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피트도 조연인걸요.
여러 개의 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을 모임에 초대하는지 사람들이 물어옵니다. 딱히 어떤 조건이 있거나 하진 않아요. 일 년에 적어도 서너 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가만, 생각해보세요. 가족, 절친, 동료를 제외하고 일 년에 서너 번 이상 만나는 사람들이 몇명이나 되는지요? 많지 않아요. 자주 만나지 않으면, 대화는 사라지고, 관계는 소멸되죠. 모임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입니다. 모임을 운영하는 데 쓰는 에너지와 노력을 생각한다면 모임의 대상은 ‘적어도 몇 번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드는 시간을, 노력을, 비용을 보상받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모임을 개최할 에너지를 줍니다. 제게 있어서 모임이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이기도 하고, 에너지를 조달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피하는 편인가요 라는 질문도 종종 듣습니다. 모두에게 열어놓고 있습니다 라고 답변하고 싶지만, 그럴 리가요.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이기 때문에, 이 경우는 몇 가지의 대답이 있습니다만, 그중 가장 또렷한 대답을 꼽자면, ‘항상 주인공 이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네, 주위를 둘러보세요. 주인공으로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 분들이 종종 보입니다. 외모는 아름답거나 적어도 매력적이고, 스마트하고 위트있는 말솜씨에, 게다가 유머도 타고나서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이 훈훈해지는 주인공들이죠. 저는 어떤 모임에나 주인공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초대하기를 망설이는 분들은 주인공이 아니라 '항상 주인공이어야만'하는 분들이죠. 늘 주인공임을 확인받아야 하는 분들입니다.
모임을 하다 보면, 주인공 역할에 매우 익숙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유쾌하고 재치 있으시고요. 대부분 달변이시고요. 외모나 말투에 강렬한 임팩트를 갖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처음 만나면 그야말로 반짝반짝한 매력에 푹 빠집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자리가 반복되면, 이분들은 다른 사람들의 근황을 묻는 안부에도 자신의 근황과 바로 연결시키는데도 탁월한 재능이 지루해지고, 방청객 같은 리액션을 하고 있는 스스로의 시간이 아까와진달까요? 물론 모임에 주인공은 필요합니다. 모임도 일종의 연극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잘되는 모임엔 기승전결이 잘 갖춰진 스토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 년에 여러 번 만나는 모임의 주인공이 한 명이어서는 재미가 없습니다. 주인공은 그야말로 돌아가면서 해야, 언젠가는 내가 주인공인 그날을 위해서 좋은 호응도 불러오게 되거든요. 대사가 없는 배우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가야 하는 장면이 모임에서는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 모임마다 주인공을 바꿉니다.
그럼 항상 주인공이어야하는 분들은 어떻게 하냐고요? 그분들 나름대로 매우 멋지고 매력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그분들은 1:1로 만나거나 아주 작은 모임에서 만납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지만, 인생의 어떤 장면들에서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이기도, 강렬하고 짧게 등장하는 씬스틸러이기도, 말 한마디 없는 엑스트라이기도 하죠. 지구가 나를 중심으로 돌 거라고 착각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도 무대 배경의 일부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스스로가 사실 엑스트라였던 때가 많았음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