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다 배달합니다
음식 배달 시장 규모의 급성장은 외식업계에 커다란 구조적 변화를 불러왔고, 새로운 외식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치킨, 피자, 중국집 등 전통적인 배달 음식은 물론이고 샐러드, 파스타, 삼겹살, 커피까지 뭐든 다 배달이 됩니다. 배달은 외식 자영업자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소비자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너무나 편하게 배달 주문할 수 있는 세상에 익숙해지고 있죠.
배달 서비스 시장은 IT 플랫폼 업체들의 전쟁터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배달 시장의 혁신을 이끄는 동시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연스레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런 배달 플랫폼의 맞은편에는 고분분투하는 자영업 사장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장님들과 함께 오늘의 배달 시장을 지탱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사람' 바로 '라이더' 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라이더들을 비롯하여,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로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담긴 책을 꺼내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경험한 쿠팡, 배민, 카카오 대리 등 플랫폼 노동자로 보낸 200일의 기록입니다. 18년을 기자로 살았던 저자는, IT 플랫폼 서비스 시장의 성장 배경이 궁금해서, 그리고 2019년 우리 사회가 겪은 타다 갈등을 바라보며 느낀 답답함을 풀어보기 위해 직접 음식 배달과 택배, 대리기사가 되어보기로 결심합니다.
내용은 3가지 종류의 플랫폼 노동 체험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한 경험, 자전거로 음식을 배달하는 배민커넥터로 일한 경험, 그리고 카카오 대리기사로 일한 경험입니다.
각각 근로자로 등록하는 과정에서부터 복잡하게 설계된 수수료와 인센티브 구조, 노동강도 등 이 일에 입문해볼까 관심을 가지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상세한 정보들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초보로 시작해 점차 숙련도를 높여가는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일화, 일하면서 만난 경력자들의 뼈 있는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재미있게 잘 읽히는 책입니다. 제가 인상 깊게 읽었던 대목과 생각들을 정리하여 소개해 드립니다.
저자는 플랫폼 노동을 경험하면서 많은 순간 "사람은 점점 인공지능의 팔다리가 돼 가고 있다"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배민커넥터를 할 때에는 두 눈을 스마트폰에 고정시키고, 자전거로 배달하기 적당한 메뉴와 동선에 맞는 배달 콜을 잡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하면서 콜을 잡아보기도 했지만, AI 추천 배차라는 시스템이 도입된 후 배정해 주는 콜을 소화했더니 배달도 편해지고 수익이 더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지급받은 PDA가 알려주는 대로, 한 번에 담아올 수 있을만한 양의 물건을 알려주는 위치에 가서 담아오는 일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아직은 로봇이나 드론이 더 비싸기 때문에, AI가 사람의 팔다리를 빌려서 일을 시키고 있다는 저자의 비유가 참 적절하다고 느꼈습니다. AI가 벌써 이렇게 우리 생활 가까이에 다가왔구나 싶어 섬찟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우리 사회가 대비해야 할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기존 산업에 충격을 주고, 소비자들의 소비문화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어야 하는 자영업자들에게도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게 대비하고 적응하는 것이 앞으로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 같습니다.
배달 주문과 라이더 배정 시스템은 생각보다 여러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라이더 입장에서 콜이 뜨면 '배차수락'을 누르고 '조리요청'을 합니다. 그러면 음식점에 설치된 배민 어플리케이션에서 "조리 시~작" 이라는 알림음이 울립니다. 조리 시간은 음식점에서 정하는데, 5분부터 20분까지 다양합니다. 조리 시간 안에 음식점에 도착하면 '가게도착'을 누르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도착하면 이미 음식이 준비돼 있는 경우도 있고, 조리 시간보다 늦어져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음식이 포장돼 나오면 '픽업완료' 버튼을 누르고 예상 배달 소요 시간을 5분부터 20분까지 5분 단위로 선택해 입력합니다. 그리고 자전거에 올라타 배달을 합니다. "문 앞에 두고 초인종을 눌러주세요" 같은 요청 사항이 있으면 그대로 하고 배달을 완료하면 '전달완료' 버튼을 누릅니다. 이게 기본 과정입니다.
