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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작 하는 그녀 May 14. 2022

이어령 장예전, 불꽃을 기리며

짧은 수작 에세이 4

 이어령 교수님의 저서 중에 무엇을 읽을지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영인문학관에서 주최하는 '이어령 장예전' 전시 기간이 오늘까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둘러 평창동으로 차를 몰아갔다. 영인문학관은 이어령 교수님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 건물 지하 1~2층에 있다. 같은 건물 위층은 서재 등이 있는 자택이며 마지막까지 그 서재에서 집필 활동을 하시다가 가족들 앞에서  2022년 2월 26일 환한 햇볕 드는 오후에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이어령 교수님은 문학평론가, 국문학자, 기호학자, 대학교수, 초대 문화부 장관, 소설가 등 다양한 일을 하셨고, 호칭과 수식어도 다양하다. 내가 교수님이라고 이 글 에서 호칭하는 이유는 그 분의 뜻과 걸어온 길을 배우고 따르고 싶기 때문이다. 


 이어령 장예전은 일종의 장례식이다. 생전에 장례식이 아니라 장예전을 열어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장례(葬禮)식이 아닌, 장예(長藝)전은 다른 의미를 띈다. 긴 예술 전시라는 뜻이다. 이어령 교수님 다운 의식이다.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또 문학과 예술에 대한 깊은 조예와 애정을 가진 학자로서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해오셨다. 또한, 2017년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관찰하는 방식을 택하셨다. 


  "죽을 때 뭐라고 해요? 돌아가신다고 하죠. 그 말이 기가 막혀요. 나온 곳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죽음의 장소는 탄생의 그곳이라는 거죠. 생명의 출발점. 다행인 건 어떻게 태어나는가는 죽음과 달리 관찰이 가능해요."

- 이어령 마지막 인터뷰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네"기사 중에서 (조선일보, 2019.10.19)  


 오늘 운이 좋게도, 관장님을 뵙고 전시회 설명을 일부 들을 수 있었다. 이어령 교수님의 아내이기도 한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님은 전시회를 설명하시면서 "문학이 디자인을 만나 이렇게 잘 꾸며주셨다. 얼마나 아름답나요?"라고 하셨다. 거기에는 기대감과 설레임이 묻어있었다. 이어령 교수님이 항상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닌 통섭, 통합, 조화를 강조하셨듯이 강인숙 관장님도 두 매체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관점의 상승 효과를 기대하시는 듯 했다. 문학은 종이이고 평면이다. 디자인은 공간이고 다차원적이다. 문학이 디자인에 생기를 불어넣으면 문학이 다차원 공간에서 새로 탄생한다


  장예전을 보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1988년 올림픽 개폐회식을 총괄 지휘하시면서 만든 슬로건 '벽을 넘어서'에 대한 설명이었다. 원래 주제가 '장벽을 허물고'였는데 훨씬 상징적이고 은유가 풍부한 '벽을 넘어서'로 바꾸셨다고 한다. 장벽을 허문다는 것은 기존의 것을 부정하는 '부정적' 의미만 담겨 있어 한정적인 느낌이다. '벽을 넘어서'는 '벽'이라는 단어로 연상되고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더 많고, '넘어서'는 부정적 의미 없이 긍정적이고 확장성이 있다. 왜 그렇게 당시에 반대하셨는지 알 것 같다.

 
  기업이 브랜드 슬로건, 비전, 미션 등을 만들때도 이러한 접근 방식을 가지는게 필요하다. 명확한 것을 알려야 하는 마케팅 메시지와는 달리, 상징적 의미를 문장이라는 그릇안에 담아야 하는 슬로건 메시지는 달라야 하니까.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대본집


 전시회에는 그의 대표 저서도 전시되어 있다. 195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상의 파괴' 평론으로 등단하여 2022년 눈을 감기까지 90여권의 책을 집필하셨다. "아마 내 나이만큼 썼을 겁니다. 그러니까 90여 권을 썼죠." 교수님의 서재에는 긴 책상에 총 7대의 컴퓨터가 있었고, 이를 연동해 쓰셨다고 한다. 정말 어마어마한 집필 능력이다.


이어령 장예전_대표 저서

 영인문학관 지하 1층의 패브릭 아트로 꾸민 이어령 교수님의 자필 문구도 인상적이다. 


 

 이어령 교수님은 1934년 1월 15일 닭의 해에 태어나셨다. '새벽에 외롭게 외치는 소리'라는 의미로 닭의 상징성을 자주 이야기 하셨다고 한다. 그러한 의미를 담아 영인 문학관의 장예전 전시실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김병종 화가가 그린 '닭'이 힘차게 울고 있다.

 '사람을 기리는'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생전을 추억하고, 영혼을 축복하고, 이 세상에서 '돌아가는 길'을 놓아주는 의식이다. 이어령 교수님이 살아온 발자취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감동적이다. 최고의 지성, 앞서간 통찰력,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 내어준 최초의 불꽃같은 선구자로서의 영향력. 그가 남긴 뜨거움은 이제 '씨앗'으로 곳곳에 있으며, 절대 식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더 타오를 것이다. 

서재에 서 계신 이어령 교수님 (전시회 사진 촬영)


 나도 나중에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게 오늘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야 하겠다. 



 장예전 종료일이 5월 14일까지인데, 오늘 가서 물어본 결과 다음주 수요일(5월 18일) 정도까지 연장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관심 있는 분들은 영인 문학관에 방문 전에 문의해보고 가시길 추천합니다. 내년에는 1주기를 맞아 이어령 교수님 서재를 공개할 계획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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