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소한 스텔라C Nov 12. 2021

혼술의 고개

오십에 서핑

여럿이 마시는 술도 좋지만, 혼자 마시는 술에도 미덕은 있다. 가령 회식이 팀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소주의 힘을 빌리는 의식이라고 정의한다면, 혼술은 스스로와의 속 깊은 대화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가끔은 내 안의 복잡한 자아들과도 한 잔 마시며 툭 터놓고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그 대화를 누군가는 달리면서 하고, 누군가는 명상으로, 누군가는 술을 한 잔 앞에 두고 한다. 내 선택은 혼술이다. 때로는 내가 나를 더 아프게도 하고, 때로는 내가 나를 더 깊이 위로하기도 한다. 첫 혼술은 여행지에서 시작됐다.

혼자 간 여행길, 미국 한인타운의 어느 식당이었다. 설렁탕을 주문하며 생각했다. '둘이 왔으면 녹두전도 시켰을 텐데.' 고쳐 생각했다. '혼자 왔다고 녹두전을 못 시킬 건 뭐람? 남기면 되지.' 녹두전을 시키며 생각했다. '둘이 왔으면 막걸리도 시켰을 텐데.' 또 생각했다. '혼자 왔다고 막걸리를 못 시킬 건 뭐람. 녹두전도 있는데.' 그리하여 어느 가을 이른 점심, 설렁탕과 녹두전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깨달았다. 이렇게 고개 하나를 넘는구나. 마음은 가벼웠다. 기분은 씁쓸했다. 넘고 싶어서 넘는 고개가 아니었다.

지난 주말 동네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 앞 중국집을 지나려는데 고량주가 당겼다. 들어갈까 말까 문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삼십 년 넘게 살고 있는 '동네' '중국집'이었기 때문에. '점잖은 직장에 다니는' '나이는 한참 먹은' 저 옆집 여자는 왜 혼자 술을 마시나, 집에 무슨 일이 있나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은 궁금해할지 모른다. '어쩐지 혼자 술 마시게 생겼더라니. 게다가 고량주라니.' 수군거릴지도 모른다. 늘어난 것이라고는 잔주름과 자기 검열뿐인 이 나이 든 여자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몹시 신경 쓰였다. 여행지의 혼술보다 동네 중국집에서의 혼술 난도가 더 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와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핑계는 유효했고, 뜨끈한 군만두를 곁들인 고량주는 마시고 싶었다. 이 고개만 넘으면 이제 혼술은 어디든 두렵지 않을 거라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중국집 문을 힘차게 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 나랑 결혼 안 할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