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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하루 Jun 12. 2020

슬기로운 집콕 생활, 비건 베이킹

2020.05.22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고. 기왕 이렇게 된 거 평소에 절대 안 할거 같은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책장에 꽂혀있던 비건 베이킹 책을 꺼내봤다. '비건'하면 몸 건강과 환경을 생각한 소위 '깨어 있는 사람'들이 할 것 같은데 사실 나와는 거리가 멀다. 난 철저한 육식파. 근데 왜 '비건 베이킹'을? 싶겠지만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삼시 세'빵'도 가능한 빵순이인지라 '버터'와 '계란' 없이 빵이 가능하다고?! 하는 의심이 이번 도전(?)의 출발점이었다.


길어지는 집콕 생활로 기운이 자꾸 가라앉다 보니 뭐라도 생산해야 할 것 같아서 인생 첫 비건 베이킹에 도전해봤다. 두 팔 걷고 자신만만하게 시작하려고 보니 집에 재료가 하나도 없네. 그도 그럴 것이 비건 베이킹은 밀가루부터 일반 베이킹과 다르다. 필요한 재료만 사도 뭔가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 같긴 하지만 이왕 하기로 한거 가장 최소한의 재료만이라도 공수해보자.  

우선, 전립분. 밀가루는 강력분과 박력분밖에 몰랐는데 전립분이라는 게 있더라. 쉽게 말해서 덜 정제된 밀가루라고 해야 하나. 밀알을 통째로 빻아 만들어 일반 밀가루보다 영양가가 높고 박력분 3배 이상의 식이섬유와 철분이 포함된다고 한다. 덜 정제되다 보니 갈색빛이 감돌고 가루 입자가 큼직하다. 사람에 따라선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특유의 풍미와 식감이 있다. 두 번째는 사탕무 설탕. 이름 그대로 사탕무로 만든 설탕이다. 혈당치를 천천히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몸에 부담에 적단다. 세 번째는 포도씨유. 한국에서는 식용유 대용으로도 익숙한데, 무미 무취인데다가 콜레스테롤 0%를 자랑하는 몸에 좋은 기름이다. 네 번째는 (사진엔 없지만) 무조정 두유. 평소 흰 우유를 안 좋아해서 대신 두유를 마시곤 하는데 그러고 보니 두유에는 '조정'과 '무조정' 두 종류가 있다. 왠지 '무조정'하면 이름 그대로 뭔가 빠졌을 거 같아서 평소엔 직감적으로 조정 두유를 마셨는데 '무조정'이라는게 두부를 만들 때 생기는 비지를 제거한 액체란다. 그 말인즉 콩과 물로만 되어 있는 액체. 그만큼 맛이 강하다.(그간 조정 두유를 마셨던 건 역시 틀리지 않았어.)


만들기도 전에 벌써 배부른 이 느낌은 뭐지. 그저 새로운 빵을 만들어 보고 싶었을 뿐인데 엄청 공부한 것 같네. 빵 하나도 쉬운 게 없다. 근데 한편으론 평소에 아무 지식 없이 음식을 섭취해왔구나 싶다. 내 몸에 들어가는 건데 제대로 알고 먹는 건 분명 중요하다. 물론 이 마음 오래가진 않겠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그런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에 만족해야지.


첫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 가장 간단할 것 같은 스콘에 도전해봤...으나 역시 똥손은 오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아니 분명히 레시피 그대로 했는데 평소 보던, 먹던 그 비주얼과 너무 다르다. '아하, 비건 베이킹이 이런 거구나' 하며 아무리 우겨보려고 했지만 다른 건 다른 거다. 스콘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아주 귀한 교훈을 얻고 끝난 첫 비건 베이킹.

식욕이 사라지는 비주얼


큰맘 먹고 재료를 마련했으니 심기일전으로 그나마 경험이 있는 파운드케이크에 도전해봤다. 마침 바나나가 좀 남았길래 겁도 없이 '카라멜 바나나 파운드 케이크'에 손을 댔다. 한 번의 실패가 있어서 그런지 최대한 침착하게 바나나도 카라멜 코팅 잘 됐고 반죽도 이만하면 괜찮고 이제 틀에만 잘 넣어 주면 된다. 두근두근. 과연 사진 그대로의 비주얼이 완성될지. 스콘에 비하면 일취월장하긴 했는데 아니 분명 사진엔 가운데가 움푹 패는데 내 파운드는 왜 솟아오른거지...? 원래 바나나가 케이크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놈 참 이상하네.

계란, 버터, 우유, 백설탕이 안 들어가서 확실히 약간 심심한 맛이긴 하다. 그치만 인공적이지 않은 착한 맛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인지 자꾸 먹게 된다. 강한 맛을 적게 먹는 거랑 심심한 맛을 많이 먹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겠구나 싶지만 그래도 새로운 걸 해봤다는 것에 의미를 두며 오늘도 집콕 생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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