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 2단계 신화비하: 과학주의 또는 포지티브주의
신화에 무지한 것은 차라리 괜찮다. 당신은 어떠한가? 신화를 비웃거나, 얕보거나,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마음은 없는가? 만약 있다면, 그 순간부터 ‘신화혐오/미토헤이트’mytho-hate는 시작된다.
신하비하, 신화혐오, 신화공포—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 정체는 개찐도찐 정도의 차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부터 당신의 신화혐오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를 살펴보자.
그 시작은 가벼운 회의주의이다. 이것이 교육과 제도를 통해 고착되면, 왜곡된 집단지향—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억누르며 이기주의와 혼동되는 구조—이 신화적인 상상력을 질식시킨다.
결국, 신화는 문화자원이 아닌 미신으로 몰리며, 공동체의 풍요로운 집단표상으로 성숙해갈 계기를 잃어버린다. 이를 넘어서는 길은 신화풍요의 비판적인 계승, 곧 금송아지로의 귀환이다.
신화를 서사의 첫 언어로 우리가 다시인식할 때, 우리는 왜곡된 집단지향을 넘어 개인의 자율과 공동체 결집력을 조화시킬 수 있다.
이번 연재는 '신화혐오'의 피라미드 구조를 5단계로 나누어 살펴본다. 가벼운 회의주의로부터 전면적인 배척 곧 철폐까지, 국내외 사례들을 비교하며, 왜곡된 신화혐오가 어떻게 신화적인 상상력을 억누르는지, 그 메커니즘을 드러내고, 이를 넘어서는 비전을 제시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과학주의scientism·과학중심주의·과학제일주의·과학우선주의는 신화를 ‘비합리적인 오류’로 규정하고, 근대화의 필수적인 장치인 것처럼 포장한다. 그러나 이는 상상력의 자원을 ‘낡은 유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해왔다. 과학주의는 진보를 가져왔지만, 문화 다양성을 억누르는 어두운 면도 지녔다는 거다. 이번 3회에선 포지티브주의positivism·실정주의·실증주의의 절대화인 과학주의가 신화를 미개한 원시문화의 잔재로 비하·배척하는 과정을 국제 및 한국 사례로 살펴 보겠다.
신화는 원시적인 단계의 어느 생산물이고, 네이션의 발전을 저해하는 어느 미신이다Myth is a product of primitive stages, a superstition hindering national development.
- 오귀스트 콩트 Auguste Comte, 『실증철학 강의』
위 발언은 과학주의가 합리성을 강조하고 상상력을 집단 차원에서 질식시키는 대표적인 언설로, 19세기 프랑스의 포지티브주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1798~1857)의 것이다. 그는 인류지식체계의 진화를, 3단계(신학·형이상학·포지티브주의)로 나누고, 신화를 '원시적인 첫 단계'로 규정했다.
포지티브주의적인 방법이 인류를 '미신'에서 해방시킨다는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신화라는 것을 과학적인 합리성에 적대하는 것으로 그는 봤고, 상상력을 '하위 범주'로 격하시켰다. 콩트의 이론은 유럽에서 과학주의를 주도했고, 특히 제국주의 시대에 '원시' 문화를 미개하다고 비하하는 도구로 쓰였다.
실재로 콩트의 포지티브주의는, 청왕조 말기 및 신해혁명(1911년) 앞뒤로 중국개혁파들에게 전해졌다. 그러자, 중국신화자산들은 네이션발전을 방해하는 미신으로 낙인찍혔고, 과학주의는 합리성이라는 명분으로 사회적인 상상력의 영역을 체계적으로 비하하는 도구가 됐다.
아편전쟁(1840~1842) 뒤, 제국주의 침략으로 청왕조가 위기에 처하자, 중국지식인들은 서양 과학 및 정치제도를 도입하려 했다. 콩트식 과학주의는 프랑스·영국철학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입되어 변법자강운동(1898)과 신해혁명(1911) 기간 강유위·량치차오 같은 개혁파들의 생각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들은 유학과 결부된 고유한 서사소들(중화주의적인 천하·오랑캐 개념 등)을 미개한 봉건잔재로 규정했고, 황제黃帝 중심의 중화주의 전설들을 원시적인 미신이라 치부하고, 이를 폐기해야 과학적인 합리성이 자리잡는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서양과학주의를 명분으로 이들은 자국전통을 체계적으로 비하했다.
신해혁명(1911년)은 청왕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사건으로, 쑨원 등 혁명파와 개혁파가 주도했다. 혁명 후 신문화운동(1915~1920년대)에서 콩트식 포지티브주의는 절정에 달했다. 진독수 등 지식인들은 유학과 전통신화를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비판하고, 서양과학과 민주주의를 숭배했고, 봉건적인 데스포트사회의 병폐로 신화를 지목하면서, 과학중심의 교육을 촉구했다.
한국의 경우, 1960~1980년대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미신타파운동'으로 장승·서낭당·신당 등이 철거되는 등, 교육정책과 언론이 민속신앙을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규정했다. 이는 콩트의 포지티브주의와 다를 바 없었고,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운동과 연계되어, 미래세대의 교육에서 신화를 '비합리적인 오류 및 해악'으로 배척했다.
"무당은 천민으로, 미신을 퍼뜨린다"는 당시의 인종주의 발언에서 보듯이, 전통신화를 제거하고, 불확실함과 다층성을 통제하기 위해, 신화적인 집단기억을 향한 혐오를 발전주의 담론은 공동체 속에 조장했다.
