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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하루 Jun 12. 2020

코로나로 뒤숭숭했던 5월과 베란다 텃밭

2020.05.21


5월도 벌써 하순으로 넘어간다. 삿포로는 아직 5도 미만의 최저 기온과 20도를 웃도는 최고 기온이 왔다 갔다 하지만 그래도 봄이 오긴 왔다.


여행객들은 삿포로의 겨울을 기다리지만 현지인은 봄을 기다린다. 그것도 아주 손꼽아. 산의 녹음이 푸르러지고 바람의 찬기가 가시면 '지난겨울도 별 탈 없이 무사히 보냈구나', 그제서야 봄을 실감한다. 일본에서도 북쪽 끝이라 소외되는 게 가끔 씁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황사나 미세먼지 걱정 없는 삿포로의 파란 하늘은 정말 정말 소중하다.

계절은 변하지만 코로나 여파로 참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관광객이 많아서 그랬는지,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해서 그랬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홋카이도는 일본 내에서도 가장 먼저 코로나 감염이 확산되었다. 다행히 초반에 잘 잡은 듯 싶었지만 제2막이 시작돼서 지금은 일본 내에서 감염자가 많은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당연히 일부 지자체에서 해제한 긴급사태선언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어 생활이 자유롭지 못하다.    


모두가 그랬듯 잠시 지나가는 건 줄 알았다. 설마 내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그렇게 대비할 방법도 없이 코로나 여파로 반백수가 되었다. 7년 남짓한 조직 생활을 뒤로하고 자의 반 타의 반 독립하여 프리랜서가 된지 반년. 고민도 많았지만 운 좋게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스타트를 잘 끊었고 이 정도면 해볼 만하겠다 안심하던 찰나에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앞으로도 업무에 비수기 성수기가 있을 테니 미리 비수기를 경험하는 셈 치고 의연하게 지내보고자 다짐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유효기간은 한 달 남짓. 정신 차려보니 3월과 4월 두 달이 지났고 5월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5월까지는' 어떻게든 멘탈이 버텨줄 거 같은데 아무런 변화 없이 6월로 넘어가면 정말 심적으로 많이 힘들 거 같은 그런 슬픈 예감. 물론 이 시국에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이렇게 불평불만 토로하는 것도 자괴감이 들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그나마 위안을 주는 건 우리집 베란다 텃밭. 몇 년 전부터 매년 조금씩 베란다에서 채소를 키워봤다. 시작은 시어머니께 받은 오바라고 하는 일본의 잎채소와 바질. 이미 어느 정도 자란 상태에서 받은 거라 매일 물만 잘 줬더니 알아서 쑥쑥 커줬다. 덕분에 그 해 여름은 오바와 바질을 원 없이 먹었다. 그렇게 베란다 텃밭의 재미를 보고 나니 슈퍼에서 비싸게 사 먹는 게 아깝게 느껴져서 올해는 겁도 없이 채소 종류를 늘려봤다. 효자 종목인 오바와 바질은 물론, 에다마메라고 하는 콩과 당근, 감자, 방울토마토 등등 욕심을 좀 내봤다. 몇 번 실패를 경험한 남편은 할 거면 제대로 한다며 텃밭용 대형 화분이며 흙이며 잔뜩 사 왔다. 재료비만 만 엔 들었다길래 그럴 거면 그냥 슈퍼에서 사다 먹는 게 더 싸지 않냐고 따졌더니 키우는 재미가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단다. 맞는 말이기에 바로 수긍.

싹이 나기 시작한 감자

마음만 앞서서 무턱대고 대형 화분에 씨를 뿌렸는데 알고 보니 싹이 날 때까지 작은 발아용 화분에다 키워야 한단다. 이미 씨를 뿌렸으니 흙을 헤집어서 찾아낼 수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씨앗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싹이 돋았다! 작은 씨앗에서 무거운 흙을 뚫고 나왔을 새싹을 직접 마주하니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그때부터 매일 아침 채소들을 확인하는 게 하루 일과가 되었다. 추울까 봐 비닐도 덮어주고 물도 주고.


방울토마토랑 당근은 한 곳에 씨를 너무 많이 뿌린 바람에 하나하나 분리해서 다시 심어줘야 할 것 같다. 감자는 그동안 깜깜무소식이라 걱정했는데 어느새 싹이 올라와서 안심했다. 옥수수는 뿌리가 엄청 길어져서 조만간 깊이가 있는 화분을 장만해서 분갈이를 해줘야겠다. 할 일이 많네.


일상은 정체되었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자라나는 채소들을 보면서 힘을 낸다. 채소들이 저마다 싹을 피우는 시기가 다르듯 때를 기다리며 크게 심호흡 한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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