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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거 Jang Jul 01. 2016

경영학 소고 (小考)



1.

나는 '경영(經營)'이란 말만 들으면 가슴이 떨린다.

경영이란 단어는 마치 거대한 산맥을 뚫고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며 온갖 삶들의 희로애락을 껴안는 100부작 대하 드라마처럼 신비롭고 완전하게 다가온다.


'경영(經營)'
기업이나 사업을 관리하고 운영함.  
기초를 닦고 계획을 세워 어떤 일을 해나감
궁리하여 일을 마련하여 나감

- 네이버 백과사전


이 어찌 거대하고 웅장하며 가슴 뛰는 단어가 아니랴.

영어로는 Business인 것을 누가 '경영'이라고 기똥차게 번역을 하였구나.

그리하여 고등학교 때까지 원래 정치외교학과를 지망하던 나는, 어느새 '경영'이란 단어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나도 모르게 당연히 경영학과를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학교에서 처음 들은 수업은 '경영학원론'이었다.

짙은 회갈색 양복에 머리가 희끗하신 노교수님이 수업 첫 시간에 말씀하셨다.


"현대 경영에서 기업의 존재 목적은 주주 이익의 극대화입니다."


"응?"

처음에 난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진 않았다. 막연히 꿈꿔왔던 경영과는 좀 다른 것 같았지만, 그냥 그렇구나 싶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이후의 수업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필 수업이 아침 9시 시작이라 강의장 뒷자리에 처박혀 매일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게 엎드려 자다 일어나면 5만 원짜리 경영학원론 위엔 어느새 침 자국이 흥건했다. 내가 꿈꾸던 미지의 세계 지도가 그려지고 있던 것이다.


두 번째 들은 수업은 '국제경영론'이었다.

조모임 시간에 나와 친구만 신입생이었고 나머지 4명은 2~3학년 선배들이었다.

우리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쳐다보니 네모난 은테 안경에 단발머리의 선배 형이 말했다.

"자, 이번 과제는 이렇게 진행하면 돼.

잘 봐 별거 없어.

그거 알지? 스-옷, 스-옷 분석 말이야."  


무슨 독일어 같은 발음이 인상적인 선배가 턱을 쭈욱 내밀고 '스-옷, 스-옷' 거리는데, 응? 순간 저게 뭔가 싶었다.

알고 보니 SWOT 분석을 말하는 것이었다.

'와, 스왓이라니.. 이거 뭔가 있어 보이는걸.'


그 날 이후 누군가 SWOT과 4P, 5 Forces 같은 용어들을 구사하며, 마치 이것만 알면 글로벌 비즈니스의 전략을 주름잡을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을 때면 난 그 선배 생각이 났다.

세 번째 들은 수업은 '소비자행동관리'였다.

역시나 복학생 선배가 한 명 있었다. 그 형은 8학기를 휴학하고 맥킨지 컨설팅을 다니다 왔다고 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배는 말 끝마다,

"맥킨지에서는 말이지..."

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실제로 그 형의 가이드는 꽤 그럴싸했다. 우리 조에서는 아리따움 매장 마케팅 전략 과제를 하기로 했는데 너무 바빠서 보이지 않던 선배가 어느 날 불쑥 찾아와선 말했다.

"자 이런 식으로 추진하면 돼. 알았지?"

A4 용지에 죽죽 몇 가지 글씨와 도형을 그리더니, 우리에게 잘 부탁한다며 다시 생 가버리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루 종일 명동 시내 화장품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점포와 고객들을 조사하는 동안 그 선배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종 과제 점수 발표날. 우리는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그 모습을 본 선배는 "교수님이 맥킨지 스타일을 잘 모르시는구먼" 하고는 또 쌩하니 사라졌다.  




2.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경영학에 별 흥미가 없었다. 오히려 정치, 사회, 문학과 같은 수업이 훨씬 흥미롭고 적성에도 더 맞았던 것 같다.

그러나 졸업과 스펙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제대 이후, 재무, 회계, 생산 같은 숫자로 점철된 세계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일찍이 피터 드러커는 다음과 같이 설파한 바 있다.

경영은 인류 공통의 생산적 목표 달성에 이바지하도록 개인과 지역 사회, 가치를 생산적인 것으로 바꾼다.
경영이야말로 급속도로 전 세계로 퍼지는 문명과 전통, 가치, 신념, 문화유산을 아우르는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한다. 경영은 모든 조직의 중추적 기능이며 세계 경제 공통 기관으로 활약할 수 있는 드문 조직 중 하나이다.
- Management, 피터 드러커

반세기 전 경영학의 아버지가 열변을 토하던 그 '경영'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역설적이게도 대학의 '경영학'에는 '경영'이 없었다.

