(계속)



이전 06화‘신화결핍’의 한국문명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