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역사의 비극속에서도 일어나는 곳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건물은 무엇일까? 먼저, 바르샤바의 구시가지(old town)은 오래되지 않았다. 옛날 양식을 하고 있지만, 가까이서 본다면 실제로 오래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르샤바는 세계 2차대전 동안 철저히 파괴되었던 도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건물을 무너졌고 다시 지어졌다.
사진 1. 바르샤바 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건물인 문화과학궁전(PKiN)이다. 대표적인 건물이지만 비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어 폴란드인들은 이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느낀다고 한다. 문화과학궁전은 세계 2차대전 후 폴란드를 강제로 공산화 한 스탈린의 폴란드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선물로 지어졌다. 상당히 옛날에 건축되었음에도 건물로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237m 높이로 최근까지도 바르샤바에서 가장 큰 빌딩이었다고 한다. 모스크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스탈린 스타일의 건물로 특유의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공산주의식 위압감을 준다. 소련의 붕괴 이후, 폴란드는 즉각적으로 공산주의 시스템을 폐기하였다. 소련이 폴란드에 자행한 일들을 생각하면 한국이 조선총독부를 폭파시켰던 것처럼 하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규모가 상당히 크기도 하다. 그래서 워낙 크다보니 바르샤바를 걷다보면 상당히 잘보여서 볼때마다 폴란드의 역사를 생각나게 하는 건물이다.
사진 2. 폴란드는 폴란드-리투아니아 대공국일 당시 유럽의 패권국으로 영광의 시기를 가졌다. 그러나 이 시기 이후 폴란드는 계속해서 내리막 길을 걷는다. 그러한 결과는 비록 좋지 않았지만, 폴란드인들의 용감함은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르샤바 구시가지에는 여러 역사적 인물의 조각들이 있는데, 특히 나는 대통령 궁 앞 유제프 포니아토프스키(Józef Poniatowski)이 폴란드 역사를 잘 대변한다고 느꼈다. 2차례나 되는 폴란드의 분할을 막지 못했던 원인 중 하나는 많은 귀족들의 무책임함과 배신이었다. 그럼에도 폴란드의 민중들은 모국을 구하기 위해 용감히 맞서 싸웠다. 포니아토프스키는 국가의 위기때마다 일어나 맞서싸운 대표적인 인물이며 유능한 장군이었지만 정세는 좋지 않게 흘러갔다. 흥미롭게도 나중에는 프랑스 육군에서도 복무하며 나폴레옹이 임명한 26원수 중 한명으로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전쟁에서 매우 불리한 전황에서 용감하게 돌격하고 전사하였다. 이후 폴란드에 우호적이었던 나폴레옹이 몰락하며 폴란드의 상황도 악화되었다.
사진 3.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은 폴란드인의 정신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세계 2차대전 중 마침내 소련의 붉은 군대가 바르샤바 앞에 도착하였고, 바르샤바 시민들은 이에 호응하여 나치에 거의 무장도 없이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무장도, 붉은 군대의 지원도 없던 이 봉기는 철저하게 진압당하고 엄청난 사상자를 내었다. 하지만, 이를 기념하는 폴란드의 봉기 박물관은 그들의 용기와 정신을 기억한다. 이 사진은 당시 바르샤바 시민들이 옷에 부착하던 피얼룩이 그대로 묻어있는 봉기자들의 표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