우리가 경영학과에서 배우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글로벌 초일류 국가 경쟁력 비결과 같은 거대한 담론 속에서 뜬구름을 잡거나, 원가 계산이나 배치(Batch)의 배치(配置) 등 철저하게 분절되고 기계적인 스킬을 암기할 뿐이었다.


학교에서는 진짜 경영이 지니는 사회과학적 담론, 비즈니스 현장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 실제 사업 운영의 복잡 다단한 양면성 따위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미국에서 배운 대로의 여러 경영학 이론들 또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나 삼성, 현대 같은 너무 유명해서 뻔한 케이스 스터디를 암기하듯 몇 번 토론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대학에서 요구하는 훌륭한 경영학과 졸업생이 되어 입사에 성공한 순간, '답정너' 상사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는 보고서 대필자가 될 뿐인데도 말이다.


기술과 노동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판매해야 하는 화이트칼라에게 경영학은 또 다른 필수 스펙일 뿐'이었다.
- 희망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경영학과는 이미 스펙 사회의 대표성을 지니게 되었다.

전국의 모든 대학생이 경영학을 복수전공하는 이 시대. 모든 인문대생과 사회과학대생이 이중 전공으로 경영학을 선택하는 현실에서 경영의 실제 따위도 생겨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학자 오찬호는 경영학이 보편적 학문으로 존재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경영학은 사실 기업의 논리 체득, 개인의 사고력을 바탕으로 기존 고정관념 재해석하는 일이 인문사회학에 비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경영학 수업 풍경은 모든 대학이 동일하다. 기업 맞춤형 표준 인재를 기르는 것이다. (중략)
대학 전체가 경영학과화 되고 대학생 전체가 경영학과생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어릴 때 가졌던 경영학과라는 자부심이,

취업도 잘되고 대기업에서 가장 선호하며,

남들 다 복수전공하려는 인기 과목에,

수능 서열도 높은,

이런 경영학과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샌가 내게는,

"대학 때 전공이 뭐였어요?"

라는 질문에 이제는 별로 대답하기 꺼려지는, 부끄러움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



3.

퇴사를 하고 나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근사한 전략 보고서를 화려하게 작성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4년간 경영학과에서 배운 것들은 실제 기업에서는 별 쓸모가 없었고,
내가 4년간 기업에서 배운 것들 역시 실제 내가 직접 사업을 하는 데는 별 쓸모가 없었다.

물론, 회사라는 조직에서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기획분석, 조직운영, 영업관리,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등 기본적인 역량들을 기를 순 있다.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니 회사에서 배울 게 아예 없다는 오해는 하지 말자..)

그러나 기업 경력이 쌓이면서 비즈니스 기본 매너들을 좀 안다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사업을 잘 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오히려 대기업의 1년보다 스타트업에서의 3개월 동안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고객을 직접 만나는 접점에서 페이스북 광고비를 만원씩 쓰며 머리를 쥐어짜며 전전긍긍하고, 출근길 여의도역에 나가 무관심한 숱한 고객들에게 거절당하고, 플리마켓에서 시제품을 팔아보며 단 돈 만원이라도 버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는 것들이 내게는 더 큰 경영 수업이 되었다.


서울숲 플리마켓


그러나 여전히 이 시대의 수많은 청년들은 '경영학 전공'이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을 위해 몇 년씩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경영학을 복수전공하면서도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지 알지 못하고,

종국엔 그것이 회사에서 아무 쓸모가 없음을 깨닫고 나서도 후배들에게 아무런 경고도 해 주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여전히 책으로 배운 경영만 가르치며 경영학 이론들을 많이 알면 경영을 잘한다고 평가하고,

또 경영학과를 나오면 경영을 잘한다거나, 요즘의 창업 열풍에 흉내내기 식으로 우후죽순 창업 프로그램들 속에서 창업학과를 나오면 창업을 잘한다고 가르친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이 시대의 가장 거창하고 서글픈 풍경화가 아닐런지.


게르니카, 피카소



4.

대학 시절 마지막으로 들은 수업은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전략 경영' 이었다.

매번 최우수 강의상을 받던 교수님은 어느 날 한 일화를 들려 주셨다.  


교수님은 야간 최고경영자 MBA 과정도 함께 가르치는데, 그곳 수강생들은 대부분 40~50대의 사장님들이었다. 교수님이 열심히 최신 이론을 설명하던 중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한다.

"교수님, 그래서 해봤어요?

난 해봤는데, 그렇게 안되던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교수님은 할 말이 없으셨다며 뒷머리를 긁적이며 해맑게 웃으셨다.

그때 그 멋쩍은 웃음이 아직도 가끔 기억이 난다.






<참고서적>

Management, 피터 드러커

희망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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