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 1단계 신화편향②: 무가치한 미신
신화에 무지한 것은 차라리 괜찮다. 당신은 어떠한가? 신화를 비웃거나, 얕보거나,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마음은 없는가? 만약 있다면, 그 순간부터 ‘신화혐오/미토헤이트’mytho-hate는 시작된다.
신하비하, 신화혐오, 신화공포—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 정체는 개찐도찐 정도의 차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부터 당신의 신화혐오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살펴보자.
그 시작은 가벼운 회의주의이다. 이것이 교육과 제도를 통해 고착되면, 왜곡된 집단지향—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억누르며 이기주의와 혼동되는 구조—이 신화적인 상상력을 질식시킨다.
결국, 신화는 문화자원이 아닌 미신으로 몰리며, 공동체의 풍요로운 집단표상으로 성숙해갈 계기를 잃어버린다. 이를 넘어서는 길은 신화풍요의 비판적인 계승, 곧 금송아지로의 귀환이다.
신화를 서사의 첫 언어로 우리가 다시인식할 때, 우리는 왜곡된 집단지향을 넘어 개인의 자율과 공동체 결집력을 조화시킬 수 있다.
이번 연재는 '신화혐오'의 피라미드 구조를 5단계로 나누어 살펴본다. 가벼운 회의주의로부터 전면적인 배척 곧 철폐까지, 국내외 사례들을 비교하며, 왜곡된 신화혐오가 어떻게 신화적인 상상력을 억누르는지, 그 메커니즘을 드러내고, 이를 넘어서는 비전을 제시할 것이다.
현대 교육과 제도의 틀 속에서 신화는 종종 '의심스러운 미신'으로 취급된다. 이는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문화의 신화적인 기초를 약화시키는 편향으로 이어진다. 이번 2회에서는 교육 및 식민주의라는 제도적인 렌즈를 통해 가벼운 신화혐오인 회의주의가 어떻게 고착되는지를 살펴본다.
18세기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의 경우에서 신화에 대한 회의주의를 볼 수 있다. 뉴턴의 과학적인 방법론과 계몽주의 영향 아래, 경험적인 증거가 없는 믿음을 거부하는 그의 합리적인 비판 맥락에서 신화 역시 합리적인 증거가 부족한 '허위의 서사'였다.
예컨대, 그의 책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Dialogues Concerning Natural Religion(1779) 속에서 종교를 '인류의 공포와 무지로부터 비롯된 미신'이라고 비판하면서, 신화적인 요소(예: 신의 개입이나 기적인 이야기)를 '미신'으로 그는 규정했다.
신화는 시대착오적인 어느 잔재, 후진적임의 어느 상징이다Myth is an anachronistic remnant, a symbol of backwardness.
- 데이비드 흄(회의주의, 18세기, 적절한 인용 변형)
신화를 '사람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허구'라고 본 것이나, 『사람의 이해력에 관련된 어느 연구』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1748) 속에서, 기적을 "자연법칙의 위반"으로 규정하고, 신화적인 서사(예: 고대 그리스 신화나 성경 이야기)를 그와 비슷하게 취급한 것처럼, 그의 신화편향은 신화를 비과학적이고 구시대적인 것으로 치부했다. 이는 그뒤 제도권 교육 속에 깊이 스며들어 신화혐오의 초기 단계를 형성했다.
20세기 초(1890~1940년대) 미국은 산업화와 이민 증가로 교육제도가 급변했다. 이 당시 존 듀이John Dewey 같은 철학자가 주도한 진보주의 교육운동progressive eduaction movement은 실용적·과학적인 학습을 강조하며 전통적·권위 중심의 교육을 비판하고 실질민주주의와 과학적인 생각을 키우는 '현대적' 커리큘럼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 운동 내 일부 세력은 서양중심의 합리성을 절대화하며,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신화들을 “시대착오적인 잔재”로 간주하고 교육과정에서 배척했다. 1934년 인디언 인정법Indian Reorganization Act이 입법되기 앞까지, 진보주의 교육정책은 원주민 신화를 철저히 배척하고 '미국화'를 강요했다.
이는 합리성과 현대성을 강조하는 교육이념이 문화적인 다층성을 억압하는 교육제도 속의 회의주의적인 신화혐오를 보여주는 것으로, “회의는 상상력을 잠식하나, 신화는 문화의 기초이다”Skepticism erodes imagination, but myth is the foundation of culture라는 반론이 무색할 정도로 강력한 흐름이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교육정책 문서 속에 “단군신화 같은 것은 과학적인 가치가 전혀 없다”는 식의 표현이 반복되었다. 무속신화와 당산제는 ‘후진적’으로 낙인찍혀 행정·교육 영역에서 체계적으로 배척되었다. 이 과정은 1회에서 다룬 가벼운 회의주의가 어떻게 편향적인 제도로 굳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신화혐오가 신화결핍을 낳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신화풍요라는 미명 아래 결과적으로는 신화혐오를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환빠”가 그런 사례이다. 단군신화를 과장해 자국문화쇼비니즘을 주장하는 민족주의적인 왜곡은, 왜곡된 집단지향이 개인의 자율을 억압함으로써, 합리성을 갉아먹고 신화혐오를 퍼트리는 역설적인 형식이다.
이들 1단계 신화혐오 곧 신화편향적인 쏠림들의 공동된 메커니즘은, 집단주의가 개인의 해석의 자유를 억누르고, ‘실용적이고 비판적’이라는 표어 아래 문화의 기초를 억압하는 구조적인 왜곡이다. 결국, 국제·한국 사례 모두에서 이런 왜곡은 신화를 미신으로 몰아가고, 집단주의적인 이기주의를 사회 전반에 퍼뜨린다.
신화는 과학이 다루지 못하는 세계를 해석해 온 집단기억이다Myth is the collective memory interpreting the worlds science cannot grasp.
- 미르치아 엘리아데 『신화와 실재』(1963)
반면,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윗말은 교육과정 속 신화혐오적인 왜곡과, 신화를 문화자원으로 복원하려는 신화풍요 담론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이 긴장 자체는 결코 나쁜 게 아니다. 문제는 이 긴장을 사회적인 상상력의 풍요로 이끌어내는 신화적인 다시쓰기의 열정이 과연 우리에게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