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섭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올해도 “함께 하겠다, 진상규명 해야 한다”는 단체 현수막을 내걸었다. 4년이나 지났는데도 진상규명을 못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다시 삭발 투쟁에 나섰다. 세월호 및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2기 특별조사위원회에 부적절한 사람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정권도 바뀌어 이제 더 이상 유가족들이 억울해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아직 먼 이야기인가 보다.
잊고 살다가도 해마다 4월이면 ‘세월호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찾아 읽게 된다. (의무감이라고 해야 할지 위선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이번에 읽은 책은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다. 책에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어떻게 질병으로 나타났는지가 담겨 있다. 김승섭 교수는 정말 다양한 연구를 해왔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연구, 소방공무원 인권 상황 실태조사, 단원고 학생 존자 및 가족 대상 실태 조사, 인턴/레지던트 근무환경 연구, 성소수자 연구 등을 비롯해 삼성반도체 직업병 소송, 동성 결혼 소송 등에도 참여했다. 김승섭 교수는 이 책에서 자신이 직접 연구에 참여한 사례와 외국 사례들을 가져와 사회가 남긴 상처가 우리 몸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소방공무원, 세월호 생존 학생, 성소수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만나고 그들의 건강에 관해 연구 하고 쓴 글을 통해 우리 사회가 던지는 질문을 나누고, 함께 답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사회 역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책임감과 연구 자세, 고민을 밝힌 부분이 인상적이다. 김승섭 교수는 자신의 주장이 과학적 합리성을 가지려면 데이터에 기초한 사고여야 의미 있는 근거를 제시해준다고 밝힌다. 아울러 지식의 생산과정에 대한 의심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해당 연구가 자본이나 외부 권력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마지막으로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핑계로 행동을 늦추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해서 말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가습기 살균제 같은 사건이다. 수많은 데이터를 갖추지 못했어도 의심만으로도 문제제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김승섭 교수는 IBM 암 발생 노동자 편에 서서 연구를 해온 리처트 클랩 교수의 말 “데이터가 없다면 역학자는 링 위에 올라갈 수 없다, 역학자가 적절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면 싸움이 진행되는 링 위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는 말을 자신의 연구에 중요한 지침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109쪽)
데이터에 기초한 사고로 윤리적인 연구를 해온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가 세월호 연구를 통해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 김승섭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연구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껏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대규모 참사들을 보니 기록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며 기록이 없으니 참사로부터 살아남은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간에 대해 알 길이 없고,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대책이 있을 리 없다며 세월호 참사마저 이전의 참사들처럼 넘겨버리면 과연 우리에게 공동체라고 부르는 무엇인가가 영영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166쪽) 책에는 김승섭 교수가 세월호 생존학생들을 만나 인터뷰 한 이야기도 나온다. “생존학생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고민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학생들은 서로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친구들이 밟고 올라갈 수 있도록 자신의 어깨를 내밀었다, 학생들은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했다.”(163쪽)는 목소리가 담겼다.
김승섭 교수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를 연구하면서 갖게 된 질문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과 죽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또 잊고 지낸다.) 해고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자살을 선택했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현실임을 보여줬다. 김승섭 교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연구를 하면서 한국은 해고된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답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해고로 직장을 잃었을 때 기댈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한국사회는 그 짐을 해고자와 가족이 떠안게 한다는 점을 데이터로 밝혔다.
김승섭 교수의 말대로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단다. 재난을 당한 몸은 더하리라.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다며 왜 이런 병을 얻게 되었는지, 사회와 국가의 책임은 무엇인지에 대해 김승섭 교수가 던진 질문에 대해 우리도 함께 답을 찾았으면 한다. “건강해야 일하고 사랑하고 투표할 수 있으니까”, 더 이상 운에 기대서 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