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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Mar 18. 2019

[학교 밖 이야기] 나만 어려운 관계

스물 넷 , 두 번째 휴학 생활 이야기, 첫번째

나는 소심하다. 겉으로는 밝고 유쾌한 척하는 사람이지만 말이다.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 날 저녁 침대에 누워 계속 내가 했던 말을 되뇐다.

이 말 때문에 그 친구가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나, 행여나 나에게 실망한 게 아닐까.

생각의 꼬리는 꼬리를 물고 꼬박 새벽을 새고야 만다.


요즘엔 그 증세가 더 심해졌다. 읽씹 당한 채팅창을 다시 켜보고, 인스타에 들어가 그 친구가 썼던 댓글을 곱씹는다. "아, 아까 그렇게 말하지 말걸. 너무 잘난 척을 한 게 아닐까." 친구와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그렇다. "인스타가 뭐라고 사진 계속 찍어 달라 그래서 정 떨어졌나? 아니면 내가 너무 귀찮게 했나? 그래서 요즘 연락이 없나?" 


그래서 요즘은 약속을 잡는 것도 힘들다. 만나면 요즘 근황을 서로 물어볼 테고, 나는 집-학원, 아니면 온종일 집. 이게 다인데. 친구들을 계속 만나고는 싶고, 내 자존감은 바닥이고, 그렇지만 즐겁고는 싶다. 모순적이게도 난 내가 즐겁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파워 집순이 기질에 소심쟁이라서 만나고 나면 며칠간은 혼자만 있어야 한다. 내적 에너지가 급하게 고갈되는 탓이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말라'는 시의 한 구절처럼 의연하게 행동해보려고 해도 안 되는 게 사람 마음이다. 인싸로 추정되는 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인터뷰 중 "나도 친구 없는데"라고 하는 말에 안심이 되다가도 바쁜 스케줄 속 친구 만날 시간이나 될까라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한없이 우울해진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힘들까. 흑흑. 다 때려치우고 혼자 무인도에 가서 살아야 하나. 나 사실 공부 말고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잘하는 것도 없는데. 사냥, 농사는 커녕 불도 못 땐다. 어쩔 수 없이 사회적 인간이 되어야 하는데, 이건 어디서도 배워보지 못한 일이다. 최근 '인싸가 되는 법'이런 식의 유튜브 영상도 많이 올라오던데. 인싸는 고사하고 그냥저냥 필수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알려주는 강의 같은 게 있으면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 


오늘도 사진첩을 열어 꽤 오랜 시간 시간을 나눠준 이들의 사진을 본다. 그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쩌다 어른'에 나온 김경일 교수가 '우정에 대하여' 이런 말을 했다. 아무런 용건 없이 전화를 거는 친구에게 자꾸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고. 그런데 그 친구가 한 말은 이렇다. '그냥 궁금해서 전화했다. 나는 네가 늘 궁금하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 안부를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의미 없는 나의 안무 문자에 웃으며 답해주는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누군가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들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나만 어려운 인간관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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