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팥빙수에 얽힌 3대 모녀

by 써니현

나이 드니 입맛도 변하나 보다.

작년까지 달디 단 팥이 들어간 단팥빵이나 팥빙수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는데 요즘은 속수무책으로 덤비는 폭염이 입맛까지 바꿔 놓았는지 팥이 들어간 간식, 특히 시원한 팥빙수가 그렇게 당긴다. 부드럽게 갈려 촉촉하기까지 한 우유 얼음에 달큼한 팥 몇 알을 얹어 함께 먹으면 사르르 녹는 시원한 우유 속에 달달한 팥알이 씹히면서 혈당이 스파이크 치기 딱 그 직전까지의 기막히게 절묘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그 맛을 보고 나면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수저질을 멈출 수가 없다.


신기한 건 엄마 역시 팥을 좋아해서 더운 여름 엄마에게 갈 때는 양손 가득 팥 아이스크림만 사가곤 한다.

엄마와 다르게 살고 싶어 그렇게 용을 썼는데도 나이 드니 결국 입맛까지 닮아 버렸다.

강력한 미각 유전자의 힘이 자연스레 입맛을 변화시킨 건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즘 내 입맛에 팥빙수는 밥보다 더 맛있다.


어린 시절부터 40여 년간 멈추지 않는 롤러코스터 같은 고달픈 삶을 살아내서인지 이제는 관성대로 살아가고 싶었다. 부자로는 살 수 없지만 매일 밥 굶지 않고 아프면 병원 가 치료할 수 있을 만큼의 돈벌이는 하고 있으니 이제 자족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운명에 저항하느라 에너지를 티끌까지 쥐어짜 더 이상 나를 소진하고 싶지도 않았고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따라 더 빼서 쓸 힘도 없었다.


지금의 안온한 생활태도를 20대의 나라면 정말 상상할 수 없었을 거다.

더 명확히 말하면 그때는 지금 나와 같이 나이 든 사람들을 구태의연한 꼰대라고 극혐 했을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어른을 경험하지 못하고 훈육 없이 성장해 자아만 제멋대로 비대해진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닐 수 없다.

고작 20여 년 산 사람이 50여 년 간 온갖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또 설령 살아본다 하더라도 타인의 인생을 직접 경험한 게 아니기에 그 누구도 상대의 삶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속단할 수 없는데 말이다.


글의 서두가 팥빙수로 시작해 치기 어린 20대로 주제가 비약한 이유는 순전히 '딸' 때문이다.

어제 퇴근하고 오랜만에 딸과 함께 외식을 하고 2차로 빙수가게를 갔다.

딸은 과일빙수가 먹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팥빙수가 먹고 싶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많은지 중국집 짬짜면처럼 메뉴판에 반반빙수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딸이 원하는 과일이 아닌지라 우리는 신중한 협의 끝에 다양한 빙수 메뉴 중 둘 다 적당히 만족할 수 있을법한 티라미수 빙수를 주문했다.


딸은 20대의 내가 그랬듯 팥빙수를 먹고 싶어 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또 마트에서 장을 본 후 셀프계산대 앞에선 엄마가 못 미더웠는지 잽싸게 바코드 손잡이를 가로채 계산을 시작한다. 어느새 커서 엄마를 챙기는 딸이 내심 대견스러우면서도 딸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예전 내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일까 싶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또 무심코 엄마를 무시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딸을 보면 예전 나를 보는 것 같아 자업자득이다 싶을 때도 있다.


사랑하는 딸.

엄마는 할머니가 닮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는데, 너에게 엄마는 어떤 대상일까 궁금해.

하지만 엄마가 얻은 결론대로 라면, 너도 언젠 가는 엄마와 함께 팥빙수가 먹고 싶어 질 거야.

그리고 너도 나중에 결혼해서 너랑 똑 닮은 딸 낳을지도 몰라.

악담은 아니야. 그냥 그렇다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넝쿨째 굴러온 행복! 꿈 깨고 행복을 줍줍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