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 자기화 불능의 한국문명사
자기화는 단순히 외부문명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 고유의 신화적인 구조로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해 금송아지로 만드는 창조 행위다
자기화란 어느 문명이 외부에서 유입된 서사, 제도, 예술, 신화 등을 단순복제하거나 표면적으로 차용하는 단계를 넘어, 그 문명 고유의 형식과 상징체계, 언어적인 전통 속에서 새롭게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하는 창조적인 변형의 과정이다. 이는 이식의 차원을 뛰어넘는 내면화의 기제이고, 궁극적으로는 공동체가 자기정체성의 금송아지를 세우는 실천에 해당한다.
자기화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경우, 외부문명의 요소들은 더 이상 이질적인 차용물이나 낯선 도입물이 아니라, 그 문명 내부의 신화적인 질서와 상징네트워크 속에 심화·통합된 ‘자기 보물’로 전환된다.
사람 집단은 외부의 형태를 단순히 복제하지 않고, 자기 고유의 상징적인 질서 속에서 다시 조직한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쓰Claude Lévi-Strauss, 『구조인류학』Anthropologie structurale
서양문명사는 이미 익히 봤듯이 역시 신화풍요의 자기화로 규정된 역사의 연속이다. 고대신화와 기독교신화의 변증적인 수용과정을 통해, 르네쌍스의 인문주의와 근대철학적인 서사들이 다시창조됐다.
고대신화는 기독교적으로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되고, 중세 뒤 인문주의의 시선 속에서 새로운 예술과 인식의 토대를 이루었고, 근대적인 아이디어들은 고대고전적이고 기독교적인 신화전통의 자기화 위에서만 그 질서를 확장할 수 있었다.
두 문명은 외부서사들을 자기화하여 독자적인 금송아지를 창조했고, 이는 문명적인 창조와 집단표상의 풍요를 가능케 했다
중국과 일본의 문명사는 외래적인 서사들과 제도의 단순 모방을 넘어, 자국의 신화적인 구조와 문화적인 질서 속에서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하고 자기화하는 창조적인 전환의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국의 불교수용과정은 자기화의 고전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는 중국에 단순히 이식된 것이 아니라, 도가와 유학이라는 현지적인 질서 속에서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되고 새롭게 구조화돼 중국식 불교로 정착했다.
먼저 도가의 장생長生이라는 아이디어와 결합해 윤회와 업보의 개념을 내면화하고, 더 나아가 유학적인 사회윤리와 접목돼 현실세계에서의 도덕적인 실천과 조화를 중시하는 새로운 중국식 대승불교로 변환됐다.
이 과정의 정점에 선종禪宗이라는 중국 고유의 불교가 탄생했고, 이는 방대한 교리체계를 직관적인 수행과 간결한 언어로 전환하면서, 중국인의 철학적인 기호와 문화적인 언어망을 반영하고, 중국적인 집단표상과 심미감성을 집약했다.
달리말해, 불교는 중국의 내적인 논리와 상징네트워크를 통해 자기화돼, 완전히 다른 종교적인 질서로서 확립된 셈이다. 특히 선종禪宗은 불교의 자기화가 일어난 전형을 보여준다.
일본 또한 외래불교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원형을 보존하지 않았다. 대신 신토神道 및 천황제라는 고유의 고유 신화의 제도적인 질서 속에 불교를 해석하고 통합했다. 불교의 사찰과 신토의 신사가 동일한 공간에 공존하고, 불교는 일본의 신화체계와 긴밀하게 접속돼 천황제의 이념적인 기반에 편입됐다.
나아가 메이지 유신기 뒤, 일본은 서양의 제도·과학·기술을 신속하게 수용했지만, 이를 국가적인 신화와 전통적인 집단표상 속에 다시배치했다. 천황제를 중심으로 한 근대적인 집단표상은 서양의 근대성조차 일본만의 신화적인 구조로 치환하였다. 일본적인 불교, 일본식 근대라는 이런 자기화의 역동이야말로 일본 근대의 독립됨을 결정지은 구조적인 요인이다.
결국 자기화란 외부문명의 단순모방이 아니라, 자기문명의 고유 신화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하는,창조적인 다시신화화remythification 곧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의 행위다. 이런 자기화의 과정을 통해 문명은 외부요소를 자기만의 금송아지로 삼고, 새로운 집단표상과 새로운 창조신화를 축적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이 자기화의 회로가 구조적으로 되풀이 차단당했고, 그 결과 신화결핍과 자기화의 불능이 문명적인 운명처럼 고착됐다.