라이더 입장에서 시간은 돈이라서, 시간을 단축해주는 가게와 고객이 고마운 존재라고 합니다. 조리 시간 안에 미리 음식을 준비해주는 가게, 아파트 1층에서 호출해 올라가면 이미 집 문을 열고 기다리는 고객(곧바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수 있는)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자연스레 가게 사장님의 따뜻한 인사말, 배달 주문 고객이 건네주는 비타500과 미소 같은 것에 아주 큰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저도 배달 주문을 자주 하는 편인데, 음식 받으면서 밝게 인사 한마디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월급 200~250만 원이면 라이더를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배달대행이 생기면서 실력 좋은 전문 라이더들이 배달대행으로 넘어가 실력 좋은 라이더를 구하려면 월 300만 원 이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식점에서 배달원을 직접 고용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급기야 아예 가게를 접거나 알바에게 맡기고 직접 배달대행에 뛰어든 치킨집 사장님들도 있다고 하네요. 전업 라이더들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음식이 식거나 흐트러지지 않게 신경 쓰면서 위험한 길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배달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최대한 많은 콜을 소화하여 충분한 수익을 거두어 생계를 꾸려야 하는 전업 라이더 입장에선 늘 마음이 급하고, 주 6일 7일 무리해서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전업 라이더를 위협하는 존재는 바로 부업 라이더들입니다.
배민라이더에는 세 종류의 직군이 있습니다. 배민이 직접 고용한 월급제 라이더, 자기 오토바이를 갖고 보험도 자기가 든 '지입제' 라이더, 그리고 순수 알바 형태인 '커넥터'.
퇴근 후 운동도 하고 용돈도 벌겠다며 부업으로 배달을 시작한 젊은 직장인이나 정년퇴직 후 소일거리를 찾다가 도보 혹은 자전거로 배달을 하며 한 건당 3,000원에서 5,000원 정도의 수입을 챙기는 부업 커넥터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배달 시장에 계속 공급되면 배달 요금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기 쉽지 않을 뿐더러 결과적으로 전업 라이더들과 부업 라이더들의 경쟁은 불가피합니다. 수요와 공급의 기본 공식은 배달 시장에서도 불문율입니다. 배민 입장에서도 최저임금에 인센티브, 주휴수당에 연차까지 쳐줘야 하는 직접 고용 라이더를 늘릴 필요가 없이 부업 참여자인 커넥터를 늘려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숨바꼭질을 하면서 말이죠.
마치 배민과 커넥터들이 '인센티브'를 두고 숨바꼭질을 하는 느낌이다. 박한 기본요금에 커넥터들이 일을 안 나오면 라이더가 부족해진다. 라이더의 총량이 줄어들면 "라이더 배차가 안 돼 배달을 못한다"는 음식점들의 불만이 높아진다. 그러면 인센티브 내걸고 다시 커넥터를 불러 모은다. 인센티브는 배민이 부담하기 때문에 언제까지 인센티브를 줄 수는 없다. 인센티브가 사라지면 커넥터들도 집으로 돌아가고 음식점들 배차 불만이 터져 나오면 다시 인센티브를 건다. 숨바꼭질이다.
끝으로 제가 책에서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한 대목을 소개하며 마치겠습니다. 배달하는 사람들은 우리 삶에 필수적인 영역을 담당해 주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배달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분들, 배달 일을 알바 삼아 하려는 분들, 음식점 사장님들, 그리고 배달을 시키는 우리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고층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대기 시간이 길다.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속절없이 아파트 안에서 5~10분을 보내야 할 때도 있다. 어떨 때는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는 동안 층마다 설 때도 있다. 14층에서 CJ대한통운이 타고, 12층에서 바로고가 타고, 9층에서 생각대로가 타고, 6층에서 쿠팡맨이 탄다.
보통 택배기사들은 층수 표시 디스플레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배달대행 기사들은 콜을 잡기 위해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본다. 그러나 이들 마음속은 발 동동이어서 엘리베이터 안에 '쿵쿵쿵쿵' 발 구르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릴 정도다. 18층에서는 배민라이더가 층마다 서며 도통 오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차라리 계단으로 내려갈까?'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