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거 Jang Aug 14. 2016

꼰대의 탄생

어느 날 꼰대가 되었다




1.
어느 날
나는 꼰대가 되었다.

같이 일하는 후배들과 늦은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나도 네 나이 때 해봐서 아는데..."


나도 모르게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나도 처음 해 본 말이었다.



'나도 네 나이 땐 말야'
만날 듣기만 했지, 내 입으로 누군가에게 이 말을 하리라곤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생각조차 할 틈도 없이 내 입에서, 아니 내 몸에서 제멋대로 툭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나도 네 나이 땐 말야' 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는 순간 아차 싶으면서도, 마치 이 말을 안 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내가 하고 싶어서 일부로 굳이 쏟아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내뱉었지만 실은 나도 알면서 내뱉은 것이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말해도 큰 상관은 없을.

실은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도 네 나이땐 말야' 라는 말을 했다는 사실보다, 저런 말에 대해서 저게 사실인걸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꼰대처럼 보이는 내 모습 자체에 아마도 나는 아차 싶었을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 후배는,
"앗, 꼰대다!"
라고 감탄사를 뱉었다.


앗 꼰대닷! (출처 : 드래곤볼)



음..
분명 나는 지금 꼰대가 되었군.

굳이 변명을 하자면,
아마 삼십 대가 되면서 또는 리더 포지션을 맡으면서 그런 여러 가지 꼰대? 스러운 역할이나 업무들이 점차 늘어났을 게고,
중간중간 드문 드문 그런 꼰대 같은 경우들이 왕왕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제 막 인지하게 되면서,
아니야 내가 그럴 리가 없어.
'초일류 사원, 삼성을 떠나다'의 저자인 내가,
대기업 조직 문화의 군대식 꼰대 문화를 여러 루트를 통해 논리와 감성으로 교묘하게 돌려서 촌철살인의 비평으로 꼬집어 내던 글을 쓰던 내가, 고작 일 년만에 이렇게 꼰대? 가 되었다니 이건 말도 안 돼.
라고 부정하면서 나는 점점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정말 가끔은 진짜 꼰대다운, 정통 꼰대의 모습을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 딴에는 리더의 책무로써, 업무 목표 수립과 성과 관리, 비즈니스 매니지먼트를 케어한다는 명목 아래 했던 행동들이
주니어 후배들에게는 전형적인 또 하나의 꼰대, 삼십 대 초반의 젊은 스타트업 대표로서의 꼰대, 아니면 대기업 출신으로서 대기업을 비평하지만 결국 대기업의 색깔이 묻어나는 고집스런 꼰대의 색깔이 아주 조금은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여튼, 그 찰나의 순간.

"나도 네 나이 땐 말이야"
"앗, 꼰대다!"

단 두 마디, 고작 5초...?
밖에 되지 않던,
그 찰나의 순간들이 그 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질 만큼,
꼰대란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결코 꼰대는 나쁘다-라는 일차원적인 욕만 하며 넘어갈 수만은 없는,
그런 생각들로 계속해서 가슴속 어딘가 꿈틀거리는 것을,
이제 다시 리더로서 후배들과 일을 더 많이 할수록 그런 의식들이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꼰대가 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을까?




2.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 송곳



'송곳'에 나오는 이 말이 아마 올해의 나의 문장이 아닐까 싶다.



대기업에서 장사원일 때 보고 듣고 하던 일들과,
스타트업에서 장대표일 때 보고 듣고 하던 일들이
확연히 다르다.

아마 그때의 장사원이 지금의 일을 시키는 장대표를 본다면
"앗, 꼰대다."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지금의 장대표가 그때의 툴툴거리는 장사원을 본다면
"녀석, 아직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출처 : BIMAP



사원과 사장
피고용자와 고용주
이십 대와 삼십 대
거대 조직과 작은 조직
과잉과 결핍
안정과 생존



이분법으로 나눠진 세상에서
나는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경계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아마 그것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나이를 먹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직면하게 되는,


'꼰대'라는 인생의 나이테를
'존경받는 리더'로 탈바꿈시키는
적극적인 선택의 문제가 될 것이다.





