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혐오' 극복기1: 집단주의적인 왜곡을 넘어

1회 ― 신화혐오의 피라미드 및 1단계 신화편향①: 무해한 망상

by 수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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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 무지한 것은 차라리 괜찮다. 당신은 어떠한가? 신화를 비웃거나, 얕보거나,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마음은 없는가? 만약 있다면, 그 순간부터 ‘신화혐오/미토헤이트’mytho-hate는 시작된다.

신하비하, 신화혐오, 신화공포—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 정체는 개찐도찐 정도의 차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부터 당신의 신화혐오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살펴보자.

그 시작은 가벼운 회의주의이다. 이것이 교육과 제도를 통해 고착되면, 왜곡된 집단지향—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억누르며 이기주의와 혼동되는 구조—이 신화적인 상상력을 질식시킨다.

결국, 신화는 문화자원이 아닌 미신으로 몰리며, 공동체의 풍요로운 집단표상으로 성숙해갈 계기를 잃어버린다. 이를 넘어서는 길은 신화풍요의 비판적인 계승, 곧 금송아지로의 귀환이다.

신화를 서사의 첫 언어로 우리가 다시인식할 때, 우리는 왜곡된 집단지향을 넘어 개인의 자율과 공동체 결집력을 조화시킬 수 있다.

이번 연재는 '신화혐오'의 피라미드 구조를 5단계로 나누어 살펴본다. 가벼운 회의주의로부터 전면적인 배척 곧 철폐까지, 국내외 사례들을 비교하며, 왜곡된 신화혐오가 어떻게 신화적인 상상력을 억누르는지, 그 메커니즘을 드러내고, 이를 넘어서는 비전을 제시할 것이다.






신화혐오의 피라미드 및 1단계 신화편향①: 무해한 망상


현대사회에서 신화는 ‘아이들의 얘기같은 무해한 망상’으로 종종 취급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사적인 억측이 아닌 문화적인 왜곡의 산물이다.

18세기 프랑스계몽주의 볼테르 계열의 합리주의자들은 “신화는 아이들의 얘기처럼 무해한 망상일 뿐이다"Myth is nothing more than a harmless fancy, like children’s tales라고 단언하며, 고대신화들을 유치한 우화로 격하했다.

볼테르 자신도 “신화는 의심스러운 미신일 뿐, 타당한 지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Myth is a suspicious superstition, not recognized as valid knowledge라며 과학적인 지식만을 지식으로 승인했다. 이 태도는 합리성이라는 깃발 아래 신화적인 상상력의 영토를 축소시키고, 신화를 문화의 주변부로 밀어냈다.



신화는 반증불가능한 어느 판타지, 과학적인 지식에 걸맞지 않다Myth is an unfalsifiable fantasy, unfit for scientific knowledge.

— 칼 포퍼, 초기 합리주의의 적절한 인용 변형

이런 흐름은 20세기 초에도 변주되어 나타났다. 칼 포퍼Karl Popper(1902~1994)는 ‘비판적인 합리주의’의 초창기 입장에서, 과학적인 이론의 가치는 반증 가능성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이 틀에서 신화는 반증 불가능한 이야기이므로 과학의 영역 밖에 위치한다.

포퍼가 의도한 것은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합리적인 기준의 제시였지만, 초기 해석에서는 ‘신화는 검증 불가능하므로 지식으로서 무의미하다’는 결론으로 쉽게 전이됐다. 이 역시 계몽주의의 유산과 맞물리며, 신화를 합리성 바깥으로 추방하는 지성적인 토대의 한 축이 되었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 조선의 유학은 무속신화 및 특히 단군신화를 ‘미신적인 유물’로 규정하고 사회의 도덕적인 안정을 해진다라는 명분으로 배척했다. 이 시선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날 일부 대중 담론에도 남아 있다.

한국의 유학사회처럼 불확실함을 회피하는 문화에서는, 신화가 제공하는 모호함과 다층적인 해석의 가능성이 불편한 요소로 간주된다. 그 결과, 집단은 합리성을 명분으로 상상력의 영역을 잘라낸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라, 집단규범이 개인의 해석 자유를 억누르고, 그 빈자리를 ‘안전하고 확실한 지식’이라는 이름의 획일적인 잣대가 채우는 구조적인 왜곡이다.

신화혐오의 1단계인 가벼운 회의주의는 언뜻봐서는 개인의 합리적인 판단처럼 보이고, 겉으로는 사회질서유지를 위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재로는 불확실함과 다층성을 불편해하는 집단심성이 합리성의 이름으로 사회적인 상상력의 뿌리를 잘라내는 일이다.

신화혐오적인 집단심성은 불확실함을 회피하려는 메커니즘을 갖는다. 그 탓에, 합리성과 도덕의 틀 밖으로 신화를 추방하는 것에 본인들도 모르게 동조하는 것, 이것이 가벼운 회의주의 단계이며, 전체 신화혐오피라미드의 기반을 형성한다.


신화는 인류집단의 상상력을 결집시키는 첫 언어다Myth is the first language that unites the imagination of a community.

— 조지프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1949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1904~ 1987)은 “신화는 인류집단의 상상력을 결집시키는 첫 언어다”Myth is the first language that unites the imagination of a community라고 했고, 칼 융Carl Jung(1875~ 1961)은 “신화들은 인류의 원초적인 언어이며, 집단무의식의 기본단위들이다”Myths are the primordial language of humanity, the basic units of the collective unconscious — 『사람과 그의 상징들』, (1964)라 했다.

그러나 신화를 질서에 위협적인 요소로 규정하는 집단심성 아래에서 신화는 무해한 망상이라는 이름으로 배척된다.

가벼운 회의주의의 경계심, 곧 ‘맹목적인 신앙의 위험’은 유효하다. 그러나 그것이 상상력과 문화기억을 배척하거나 혐오하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화를 망상으로만 한정하는 대신, 사회적인 상상력의 원천이자 정체성의 설계도로 다시규정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금송아지의 귀환—비판과 계승이 결합된 창조적인 회복—이 가능해진다.

1회차에서는 신화혐오 피라미드의 전체 지형도와 첫단계인 신화편향을 그렸지만, 다음 2회에서는 가벼운 회의주의가 어떻게 교육에 의해 신화편향으로 심화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사회적인 상력의 뿌리를 갉아먹는지 살펴볼 것이다.



※ '신화혐오'라는 용어의 형제들


이런 '탈신화화'demythologisation, '신화-과학 충돌설'conflict thesis, '신화=미신론'superstition, error을 더 상위 수준에서 하나로 퉁치며 메타화할 수 있는 용어를 제안한다면, 아래와 같은 후보군이 있다.





※ 추가적인 미토-헤이트의 표현 사례들


미토헤이트mytho-hate는 신화, 이야기, 또는 거짓 진술에 대한 극단적인 공포나 혐오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이전에 언급된 표현들(신화 자체의 부정, 신화 옹호자들의 조작적 오용 비난, 신화 퇴출 주장, 신화 풍요 주장의 위험성 지적, 신화의 미신적 본질 강조 등) 밖에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심리학, 문화비평, 일상 담론에서 관찰되는 패턴으로, 신화를 '비합리적 오류'나 '사회적 해악'으로 보는 태도를 반영한다. 아래에 추가적인 미토-헤이트의 표현 사례들을 쭉 나열하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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