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학원에서 내가 배정된 반의 담임선생님은 학원 내에서도 빡세기로 매우 유명한 선생님이셨다. 보통 강한 의지로 시작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굉장히 안일한 생각으로 재수에 돌입한 나는 재수 내내 이 선생님과 대립하게 된다. 갈등의 시작은 유감스럽게도 재수를 시작한 첫날부터 발생. 야간 자습이 끝나기 한 시간 전 생활지도 선생님께서 교실에 찾아와 나를 부르신 것이 화근이었다.
"용인 지역 버스 타는 학생은 짐 다 챙기고 집 갈 준비 해."
생활 지도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바로 책을 덮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다. 그 순간 담임선생님께서 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반은 먼저 집에 가는 거 안됩니다."
너무나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기에 순간 교실은 정적이 흘렀지만 나도 고집으로는 꽤 정평이 나있는 사람이었다.
"제가 집이 멀어서요. 학원버스 타고도 한 시간 정도 걸려서 그러는데 조금만 먼저 귀가하면 안 될까요?"
"너 지금 집에 가고 싶어?"
"네."
"그러면 우리 반에서 나가!"
"네?"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생활 지도 선생님과 교실 밖으로 나가 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시더니 다시 교실에 돌아와 말씀하셨다.
"우리 반은 조기 귀가 없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 그나마 집이라도 일찍 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버텼는데 그것마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담임선생님의 강력한 통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수업이 있는 토요일은 물론이고 수업이 없고 학원버스도 운행하지 않는 일요일조차 모두 강제 자습을 하러 학원에 와야 했다. 대중교통을 타고 집에서 학원까지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거리였음에도 말이다. 주말에는 여가를 즐기겠다는 나의 꿈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니 눈 앞이 깜깜해졌다. 심지어는 쉬는 시간에 잠을 자거나 다른 학원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완전히 금지되었다. 한 학원생은 쉬는 시간에 옆자리와 이야기를 하다 담임선생님에게 크게 혼나고 학원을 그만두었을 정도였다. 이런 환경에서 앞으로 9개월 정도를 더 지내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 있어서도 나는 다른 학원생들과 다르게 3-40분가량을 혼나기만 하다가 끝이 났다. 공부 계획을 짜는 스케줄러 작성에서 내가 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 내용을 적어 놓으니 왜 당신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하냐고 훈계를 들은 것이다. 담임선생님과의 기싸움은 한 달이 넘게 지속되었다.
"모의고사 성적은 네 실력이 아니라고 했지! 언제까지 너랑 상관도 없는 성적을 가지고 왈가왈부할거야!"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조금 더 난이도 있는 문제집을 풀겠다고 하자 된통 혼났다. 고등학생 때는 항상 난이도 있는 문제집을 찾아 풀었었는데 여기서는 백날 기본서만 보라고 하시니 분에 찰 리가 없었다. 기본서에는 눈감고도 풀만한 문제밖에 없는데 이걸로 무슨 실력이 는다는 걸까. 내가 너무 수준에 맞지 않는 학원에 온 것은 아닌지 마음속에는 의심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