3.
'꼰대'와 '리더'는 크게 다음 7가지 차이점이 있다.

1)
꼰대는,

'내 말이 무조건 맞다'

상대방은 아직 나이 어린 후배다. 나도 저 나이 때 다 똑같은 생각을 했다. 저 후배의 고민과 걱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지나 보니 지금 내가 말하는 대로 하면 만사 오케이다. 지나면 별 일도 아닌 것 가지고 왈가왈부할 시간이 아깝다.

리더는,

'저마다 다양한 상황이 있다.'

비록 상대방이 나보다 경험이 적고 어리다 할지라도 내가 보는 것은 철저히 나라는 제한된 사람의 1차원적인 기준에서의 판단일 뿐,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사람만의 시각과 경험은 나와는 다른 영역이므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2)
꼰대는,

'내 생각을 강요한다'

성과가 중요하다. 보고가 중요하다. 윗선에게 혼나면 안 된다. 그래서 가열차게 내 생각 주장대로 빠른 속도로 밀어붙여야 한다. 그러려면 쓸데없는 커뮤니케이션 협의 비용보다 빠르게 까라면 까 식이 편하다. 찍어 누를만한 힘도 권한도 포지션도 갖고 있다. 굳이 내가 뭣하러 팀원들 사정 다 봐주랴? 누가 감히 나를 거역해? 누구 하나 토시 하나만 달아봐 내가 가만 안 둘 테다.
그래서 회의가 길어져도 아무도 싫은 소리도 못하고, 주변에는 예스맨밖에 남지 않아 사무실에서는 모두가 웃으며 좋은 말만 일삼는다.    

리더는,

'내 생각을 설득한다'

성과가 중요하다. 상하 좌우간 합리적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우리 사업의 핵심 가치에 소홀해서는 안된다.
특히 스타트업에서는 빠른 속도와 실행력이 생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기부여도 중요하다. 리더가 주관을 갖고 비전을 제시하지만, 팀원들이 갸우뚱한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협의한다.
그러다 보니 상호 건강한 토론과 논쟁이 오갈 때가 많다. 오히려 후배들이 리더 눈치를 보지 않고 반대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는 문화를 더 좋아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상호 성장할 수 있는 시너지를 만드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3)
꼰대는,

'누가 이렇게 퇴근 일찍 하래?'


부하직원이 칼퇴? 하는 게 아니꼽다. 상사인 나도 밤늦게까지 책상머리에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어딜 감히 신입이 개념 없이 나보다 일찍 가?
저녁 시간에 사무실이 휑-하니 비어 있으면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집에 가도 할 일도 없는데 같이 술이나 더 마시자꾸나.

리더는,

'아웃풋만 확실하면 상관없다'


정해진 납기와 아웃풋만 준수한다면, 휴가를 쓰든 재택을 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네가 책임지고 맡은 임무를 해낼 것을 믿고, 너도 내가 쓸데없는 허례허식으로 눈치 따위 주지 않으리라는, 상호 신뢰를 구축한다.
대신, 할 땐 제대로 하고 쉴 땐 제대로 쉰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서로 더 성장하며 더 좋은 성과로 연결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4)
꼰대는,

'회식할 때 물컵 안 채워?'


에헴, 막내야 회식 잡아라. 나는 한 마디만 하고 나머지는 지들이 알아서 다 해야 한다. 애들 다 세팅시켜 놓으면 느지막이 참석해서 가운데 상석에 정좌하면, 애들이 알아서 수저 놓고 물컵 따르고 고기 굽고 착착 법카 계산까지 알아서 다 한다.
회식은 내 자랑하는 날. 부하직원들은 나의 영웅담에 감동하며 리액션이나 잘 하면 된다.
 
리더는,

'이번 주 특히 고생했으니 먹고 싶은 거 다 쏜다!'


