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타 Jun 04. 2021

카오스

권은중을 읽는 동안








카오스는 우주의 태초에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법이라고 부르짖는데 어제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가 그 카오스 이야기 다시. 아침밥 먹으면서 딸아이랑 이야기. 엄마는 그게 아닌데 왜 그렇게 MBTI가 나오는 걸까 하고. 어디 한번 예를 들어봐, 네가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그랬더니 곰곰 생각을 하다가 친한 친구가 알바에서 갑자기 잘렸어. 그럼 엄마는 어떻게 말할 거야? 이렇게 두 가지 케이스가 있어. 하나는 아이구 어째 ㅠㅠ 너무 당황스럽겠다, 속상하지? 내가 맛난 거 사줄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친구야. 그리고 하나 더, 무심하게 할 일을 하면서_ 아 안됐군. 안타까운 상황이야. 하지만 어쩌겠어. 새로운 알바를 구해야지. 빨리 새로 일 찾아 구직 사이트에서. 대답을 딱 하려고 하는데 딸아이가 이야기한다. 내가 아는 엄마라면 분명 아이구 어째 ㅠㅠ 속상하지? 친구야 내가 맛난 거 사줄게. 할 거잖아?! 나 이때 릴라처럼 눈 가늘게 떴다. 이제 눈 가늘게 뜨면 저절로 릴라 떠오를 판. 어쨌거나 그래서 대답을 기다리는 딸아이에게 아가, 엄마는 아 저런 안타깝구나, 하지만 인생이 본래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을 때도 있어. 그러니 얼른 구직 사이트를 열어보렴 친구야 라고 말해. 진심으로 당황한 딸아이가 진짜? 엄마가 그래? 아닌데! 내가 아는 엄마는 첫 번째 케이스인데!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네가 엄마 모르는 게 많네. 푸후훗. 얼마 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 일기장 어떻게 찾아내 훔쳐 읽은 딸아이 반응도 진심으로 당황이었는데. 



 딸아이를 등교시키고 커피를 마시며 볼로냐 이야기를 계속 읽다가 아 그렇지 물론 아이구 어째 ㅠ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극히 드물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친구들도 제한적이고. 딸아이는 아직 내게 환상을 갖고 있는 반면 나를 낳아준 우리 엄마는 비교적 나를 잘 파악하고 있다. 언젠가 이야기 나누다 말고 아는 이들 중에 가장 차가운 사람 이야기 나왔는데 엄마가 진심으로 나를 지목해서 당황했던 적 있다. 알콜 한 방울 안 마신 상태인지라 진심으로 더 당황했다. 엄마 주변에서 가장 차갑고 이성적인 건 너야. 가끔 재수 없어, 너무 차가워서. 네? 어머니, 저 어머니 딸인데요 지금 저보고 재수없다고 하셨어요? -_-  차갑다는 게 좋은 소리는 아닌데 어쨌거나 엄마가 지목하는 냉혈한이 교보문고에서 업어온 책 좋아서 아껴 읽는다. 아무 생각 없었다. 오 볼로냐야. 오 이탈리아야. 오 나를 위해서 이렇게 매대에 쫙 깔린 것 봐. 아가야 이 책은 무조건 읽도록 하자 하고 갖고 왔다. 그리고 글을 읽는데 뭐지 왜 이렇게 좋지 싶어서 저자 이름을 보았다. 익숙한 이름이야. 왜 익숙하지. 하고 좀 더 찾아보았다. 왜 이렇게 그 이름이 익숙한가 했더니 그는 한겨레의 그 권은중이었다. 인생 참 다채로워, 아주 좋아 죽겠다. 그리고 뜬금없는 이야기인데 내가 이토록 책 속에 파묻혀있는 건 나중에 들판에서 마구 뛰어놀기 위함이다. 딸아이에게도 이야기한다. 딸아, 네가 그토록 공부를 마구 하는 건 말이야 나중에 놀기 위함이야 놀기 위함. 그랬더니 엄마 저 지금 놀고싶은데 지금 놀면 안 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짝반짝 빛내면서_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딸아, 안돼. 지금 놀면 나중에 공부해야 해. 그러고 싶어? 밀린 공부 하려면 잠도 못 자. 밥도 주먹밥만 먹어야 할걸. 똥줄이 타서 미치려고 할걸. 그러니 나중에 느긋하게 놀려면 지금 공부해. 이야기를 다 들은 딸아이가 그럼 지금 공부해, 좋아. 나중에도 공부하게 되면 어쩔 거야? 어쩌긴 뭘 어째. 더 좋은 거지. 근데 사람 사는 게 나중에 놀고 싶어서 죽으려고 할 때 있으니까 그런데 그것도 다 보면 공부니까 원래 사는 게 그런 거야. 그리고 공부도 거대하게 보자면 놀이의 일종이야. 그러니까 놀고 싶다가도 공부하는 거고 공부하고 싶다가도 놀고 싶고 뭐 그러다가 놀기도 하고 공부하기도 하고 횡설수설 이야기를 다 들은 딸은 엄마는 무조건 엄마 마음대로 해. 마녀 같아. 입을 삐죽이길래 엄마 인생관이 카오스잖아. 자 그러니 잔말 말고 빨리 이탈리아 단어 하나 더 외워. 좋은 말로 할 때.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매일 새로워진다_를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