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교사들> 속에서 만난 다양성
다시 읽고 있는 <토지>를 제외하고는 올해 읽은 책들 중에 이렇게 오래 함께 한 책은 없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소개했던 책이기도 하고요.
독서 모임을 마무리하는 시점인데 ‘아, 다시 곱씹으며 읽어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책도 <별별 교사들>입니다. 그만큼 많은 느낌표를 남겨준 도서였어요.
(*가장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할 교육현장이지만, 어쩌면 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학교라는 현장. 그곳엔 다양한 교사가 있습니다. 시각, 청각 장애인은 물론 동성애, 페미니스트, ADHD까지... 다양성을 배우는 곳에서 소수자성은 얼마나 수용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입니다)
내 안의 소수자성.
처음엔 특별히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개별성이 곧 보편성이지 뭐, 라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각자의 ‘개성’은 ‘소수자성’이고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지요. 당연히 그래야 하니까요.
그게 보편적이고 암묵적인 합의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나는 정말 ‘개성’을 존중하는 사람이었나. ‘개별성’을 인정하는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개성’과 ‘소수성’을 명분 삼아 오히려 우물 안에서 숨어 내 세상만 보고 살진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타인을 존중하려면 많은 세상을 보고 느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려 들지 않았습니다.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존중의 다른 방법이라 착각했네요. 책을 읽고 나누면서 알게 되었어요.
나는 타인을 존중한 게 아니라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더 깊이 들여다 보고 마주 하니 알겠습니다.
타인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타인을 외면하는 나를 보호하려는 거였구나.
나와 다른 타인들의 ‘소수자성’에 간섭을 하려 들까 봐, 침해하게 될까 봐 적잖이 두려웠나 봅니다.
어쩌면 이런 마음은 나도 보호받고 싶고 침해받기 싫다는 또 다른 표현이었지도 모릅니다.
내 울타리 넘지 마, 건들지 마.
난 특별한 게 아니야. 개성일 뿐.
다르다는 건 틀린 게 아니라잖아. 각자 살고 싶은 형태로 살게 내버려 뒀음 해.
나도 당신들 건들지 않을게. 그러니 넘어오지 마.
세상이 무섭고 외로워 조용히 소리 없이 살고 싶었던 나약한 아이.
어쩌면 거대한 우주에서 먼지보다 더 작은 미약한 존재란 게 탄로 날까 늘 전정 긍긍했던 아이.
그게 ‘나’였고 그래서 ‘개성’이란 갑옷을 두르며 보호했는지 모릅니다.
‘개성’이라고도 불려지고 ‘특별함’이라고도 불려질 수 있는 ‘소수자성’은 세상에 나가기 두렵고 나약한 나를 보호할 방패로만 이용된 그럴싸한 ‘명사’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존재로 존중’ 받고 싶은 알 속의 새입니다.
이제는 저의'개성'으로 포장한 ‘조용한 거리두기’의 ‘소수자성’을 다시 돌아보고, 나와 세상이 관계해 나가는 방식,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을 배워보려 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소수자성'도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공부를 해야겠어요.
-----------> 책을 읽고 '내 안에 있는 소수자성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써 보는 글입니다. 저는 '개성'이 개별성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보호하려는 '소수자성'이었을지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어 써 보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