회식은 억지로 참석하는 경직된 자리가 아니라, 모두가 원할 때 원하는 장소에서 소통하고 격려하는 자리이다. A는 이번 주에 특히 B를 하느라 고생 많았어 훌륭합니다. 칭찬할 때 말고는 일 얘기는 일절 하지 않고, 사무실의 긴장감을 풀고 팀원들을 섬긴다.
비록 내일은 일폭탄이 떨어질 지라도 오늘 밤의 여유를 만끽한다.    
 
5)
꼰대는,

'답정너이다'


야 이거 어떻게 생각하니? 여기저기 물어보지만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야 한다.' 이미 마음속에 고집이 있으면서 괜한 아부나 칭찬, 인정을 기대하며 자기가 예측한 반응이 아니면 당황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고객의 니즈나 제품이 주는 가치 따윈 관심이 없다. 그저 내 경험, 내 생각, 내 주관에 비추어 의사결정을 내려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은 겉보기에는 고요한 평화가 감돌지만 모두가 영혼 없는 마우스 클릭질만 일삼는다.

리더는,

'답을 바꾼다'


자기 주관과 생각이 있지만, 더 좋은 의견이 있을 때는 기꺼이 수용한다. A와 B를 선택해야 할 때, 내 생각과 고집으로 사무실에서 갑론을박하며 회의 시간 내내 시간을 축내는 짓을 싫어한다.
기본적인 상식과 합리성에 기반하여 빠르게 실험하고 검증하며 고객과 현장의 소리를 반영하여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렇게 고객의 니즈에 맞춰 실시간으로 유연하게 시장의 흐름을 타고 팀원들과 파도처럼 호흡을 맞춰가며 신나게 일한다.

6)
꼰대는,

'너는 왜 그 모양이냐?'


라고 혼낸다. 일과 사람을 분리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고, 가이드가 명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을 못했다고 혼을 낸다.
좋은 대학 나온 놈이 그것도 못해? 경영학과래매? 지금까지 일주일 동안 뭐한 거야?
적절한 가이드와 케어도 없으면서 무조건적인 결과만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자신에게 인간적으로 감정적으로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관대하나, 반대로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삐치기를 반복한다.

리더는,

'너의 업무 결과가 왜 이렇지?'


라고 혼낸다. 일과 사람을 분리한다. 사람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믿음이 있다.
다만 업무 성과와 결과에 대해서는 철저한 기준을 두고 평가한다. 일을 못하면 혼내지만 인신공격은 하지 않는다.
업무 자체의 프로세스와 결과에 대해서 원인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얘기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명확한 가이드와 케어, 교육과 끈기가 부족했던 리더 자신의 책임이 더 크다는 사실을 통감하게 된다. 그렇게 본인부터 스스로 개선하면서 모범을 보임으로써 팀원들의 잠재력과 동기부여를 끌어올리고자 한다.

7)
꼰대는,

'자신이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한다'


꼰대는 자신이 꼰대인지 모른다. 자신의 인품과 실력, 경력과 포지션, 권한과 책임 등이 뛰어나고 봐줄 만하며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상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딜 다니면서 으쓱거리길 좋아하고 구체적인 업무도 모르면서 겉모습만 보며 공치사나 훈수 두기를 좋아한다.
그럴싸한 말들과 좋은 미사여구들로 사업 놀이와 회의를 위한 회의를 일삼으며 훈수꾼 역할만 하면서, 자신이 훈수꾼인줄도 모른다.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대단한 착각에 빠져 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떠받드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다 알고 무시한다.

리더는,

'자신이 꼰대라고 생각한다'


리더는 자신의 꼰대성을 늘 인지하고 반성한다. 일을 하다 보면 생존을 위해 납기를 위해 성과를 위해 싫은 소리도 해야 하고, 때론 일시적인 꼰대짓?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본인에 대한 자각들, 구성원들이 느낄 부담감과 피로도를 감지하고 상호 간의 업무 강도를 조율한다. 허울 좋은 훈수는 사절하며, 본인이 직접 실행하며 선봉장이 되어 먼저 돌진한다.
팀원들이 야근하고 주말출근하는 것에 미안해하고 궁극적으로 쓸데없는 비효율을 줄이고 보다 스마트하게 일하며 서로의 성장이 극대화되는 것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지금 참고 함께 고생하더라도, 나중에 결실을 맺고 더 많이 공유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팀이 성장할 수 있다면, 기꺼이 꼰대 역할로 총대 매기를 자처한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힘들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다 알고 존경한다.     



