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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거 Jang Dec 13. 2016

안정성 아이러니


#1. 잃어버린 20년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앞만 보며 달려가도록 교육을 받았다. 초중고 12년을 오직 수능만을 목표로 달려오고 이후 대학 4년을 오직 취업만을 위해 달려왔다. 거기에 평균 휴학 2년과 남자의 경우 군대 2년까지 더하면 장장 20년이란 시간을 오로지 '수능'과 '취업'이라는 두 가지 목표만을 위해 달려온 것이다.


출처 : <퇴사학교>


그렇게 10대와 20대를 각각 수능과 취업만을 위해 천방지방 달려온 어느 날, 30대가 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 이게 아닌데...'

분명 뭔가가 잘못되었다. 지난 열심히 목표를 좇아 살아왔는데 막상 최종 목표인 회사에 입사하고 난 뒤 더 이상의 목표를 잃은 것이다.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사회가 정해 주지 않는 스스로의 목표 설정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 그리고 여전히 무언가 또 다른 목표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 이 두 가지는 지난 20년 간 잃어버린 교육이 맹점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직장인들이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는데도 여전히 우리들은 지금의 교육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초중고 교사의 77%는 현재의 시험 내용 중 절반 이상이 미래 사회에 불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참고 : 뉴스1, '16.9) 

오늘날 대학생의 3분의 1은 휴학이나 자퇴, 전과 및 졸업 유예 등으로 방황 중이라고 한다. 그 수는 4년제 대학생 기준 57만명에 달한다. (참고 : 경향신문, '16.9)

최근 초등학교의 진로교육이 강조되는 추세이지만 그 역시 겉으로 보이는 직업 체험에만 치중할 뿐, 진정한 의미의 자아에 대한 탐색은 부족한 실정이다. (참고 : 주간경향, '16.9)

오히려 그 장래 희망조차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이 주입되면서 학생들의 꿈은 여전히 공무원과 대기업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2. 안정성 아이러니


우리 시대의 교육의 키워드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안정성'이다. 모두가 안정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학교를 가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점수가 나와야 한다.

그러니 오늘 나의 시험 점수의 하락은
곧 나의 인생이자 실존의 하락으로 연결된다.


한국 아이들은 학교에서부터 기존 제도에서 낙오되면 끝이라는 생각에 소위 말하는 '남들 다 하는 안정적인 목표'만을 추구하게끔 배우게 되었다. 그것이 좌절될 경우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포기, 체념, 냉소주의의 패배감으로 번지는 과정을 겪었다. 시험 문제는 잘 풀지만, 현실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초합리적 바보. 학교에서의 이러한 경험은 직장의 경험을 통해 악순환되고 재강화된다.
- 강준만,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걸까?


강준만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학습화된 무기력의 세대'라는 말로 설명한다. 어릴 적 학교에서부터 학습된 '안정성'의 강박이 졸업 후 회사와 인생까지도 이어진다. '시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나 '금전'이 보장되는 대기업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내게는 불안하다. 끊임없이 안정감을 느끼는 무언가에 매달리지 않고서는 극심한 무기력에 시달린다.

이러한 안정성 프레임에서는 사회가 승자와 패자라는 이분법으로 구분된다. 공무원과 대기업은 안정성의 승자이고 그렇지 않은 나머지는 모두 패자가 되는 이상한 구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안정성'만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종국엔 모두가 불안정해지는 모순이 발생한다.


안정성의 '승자'들은 스펙 경쟁의 전리품인 정규직 취직을 거머쥐지만 이내 깨닫게 된다.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인생이 아니구나. 그리곤 대기업과 공무원이라는 마약을 포기할 수 없어 수 년씩 인생을 미뤄가며 언제 올지 모를 미래에 현재를 저당잡힌다. 불안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안정성이
미래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에는 좋은 대학과 좋은 회사가 내 인생을 책임져 주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고용한 그 회사조차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시대가 급변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믿었던 전형적인 '안정적인 삶'이라는 모델은 이제 현실에서는 점점 찾기 어려워진다. 평범한 사람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 안정적 직장 - 저축 후 주택 마련 - 자산 가치의 상승 -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며 행복하게 살았더라 하는 '직장인의 성공모델'은 이미 깨지고 있다고 이정훈 주체적 삶 연구소장은 지적한다.

출처 : 내 가게로 퇴근합니다, 이정훈 소장

어쩌면 우리는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파랑새처럼 그저 세상이 만든 '안정성'이라는 허상만을 좇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3. 진짜 리스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위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안정성을 좋아하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래가 예측 가능하고 생활이 안락하고 앞날이 평탄하길 바란다. 내 삶에 위험과 두려움, 불안정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어쩌면 진짜 위험한 것은 안정성 안에 갇혀 있는 것일수도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가장 리스크가 적은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단기적> 리스크는 줄어들 수 있어도, <궁극적> 리스크는 더욱 극대화된다. 결국 단기적인 안정성의 추구는 장기적인 리스크를 더 크게 만들지도 모른다.


태어나려고 바쁘지 않으면, 죽느라 바쁠 수 밖에 없다
- 밥 딜런   



출처 : <퇴사학교>, 오미선 디자이너




저서 <퇴사학교>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결국 모든 것의 뿌리는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절대명제는 '안정성 추구'입니다. 모두가 대기업/공무원만이 안정적인 길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야 합니다. 단기적인 안정성이 오히려 장기적인 리스크를 더 크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말 뿐만이 아니라 진짜로 실행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지금 어른들의 인생이 모두가 대기업/공무원인데, 우리 아이들에게 대기업/공무원이 다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새로운 업의 대안을 찾고 개발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도전하여 행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농담처럼 말하곤 합니다. "야근 없는 삶을 위해 야근중"이라고. 지금 고생한 것들이, 나중에 결실로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지금 야생에서 근육을 길러놔야 나중에 스스로 달릴 수 있지 않을까요. 온실 속에 갇힌 교육은 결국 온실이 사라지면 말라죽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 그 어느 온실도 온전히 의존할 수 없는 시대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짐을 단순히 개인에게 다 지울 순 없습니다. 어느 정도 기초 체력과 기반은 사회가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사회와 국가와 학교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부디 우리 사회가 그러한 기반을 만드는 생태계에 조금씩 관심을 갖길 바랍니다. 올바르고 건강한 리더와 사람들이 모여 대안을 찾길 원합니다. 퇴사학교 역시 그러한 생태계를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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