한국의 모방·차용은 단순한 수입을 넘지 못했고, 자기화 과정이 부재했기에 신화적인 상상력의 빈곤이 구조적으로 고착됐다
한국문명의 외부문명 수용 양상은 근본적으로 모방과 차용에 머무르는 구조적인 제약에 의해 규정돼왔다. 불교의 경우,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현지화의 단계를 거치지 못하고, 중국식 교단과 교리, 예배 형식을 거의 그대로 도입하는 데 그쳤다. 불상과 사찰 건축 역시 중국 또는 일본 양식의 되풀이되는 다시구현에 집중됐고, 독자적인 불교철학이나 예술양식의 창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유학 또한 마찬가지로, 제도적이고 윤리적인 프레임을 제공하는 기능에는 충실했으나, 이를 한국고유의 세계관으로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하는 자기화에는 실패했다. 유학은 근대 앞의 지배이데올로기로서 도덕적인 엄숙주의와 특유의 억압기제로 작동했을 뿐, 공동체의 신화적인 상상력을 확장하는 문화적인 자산으로 발전되지 못했다.
근대에 들어서서, 기독교의 도입과정에서도 꼭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된 교리와 제도가 그대로 수용되면서, 신앙의 토착화 및 재해석은 주변적인 시도로 머물렀다. 기독교 신화가 한국적인 서사 속에서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되지 못하였기에, 신화적인 집단표상 내지 자생적인 신앙체계의 구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대화 과정 역시 모방과 차용의 중첩이었다. 산업화, 민주화 각각의 단계에서 서양의 정치·경제·사회적인 시스템을 추격하고 복제하는 전략이 일관되게 선택됐다. 예술과 문화 영역에서도 서양적인 심미감성과 제도의 수입이 반복됐고, 고유의 신화적인 질서로 승화시키려는 자기화 실천은 차단됐다.
이처럼 외부문명을 표피적으로 흡수하되 내부의 신화적인 구조 속에서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하지 못한 결과, 한국사회는 ‘자기 금송아지’의 창출에 실패했고, 신화적인 상상력의 빈곤과 자기화 불능이라는 문명적인 결핍이 응고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문화적인 선택을 넘어, 구조적인 한계로서 장기화돼 왔다.
자기화 불능은 곧 신화결핍의 완결된 모습이고, 한국문명이 스스로의 금송아지를 만들지 못한 채 모방의 굴레 속에 갇히는 구조적인 귀결이다
자기화에 도달하지 못한 문명은 근본적으로 구조적인 한계에 직면한다. 한국의 경우, 신화적인 레거시나 외래제도의 수용은 이미 논증한 바처럼, 대체로 표면적인 차용이나 모방에 머물렀고, 이들 요소를 자기 고유의 서사와 상징체계로 전유하는 리디스크립션의 동력은 되풀이해서 봉쇄돼왔다. 결과적으로 형성된 자기화의 불능은 정치, 예술, 사회 담론 전반에서 동일하게 드러난다.
정치영역을 보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제도 자체를 이식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근간이 되는 자유와 평등, 인권 등 핵심적인 가치에 걸맞는 집단심성이나 집단표상의 내면화 곧 심층적인 다시신화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프랑스나 미국 및 멕시코 그리고 일본이나 중국 등에서 혁명과 건국의 서사가 신화적인 표상으로 집단기억의 심층을 리디스크립션했던 것과 달리, 한국은 외부모델의 도입에 그쳤고, 자유·평등은 구호의 층위에 머물러 신화적인 층위로 승화되지 않았다.
문화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인 전유의 과정이다. 이 전유가 차단될 때, 문화는 자기역사를 상실한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문화와 제국주의』Culture and Imperialism
예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근대예술은 서양의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다양한 장르 실험을 모방함으로써 발전의 외양은 갖췄으나, 신화적인 레거시의 해체와 다시형상화를 통한 집단표상의 창조, 곧 신화풍요의 계보는 거의 구현하지 못했다.
서양에서는 신화의 되풀이되는 해체와 다시시각화가 근대서양예술의 핵심적인 동력이었지만, 한국예술은 형식적인 실험에 국한돼 새로운 집단적인 문화기억을 조직할 심층서사로 나아가지 못했다.
사회적인 담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제성장, 네이션주의, 근대화와 같은 동원 구호를 통해 일시적인 결집을 이루었으나, 그것이 새로운 집단표상의 원초적인 다정함으로 축적돼 장기적인 집단비전으로 실현된 적은 없다. 이들 구호는 반복되는 단발적인 동원기제에 머물렀고, 공동체적인 상상력을 심층적으로 쌓는 신화풍요의 전통은 형성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자기화의 불능은 한국문명이 스스로의 내재적인 금송아지를 창조하지 못하고, 외부모델의 모방과 차용을 반복하는 구조로 귀결됐다. 따라서 신화결핍은 표면적인 신화풍요전통의 부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미래를 상상하고 설계할 자기만의 집단표상과 신화적인 언어를 상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한국문명은 여전히 자기만의 금송아지를 세우지 못한 채, 추격모방단계의 외적인 물질풍요로 스스로의 신화결핍을 대체하려는 망가진 자학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