4.
이렇게 말하면 무슨 꼰대와 리더는 전혀 다른 사람들인 것 같지만,

사실 이 둘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아마 현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아수라백작'처럼,
어제는 리더 역할을 하다가, 오늘은 꼰대로 변신하며
이 둘의 경계를 오르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출처 : 아수라 백작




이 세상엔 왜 이렇게 꼰대가 많아 보일까?
그것은 그 사람이 유독 꼰대 기질을 타고났다거나 성격이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간혹 있다)
어쩌면 꼰대가 되는 건 보편적인 인간 본성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있어서 시간의 흐름, 경험의 누적, 연륜의 증가에 따라 저절로 꼰대가 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주위 환경이나 내가 가진 권력, 나의 경험들이 점점 꼰대로 살기에 적합한?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해지는 시점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십 대는 미완성의 시기이다. 아직 할 게 너무나 많고 달성해야 할 목표가 많다. 사회는 불안정하고 변화시킬 것들, 도전해야 할 목표, 꿈과 비전과 희망과 열정이 극대화되는 시기이다. 어떤 도전과 두려움도 유연하게 대응하고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반면 사오십대는 어느 정도 인생에서 일가를 이룬 상태이다. 이미 고생은 할 만큼 했고 벌만큼 벌고 높은 위치에 오르면서 상대적인 안정감을 더 추구하게 된다. 새로운 변화나 도전은 이제는 되도록 피하고 싶고, 오랫동안 익숙해진 자아와 가치관, 방식이 더 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누가 말했던가.
젊어서 이상주의자가 아니면 바보이고,
늙어서도 이상주의자이면 바보라고.

삼국지 최고의 폭군이자 꼰대인 동탁도 처음에는 멋진 리더였다. 젊은 시절 그는 의리 있고 패기 넘치는 멋진 호걸이었다.
조조와 유비 역시 이십 대 시절에는 헌걸찬 기개와 정의감이 넘쳤다. 그러나 오십 대가 지난 그들은 권력을 갖게 되면서 점차 안락해지고 세상이 쉬워져, 잘못된 의사결정과 안타까운 행동들을 많이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오륙십 대 리더들 역시 젊은 시절에는 멋지고 존경스럽던 모습들이었다가, 몇십 년이 지나면서 많이 변질? 되는 모습들로 나타나는 것들을 왕왕 보게 된다.


젊은 시절 기개 넘치던 동탁 (출처 : 창천항로)


이렇듯 꼰대가 되기로 결정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꼰대'를 피하고
존경받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실로 관성을 거스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나이의 문제, 시간의 문제, 이상주의의 문제만은 아니다.
 
영화 '인턴'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더 멋지고 존경스럽고 겸손해지는 어른들도 많다.

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아버지의 친구분이 친히 전화를 해 주셨다.
"내 아들뻘이지만, 책을 읽어보니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내 책의 내용들을 읽으시고, 그동안 삼십 년 인생을 살면서 여전히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면서 자유롭게 소감을 나누어 주시는데, 그런 분들을 보며 나 역시 오히려 그분을 통해 겸허한 마음으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삼성에서 신입 시절 만났던 부장님 역시, 내가 퇴사하고 나중에 뵙게 되었는데,
"장대표,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수평적인 태도로 물어보신다. 오히려 내가 어색할 정도로 겸허하게 대해 주시는 모습에, 나 역시 지금 후배들에게 저렇게 진솔하게 섬길? 수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도리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출처 : 영화 '인턴'





5.
나는 오늘도 꼰대와 리더의 경계를 오르내린다.

후배에게 주말 내내 일 폭탄을 던지고,
나는 새삼 미안한 마음에,
'미안 내가 일 폭탄을 던졌...'
라고 소심하게 말하였다.

그러자 후배는,
'앗 너무 아름다운 엑셀. 항상 고맙습니다'
라고 말해준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또 배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사병 (上司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