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 신화결핍을 넘어: 금송아지를 세우고 부수는 경험의 시작
신화결핍은 단순한 문화적인 현상이 아니라, 한국문명을 설명하는 근본구조이자 문제의식이다
신화결핍은 한국문명을 읽는 근본구조이자 문제의식이다. 이는 단순히 신화적인 레거시가 부족하다는 표층의 빈곤을 뜻하지 않는다. 더깊게 신화를 창조하고 소유하는 행위 자체가 잠재적인 금기로 내면화된 구조를 가리킨다.
금송아지의 부재란 새로운 집단표상을 세우는 시도와 그에 대한 사회적인 승인 자체가 차단된 상태를 의미하며, 그 결과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의 회로가 폐쇄된다. 이 폐쇄는 예술적인 창조역량과 사회적인 상상력의 씨를 말려버리고, 역사와 정체성을 다시배열할 수 있는 내적인 장치—곧, 의미를 생성하고 확장하는 구조적인 상상력—를 마르게 한다. 따라서 신화결핍은 심미감성적인 취약함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방식의 결핍, 곧 자기화 능력의 상실로 읽혀야 한다.
신화를 창조하고 파괴하며 다시 창조하는 과정에서만 공동체는 자기 자신을 새롭게 한다.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영원회귀의 신화』The Myth of the Eternal Return
문명은 위기와 전환의 국면마다 기존의 신화를 해체하고 새롭게 구성하는 다시신화화remythification를 통해 스스로를 갱신해왔다. 신화란 영구적인 우상이 아니라, 집단심성의 심층에서 되풀이되는 파괴와 다시창조의 과정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질서다. 이 순환은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시간감각과 가치위계를 향한 리디스크립션의 쌓기이다.
반면 한국문명의 근현대 궤적에서는 신화풍요의 발언 및 행동 자체가 단절·금기·위협으로 억압되고, 신화를 다시창조하는 사회적인 대화가 부재했고, 집단적인 실험의 회로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세움-파괴-다시세움”의 학습이 쌓이긴 커녕, 신화결핍은 고정된 상태로 굳어졌다. 신화를 세우고 부수는 경험이 억압될 때, 그 문명은 의미를 다시배열하는 내적인 기어를 잃고 정체의 시간에 갇힌다. 문명사에서 다른 사회들은 신화를 순환적으로 창조하고 파괴하며 자기갱신을 이루었으나, 이처럼 한국은 이런 순환에 진입하지 못해 자기화의 근본 회로를 상실했다.
결국 문화적인 최종분석의 차원에서, 한국문명의 성립방식과 한계를 드러내는 궁극적인 문제의식은 신화결핍이다. 한국의 역사적인 궤적은 신화창조를 금기화했고, 이는 문명적인 자기화의 황폐함을 불러왔다.
역사적인 상상력은 신화적인 상상력 없이는 작동하지 않고, 신화를 다시 쓰지 못한 문학은 역사도 새롭게 쓰지 못한다
역사적인 상상력은 과거 사건의 단순한 기록을 넘어, 공동체가 시간과 기억을 구조적으로 조직하는 근본적인 탐구를 의미한다. 이는 연대기적인 나열에 그치지 않고, 반복·전복·순환·예감 같은 비선형적인 시간질서를 포괄하는 심층적인 리디스크립션 역량을 요구한다.
이 상상력의 핵심적인 원천은 신화로, 신화는 시간인식의 틀을 제공하고, 그 구조 위에서 사건을 해석하고 재배열하는 과정에서 역사는 성립한다. 신화적인 상상력이 부재하면 역사적인 상상력은 뿌리를 잃고 불모 상태에 빠지며, 사건은 피상적인 증언이나 정서적인 회고에 머무른다.
신화는 역사를 단순연속에서 의미있는 구조로 변환하는 권능을 지니는데, 결국 자국신화를 리디스크립션하지 못하면, 역사를 새롭게 배열할 수 없어, 문학은 '역사 없는 문명'으로 환원된다.
신화는 역사를 단순한 사건의 연속에서 벗어나 의미있는 구조로 바꾸는 힘이다.
- 미르치아엘리아데Mircea Eliade, 『신화와 실재』Myth and Reality
4·3항쟁, 한국전쟁, 광주민주화 운동 등 비극적인 현대사를 한국문학은 되풀이해서 서사화했으나, 이를 신화적인 구조 속에 편입시키는 역사적인 상상력을 확장하지는 못했다. 사건들은 문학적인 증언과 파토스 고양에 초점을 맞췄지만, 신화적인 질서로 다시배치해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그 원인은 신화결핍이고, 이로 인한 리디스크립션 역량의 부실은 역사의 다시배치를 봉쇄했다. 신화와 역사의 심층연결에서 신화적인 상상력의 불능은 패턴과 사건의 통합을 가로막았고, 이런 결핍은 한국문학을 단순기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는 '신화없는 문학은 역사없는 문명'이라는 진단으로 귀결된다.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었으되,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을 통해 역사를 리디스크립션하는 단계에는 나아가지 못했다
한국문학은 현대사의 비극을 되풀이해서 서사화는 했으나, 사건들은 증언과 정서호소에 그치고, 그 작업들은 기록의 재현과 회고에 머물렀다. 과거를 연표나 보고서로 나열한 수준일 뿐 새로운 질서와 의미망을 창조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문학의 성취와 한계를 결정짓는 구조적인 문제이고, 사실의 재현에 치중할 뿐, 신화적인 다시형상화를 결여해, 문명적인 자기이해의 공백을 불러왔다.
