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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거 Jang Apr 24. 2018

사랑과 매출


#1. 2012년 두바이, 삼성전자 사원


공항을 나오자 바람이 뜨겁다. 사막의 열기가 나를 덥친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노트북을 움켜쥐고 급히 택시를 탔다. 입사 2년차 첫 출장이었다. 대한항공을 타고 8시간을 날던 중 문득 두려움이 엄습했다. 

'책상머리에 앉은 백면서생일뿐인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보고서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는 인생. 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웰컴 투 두바이"

금발의 리셉션 여성이 환하게 맞아준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같은 복도를 지나 객실로 들어온다. 캐리어를 내려 놓으니 이제야 쓸쓸해진다.      


다음 날 첫 출근길. 오피스는 도보로 10분이었다. TF 멤버는 총 4명이었다. Global Strategy Team 출신의 인도인 엘리트 팀장, 본사 한국인 부장, 두바이 현지 매니저, 그리고 막내인 나.  

TF는 초반부터 난항을 겪었다. Kick-off는 연신 미뤄졌다. 프로젝트 추진안은 일주일 넘게 계속 바뀌었다. 팀장과 부장의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현지 매니저는 회의실 전화와 인터넷을 설치해준 이후 잘 보이지 않았다. 현지 파견 유럽인 컨설턴트는 이건 말이 안돼라며 난색을 표했다. 나는 어리숙하고 무능력한 사원일 뿐이었다.


어느 날 현지 영업왕으로 불리는 부장과 인터뷰를 했다. 짙은 눈썹, 부릅뜬 눈, 불독같이 생긴 그는 아랫배만큼은 인자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 벽에는 '2013년 매출목표 $XXX 달성'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부장은 자신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 영업을 얼마나 잘 하는지, 매출이 얼마나 높은지를 연신 자랑했다. 20년 넘도록 매일 매출을 위해 살아온 그였다. 그의 눈빛에서 짙은 자부심과 열정이 느껴졌다. 


주말엔 공원에 갔다. 나는 잔디밭에 누워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하루종일 내뱉는 단어들이 매출, 실적, 보고 이런 게 아니라 

사랑, 희망, 기적 이런 것들이었으면 좋겠다.'




#2. 2018년 서울, 퇴사학교 대표


월요일 아침부터 비가 쏟아진다. 이런 날은 정말 출근하기 귀찮다. 출근을 안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말한다. "그래도 오늘은 주간회의잖아. 팀원들과의 약속을 지키라구."

창업 후 2년이 지났다. 첫 1년은 미치도록 일만 했다. 일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작은 회사, 아니 아직은 회사라고 부를 수도 없는 어떤 조직. 

이 조직을 정말 멋지게 만들고 싶었다. 회사와 개인의 비전이 일치되고 각자가 행복한 일을 찾는 그런 조직. 내가 만든 회사도 그러길 바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다니는 회사도 그러길 바랬다. 좀 더 오버해서, 대한민국 회사와 개인들이 모두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랬다. 거기에 내가 조금은 기여할 수 있기를, 지난 2년간 의욕적으로 바래 왔었던 것 같다. 


"고단하네요."

오늘 워라밸 워크숍에서 내가 한 말이다. 워라밸. 나에게 그런 건 없었다. 워크와 라이프가 하나니까. 두 개가 다르지 않으니 밸런스 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그냥 워크가 곧 라이프고 라이프가 곧 워크인 삶.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많다. 인생은 복합적이다. 늘. 

항상 한 쪽만 비추는, 또는 한 쪽만 보려는 관점은 내겐 늘 버겁다. 


이제 나는 6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미팅을 하고 출장을 다니고 강의를 하고 제안을 한다. 관리를 하고 운영을 하고 챙기고 혼내고 가르치고 거절당한다. 매일 산을 넘고 강을 열댓번 건너고 비를 맞고 바람에 흔들거린다. 이젠 책상머리 서생은 아니지만, 여전히 삶에선 백면서생이다. 


나는 이제 그 두바이의 부장이 부럽다. 하루종일 내 입에서 '매출, 실적, 보고'와 같은 단어를 말하지만, 아직 그 부장같은 눈빛을 지을 순 없다. 


나는 지금 사랑보다 매출을 원한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꿈 꾸고 싶다. 매출보다 사랑을 내뱉는 날을 다시 꿈꾸고 싶다.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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