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현 Jun 18. 2024

어릴 때 단점이 나이 드니 장점이 되었다.

내 머리숱의 역사

어릴 머리숱이 어찌나 많았는지 내 머리카락을 다 쓸어 모아 예쁘게 묶어 줄 수 있는 사이즈의 머리핀이 없었다.


또 머리색은 어찌나 칠흑 같았는지 지금도 미용실에 가면 갈색 염색약을 남들보다 더 오래 바르고 있어야 겨우 갈색빛이 돈다. 평생 시커먼 삼단 머리카락에 질력이난 관계로 새치염색도 꼭 갈색만 한다.


엄마는 아기 때 내가 뼈가 없는 것처럼  몸이 흐물거리고 몸이 약해 오래 못살거나 사람 구실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내 기억에도 어릴 적 몸이 너무 허약해(차로 친다면 연비가 은 타입) 밤마다 식은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오죽하면 엄마가 없는 형편에 녹용을 지어 먹였을 정도였다.


머리숱이 많은 데다 식은땀도 많이 흘리다 보니 집집마다 머릿니가 대유행하던  국민학교 시절 머릿니에게 주요 서식지를 제공하는 가교역할을 맡기도 했다.


문익점선생님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최초로 들여와  백성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하셨듯이 나는 반 친구에게 머릿니를 옮아와 엄마. 언니. 동생에게 1차로 퍼트리고 2차로 외갓집으로 잠시 격리된 틈에 할머니에게 까지 머릿니를 퍼트려 온 가족의 삶의 질을 크게 추락시키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야 말았다.


수북한 머리숱 덕분에 박멸이 쉽지 않았던 내 머릿니는 엄마가 시장에서 사 온 독한 약 덕분에 어렵사리 퇴치할 수 있었다. 내 기억에 그 물약을 세숫대야 물에 풀고 그 물로 머리를 감으면 약이 어찌나 독했던지 한동안 어지러웠던 것 같다.


한창 꾸미기 좋아하던 대학시절에는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는 게 꿈이어서 머리를 허리까지 길렀었다. 그런데 나는 긴 머리만 가능하고 생머리는 영 불가한 지독한 반곱슬 소유자였다. 게다가 여전히 머리숱도 수두룩 빽빽이었다.


하지만 긴 생머리 로망을 포기할 수 없어 꿋꿋하게  반곱슬에 긴 머리를 고수했고 어느 날 직장 선배에게 치욕스러운 말을 듣게 되었다.


내 긴 머리가 마치 산에서 막 하산한 여자 같다나ᆢ(쩝)


그 직언이 계기가 되어 나는 수년간 길렀던 머리를 미련 없이 단발로 싹둑 잘랐다.


이렇게 많은 상처를 주었던 내 머리숱이 중년에 접어들자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다.


수북했던 머리숱 덕분에 나이 들어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음에도 내 머리숱은 아직도 풍성한 편이다.

50을 앞두고 긴 머리를 유지할  만큼의 머리숱이 그나마 잔존하고 있어 늦게나마 내 머리숱에게 이 글을 빌어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쓰담쓰담 고마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