모든 문학은 신화의 반복과 변형이다. 신화없는 문학은 구조없는 문학이다.
– 노쓰럽 프라이Northrop Frye, 『비평의 해부』Anatomy of Criticism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광범위한 인물과 사건을 포괄하는 대하서사를 펼쳤으나, 주로 사실(?)의 재현에 머물렀다. 한국전쟁의 비극과 분단상흔을 세밀히 묘사했지만, 이를 신화적인 구조로 리디스크립션해 공동체의 새로운 집단표상이나 서사질서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민주화문학 역시 1980년대 이후 집단적인 고통·투쟁·사회 모순을 사실적이고 정서적인 증언자의 역할을 재현했을 뿐, 신화적인 리디스크립션을 통해 역사적인 상상력을 넓히는 데 실패했다.
근본적으로 이런 역사적인 상상력의 한계 자체가 신화결핍에서 유래한다. 신화와 역사는 본질적으로 연결된 차원으로, 신화는 세계·사람의 근원적인 패턴·상징을 미리 배열하는 구조이고, 역사는 그 위에서 실재를 전개한다. 이 둘은 구조·전개, 패턴·사건의 관계로 긴밀히 얽혀 있기 때문에, 신화적인 패턴·상징체계를 리디스크립션하지 못하면, 그결과 역사도 새로운 차원으로 재배열되지 못한다.
이는 한국문학의 현주소를 세계문학의 신화 풍요와 대비하는 통찰로 남는다. “신화를 다시 쓰지 못한 자, 역사를 다시 쓸 수 없다”는 명제는 문명적인 조건이다.
한국문명이 신화결핍을 넘어설 유일한 길은 자기 금송아지를 세우고 부수고, 신화를 리디스크립션하는 창조적인 회로를 되살리는 것이다
신화결핍을 넘어서는 유일한 길은 한국문명이 자기 금송아지를 세우고 부수는 창조적인 순환을 되살리는 데 있다. 이는 신화의 리디스크립션의 회로를 다시가동하는 것으로, 새로운 신화창조를 위해, 기존구조의 해체를 위해, 비록 죽을 지언정, 죽음을 각오하고 금기에 도전하여, 금송아지 만들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집단심성의 고질적인 금기구조, 특히 유교적인 보신주의를 깨버려야 하고, 금송아지만들기를 문학·예술·교육의 사회적인 전역으로 확장해야 하고, 고립된 실험을 집단적인 회로로 연결하는, 사회적인 대화의 네트워크를 넓혀 나가야 한다.
리디스크립션은 우리가 현행 상황을 새롭게 묘사하고 미래의 선택지를 창조하는 수단이다.
-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 『자유주의와 리디스크립션의 정치학』Liberalism and the Politics of Redescription
한국에서 희미하게 감지되는 금송아지만들기의 가능성으로는, 신화구조를 내면화하고 현대적인 다시해석으로 리디스크립션하는 성취를 보인 한강의 소설이 있다. 또한 최민화의 그림들은 자국신화의 새로운 시각화의 전범을 보여주고, 안은미 및 이희문 그리고 이날치 밴드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협업은 판소리·무속의 상징계를 현대공연으로 리디스크립션한 신화창조의 싹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들은 아직 그 사회적인 대화의 네트워크가 좁디좁은, 고립된 시도들로, 사회·문명적인 신화풍요에는 미치지 못한다. 당면과제는 비록 고립된 이런 실험들이라도 쌓아서, 리디스크립션의 집단회로로 전환하는 것이다.
자기 금송아지를 의식적으로 만들고 해체하는 문화적인 경험을 우리가 되풀이해서 쌓고, 신화적인 상상력을 문학·예술·교육·사회의 각 영역에서 조직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면, 조금씩 자기화의 순환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실재로 그 끝이 어떠할런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신화결핍을 계속 우리가 방치하면, 그 결과는 “코리아 이즈 오버”가 될 것이란 점은 확실하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자기 집 자랑을 한다.
“우리집엔 금송아지 있걸랑!”
“나도!”
“우리집에도 있어!”
마지막에 어느 아이가 더듬거리며 말한다.
“우리 집에도 금송아지 있어…”
그러나 그건 거짓말. 그 아이 집엔 금송아지가 없다. 아이는 부모에게 묻는다:
“왜 우리 집엔 금송아지가 없어?”
부모는 답변한다:
“그거 만들다간 죽어. 그래서 우리 집안엔 아무도 만들 수가 없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