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도 쿤 지음 <숲은 생각한다>
구룡산을 파헤쳐 아파트 4천 세대를 짓겠다는 인간들의 욕심이 공식화됐다. 지난 금요일 청주시가 구룡공원 민간사업 제안 공고를 했다. 시민단체의 반발로 도시공원위원회도 서면으로 심의하고 서둘러 결정했다. 지난 20년간 도시공원을 지키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던 청주시는 이게 최선이라며 민간개발을 공식화했다. 민간개발을 부추긴 건 건설자본이 소유한 지역 언론이다. 한범덕 청주시장은 구룡산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SNS를 통해 말하더니 얼마 있다가 꼬리를 내렸다. 들리는 얘기로는 언론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단다. 시민보다는 건설자본에 꼬리를 내리는 시장이라니…. 그들은 숲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아파트를 지을 땅으로만 보는 걸까. 사실 지금 남아있는 도시 숲도 온전하지 않다. 그마저도 없애버리고 말겠다니 탐욕이 끝없다.
숲을 생각하다가 <숲은 생각한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숲을’이 아니라 ‘숲은’이다. 제목만으로도 한 방 먹은 듯했다.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선택한 책이다. 캐나다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의 책 “ <숲은 생각한다>는 아마존 강 유역에서 4년간에 걸친 인류학적 현장연구의 성과로서, 숲과 인간의 관계에 과한 밀착 연구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가져온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의 가장 기초적인 전제에 도전하는 책이다. 그의 작업은 새로운 인문학의 지평을 여는 대표적인 포스트휴머니즘 기획을 평가받는다. <숲은 생각한다>는 미국 인류학회에서 수여하는 2014년 그레고리 베이트슨 상을 수상하면서 그해 인류학계의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으며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가장 창조적인 의미에서 사고의 도약을 이뤄낸 책으로 극찬을 받기도 했다.” 책날개에 적힌 소개 글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에 도전하는 책이라는 말에 주저 없이 선택했지만 아직 다 읽지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희 씨와 책 읽기에 이 책에 대해 쓰는 이유는 “숲은 생각한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나름 전해보고 싶어서다.
“반 듯이 누워 자! 그래야 재규어는 너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엎드려 자면 재규어는 너를 먹잇감으로 여기고 공격한다고.” 서문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저자는 다른 부류의 존재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며 다른 부류의 존재들과의 만남을 통해 보는 것과 표상하는 것, 그리고 아는 것과 사고하는 것까지도 인간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눈으로 가 아니라 재규어의 눈으로, 아니 재규어-인간이 되어야 숲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이다.
저자는 재규어 인간이 되어 숲에서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루나족의 삶을 통해 얻은 통찰, 즉 인간 중심적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인간적인 것 너머에 있는 존재들과 우리가 맺는 관계에 대해 주목하기 위해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표상과 기호들을 인간적 틀의 범위 안에서만 연구하고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 너머에 있는 것들을 놓고 봐야 한다고, 그래야 비인간 존재와 인간이 맺는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 새로운 사고의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 곧 인류학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숲은 생각한다, 라는 저자의 도발(?)도 바로 이런 바탕에서 만들어진 사고다. 저자는 숲은 생각한다고 우리가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이하게도 숲은 생각한다는 사실의 산물이라는 점이라고, 우리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사고 자체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 확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숲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보다는 숲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숲 속의 모든 것들 동식물 아니 숲이 품고 있는 모든 것들이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숲을 파괴한다는 건 단순히 나무를 훼손시키는 차원에서 끝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들만이 숲이 보내는 경고를 계속 무시하며 짓밟아온 게 아닌가. 숲을 지키자는 차원이 아니라 이제 숲을 통해서 바로 우리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구룡산은 무슨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