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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꽈사 Sep 15. 2023

[난임일기|08] 4.6cm의 혹이 나에게 보낸 신호

시험관 1차 중단 이후 이야기

조기배란 후 2주, 다시 난임병원 방문


지난 난임일기에서도 언급하였듯 시험관 1차를 위해 IVFM HP를 맞던 중, 배주사 시작 2일 차에 조기배란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과배란이 중단되었고, 다음 생리 때 다시 초음파를 보고 추후 진행 방향을 정하기로 하였다.


지난 2주 동안 더 열심히 운동하고, 술도 마시지 않고, 시아버지가 보내주신 귀한 산삼도 먹으며 몸을 관리했다. 그리고 다행히 생리가 정확하게 2주 뒤 시작 하였다. 이번엔 추석연휴가 매우 길기 때문에 생리만 제때 터져준다면 추석 전에 과배란과 채취까지 끝낼 수 있을 거라는 크나큰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단 첫 번째 단추가 잘 끼워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시아버지가 주신 산삼, 감사해요! 근데 너무 맛이없어요..그래도 다 먹었어요..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병원을 방문했다. 난임병원에서는 흔히 '생리 시작 후 2~3일 차'에 내원하라고 한내한다. 이때가 생리의 양이 가장 많을 때이다 보니, 이 기간에 보는 초음파는 참 고역이다. 초음파를 자세히 보기 위해 배를 누른다면 더더욱 불편하다. 하지만 선생님이 보고 싶은 부분이 더 잘 보일 수 있다면 아무렴 어때! 하며 참아야 한다.



4.6cm 혹이 나에게 보낸 신호, '일시정지'


아픔을 찾아가며 선생님과 함께 초음파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수많은 초음파들 중 가장 큰 동그라미를 보았기 때문이다. 지난번 썼던 난임일기 6화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8월 30일 2.6 cm였던 물혹 2개가 9월 15일 4.6cm 1개가 되어 있었다. 두 개의 물혹 중 하나는 난포가 터지고 난 후 쪼그라들어서 사라진 것이라고 해도, 그중에 하나가 2주 사이에 2cm 나 커져버린 것이다.


산삼이 문제였나? 아직 과배란 주사 영향이 남아있는 건가? 그동안 내가 스트레스받았던 게 있었나? 지난 2주 동안의 내가 했던 모든 행동들이 자책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너무 속상했다. 지난 1년 동안 임신시도를 하며 좌절했던 수많은 순간들 중 제일 속상했다. 진료실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간신히 참으며 선생님과 추후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과배란을 시작하며 갑자기 생긴 물혹인 만큼, 갑자기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통 2달 안에 사라지거나, 작아지므로 2달 동안 맘 편히 쉬는 것을 권장한다.


-두 달 뒤 물혹이 사라지거나 작아졌을 때,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시험관 1차를 시작 하자. 만에 하나 물혹이 그대 로거나 커진다면 그때의 최선의 조치와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관을 시작하자.


-피임약이 가진 장단점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피임약은 주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므로, 다시 시작하는 시기를 예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같이 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다낭성에게는 큰 장점이다.


-다만 선생님의 경험 상, 시험관 주기 직전 피임약을 복용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시험관은 단기전이 아닌 장기 전인 만큼, 피임약을 복용하지 않고 몸에 휴식을 주는 것을 권장한다. 게다가 피임약을 먹으며 기다린다고 해서 물혹이 '무조건' 작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과배란으로 인해 물혹이 생기는 것은 굉장히 흔한 일이고, 주치의마다 다르지만 물혹을 안고서라도 과배란은 물론 채취와 이식까지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에 성공 사례도 많다! 모든 것은 각자의 상황과 주치의의 경험에 따라 최선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 모든 대화의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11월 생리 시작까지 자연스럽게 몸이 주기를 회복하는 것을 기다린 뒤 병원을 다시 방문하는 것'이다. 최초에 조기배란이 일어났을 때, 선생님이 이미 제시한 방법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인정하기 어렵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이게 가장 최선의 방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과배란을 진행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의사를 찾아 시작을 한들, 내 몸에 어떤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4.6cm의 혹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는 것이 좋은 결말을 가져다줄 것 같지도 않았다.


여태껏 인생을 살며 운이 좋았던 적이 많았고, 적당히 노력해도 노력한 것보다 더 큰 결과를 얻었던 적이 많았다. 그런 나에게 지금 이 난임기간은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몸소 체험하게 해 준다. 오만을 버리고 겸손해지고 성숙해지자. 그리고 두 달 동안 신나게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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