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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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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거 Jang Jan 22. 2022

아무거나

글을 안 쓴지 거의 2년이 지났다. 2년동안 글을 쓰기가 싫었고 특히 어디 공개하는 것은 더욱 귀찮았다.

글을 쓰기 싫었던 이유는 너무 거창하게 자꾸 힘이 들어가서이다. 자꾸 더 잘 써야 하고 더 뜻깊어야 하고 무언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아야 하고, 무언가 그럴싸한 무언가를 넣어야 하고, 그러면서 글의 완성도와 문장의 간결함과 문맥과 구성과 단어 선정과 그런 것들을 동시에 신경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완벽한 기획과 몇 번의 퇴고와 그런 것들, 무엇보다 나 자신의 인생이 쓸만한 글감이 되기 위해 제대로 살아내고 있어야 거기에서 정직한 그 무언가가 나온다고 생각을 했다.

하 벌써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래서 그동안 글을 못 쓴 것이다. 읽히려는 글, 잘 보이려는 글, 나 자신이 당당할 수 있는 글을 쓰려고 하니 쓸 만한 글이 없는 것이다.


원래 생각이 많고, 한 번 하면 제대로 해야 해서, 스스로 피곤한 스타일인데 어느 임계점을 넘고 나니 그냥 놔 버렸다.

나 자신을 마주하기도 싫었고, 내 생각을 정리하기도 싫었고, 또 아무것도 없는데 무언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도 싫었다.

그렇게 멋들어진 글들은 30대 초반까지 가능했던 것 같다. 아직 현실이 나를 압도하지 않을 때, 아직은 고난보다 희망이 더 크다라는 생각이 들 때 나의 글은 절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지금은 힘이 많이 빠졌다. 이 글도 아무 기획도 퇴고도 준비도 없이 그냥 쓰고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마 나는 영원히 글을 쓰지 못 할 것이다. 언젠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러나 그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아마 나는 영원히 글을 다시 시작하지 못 할 것이다.


30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희망과 열정과 포부와 이상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맥시멈을 찍은 기간이었다면

30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반대로 현실과 좌절과 고난과 실패로 지치고 공허하고 귀찮고 피곤해져 끝없이 바닥으로 수렴한 기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 그것은 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고. 그것은 점점 더 늘어만 가는 두통과 잡생각들, 한숨들 속에서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문제였던 것이다.


얼마 전 INFJ가 0.6%밖에 되지 않는 극히 희귀한 유형이라는 것을 보았는데, 거기서 말하는 특징들이 얼추 비슷한 것을 보니 그래서 이렇게 혼자 복잡하게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0.6%라는 숫자는 내게 작은 위안을 준다. 그래 원래 별로 없다잖아. 너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원래 통계적으로 적다잖아. 0.6%라는 숫자가 등장하는 순간, 그것은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남 탓을 할 수 있으니까. 무언가 연구 결과든, 통계치든, 그런 유형의 어떤 것이든, 그것을 탓 할 수 있으니까. 나는 그 뒤로 숨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을 어찌 할 수가 없는데, 아마 더 큰 두통을 막기 위해서는 무언가 배출구가 필요한데, 아마 당장의 해결책은 운동과 글쓰기일 것이다. 운동은 이제 다시 시작했으니, 이제 글쓰기를 시작할 때인가. 어쨌뜬 이대로 떠밀려 가는 나 자신을 좀 챙기기 위해서라도 글쓰기는 필요하다. 그 잡생각들을 여기에다 배설하고, 나는 좀 더 후련하게 의연하게 나를 살려내야 한다. 아무거나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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