이들 국내외 사례들은, 포지티브주의 또는 과학주의가 표면적으로 합리성과 진보를 내세우지만, 집단적인 근대화 프로젝트들과 결합해, 신화를 ‘퇴행적인 요소’로 혐오하고, 이 과정에서 집단주의가 상상력의 가치를 축소하는 구조적인 왜곡을 확대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과학주의의 이런 신화혐오들에 맞선 신화풍요의 담론들도 있었다. 중국에서 루쉰魯迅(1881~ 1936)은 자국전통신화들을 현대적인 자유의 추구로 연결짓는 사회적인 상상력의 리디스크립션의 생생한 실재사례를 보여줬다.
루쉰은 현대 중국의 여와女媧였다. 그 역시 새로운 우주, 새로운 세계, 새로운 중국을 창조하고자 했으며, 중화민족의 영혼을 다시 주조하고자 했다. ‘자유평등, 민주과학, 개성해방, 진화발전, 현대문명’이라는 ‘5색의 돌’을 녹여서 허물어진지 오래된 ‘하늘’을 보수하고자 했다.
– 왕부인王富仁, 「창조자의 고민의 상징」, 『루쉰전집 3권』, p. 469
루쉰의 『새로 쓴 옛날이야기들』故事新編은 말년(1920~1930년대) 창작으로, 10년 넘는 기간 동안 완성된 8편의 단편소설들의 모음이다. 이 작업을 통해, 과학주의가 신화를 미신으로 폄하하는 데 맞서 고대중국신화들을 역사적인 유머와 풍자로 리디스크립션/다시쓰기해, 현실비판의 중국적인 신화풍요를 루쉰은 드러냈다.
무엇보다 이는, 서양근대소설의 개념에 매몰되지 않고 중국의 전통적인 소설관념을 비판적으로 계승해, 소설사의 시원을 신화·전설로부터 시작한다고 보는 접근으로, 과학중심주의가 상상력을 억압한 시대에 대한 반발이다.
루쉰의『새로 쓴 옛날이야기들』의 핵심적인 의미심장함은 포지티브주의가 초래한 신화혐오를 넘어, 자국전통신화를 풍요로운 ‘신중국’의 집단표상으로 다시창조한 데 있다. 신화를 통해 근대화의 어두운 면—개인의 자율을 억압하고 자유를 에고주의로 왜곡하는 집단주의적인 왜곡—을 드러내며, 상상력과 합리성의 공존을 그는 강조했다.
이는 중국 근대지식인들의 전통배척을 비판하고 문화자강을 위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고, <합리성이 중심이 된 근대화의 상실>을 신화풍요의 담론으로 보완하는 중요한 텍스트로, 콩트식 과학주의를 비판하고, 신화적인 상상력의 가치를 다시비췄다.
또한 레비-스트로쓰Claude Lévi-Strauss(1908~ 2009)는 구조주의 인류학의 선구자로, 『야생의 마음』The Savage Mind(1962) 속에서 신화를 '원시적인 미신'으로 치부하는 과학주의를 비판하고, 이를 과학과 병행가능한 해석 체계로 다시평가했다.
그는 서양중심의 과학적인 합리성이 비서양문화의 지식체계를 '낡은 유물'로 폄하하는 태도를 물리쳤다. 대신 신화 또한 과학과 대등한, 논리적인 구조를 지닌 지성적인 시스템으로, 자연과 사회를 이해하는 독립적인 생각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콩트식 포지티브주의가 신화를 원시단계로 배척한 데 대한 대안으로, 신화적인 상상력을 억누르는 포지티브주의의 결점을 폭로했다.
신화는 어느 사회의 가치들 및 정서들을 응축한 (집단)심성의 어느 지도이다Myth is a mental map condensing a society’s values and emotions.
- 레비-스트로쓰Claude Lévi-Strauss, 『야생의 마음』The Savage Mind(1962)
위 발언은 신화가 단순한 이야기 모음이 아니라, 사회적인 모순을 해결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역동적인 체계임을 의미한다. 예컨대, 신화가 2항대립(생/사, 자연/문화)을 통해 세계를 분류·조정한다고 그는 분석한다.
비록 과학처럼 포지티브적인 증거들에 의존하지 않지만, 문화적인 맥락에서 신화는 과학과 동등한 쓸모를 가진다. 과학주의가 이 가치를 무시하면 집단기억의 폐기로 이어져 사회적인 상상력을 억압하게 됨을 말한다. 반대로 신화를 다시인식하면, 집단기억의 핵심적인 자원으로 신화가 기능해 개인과 집단의 연결을 강화한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은 한국같은 집단주의적인 이기주의의 사회—개인의 자율을 에고주의로 오독하는 왜곡된 구조—에서 특히 중요하다. 이런 병리를 넘어 신화풍요의 담론은 사회적인 상상력을 해방시킨다.
신화가 다원주의를 포용하고 창조적인 해석을 허용한다고 레비-스트로쓰는 강조하는데, 이는 루쉰의 『새로 쓴 옛날이야기들』처럼, 전통을 현대적인 집단표상으로 리디스크립션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결국 이는 '금송아지의 귀환'—비판적인 시각으로 과거를 계승하고 창조적인 회복을 이루는 과정—을 상징한다. 쉽게말해, 과학주의적인 경계와 집단표상의 보존을 적대시키는 게 아니라, 그 둘을 결합하면 더 풍요로운 문화를 열 수 있다.
이번 글을 통해 2단계 신화비하로 고착되는 과학주의의 역사성을 그렸으니, 다음 4회에서는 신화모욕의 3단계를 탐구해 보자. 이를 통해 신화혐오를 넘어 금송아지의 귀환을 상상하는 사회적인 상상력의 되찾기를 찾아보도록 하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