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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인 Suin Park Feb 24. 2023

비극 앞에 시든 음악

음악학술 뉴스테러 '씨샵레터'에 소개된 글입니다.

https://csharpletter.stibee.com/p/29/



오는 12월 류이치 사카모토가 마지막이 될 지 모를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류이치 사카모토는 2015년 암 투병 중이라고 밝히면서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했었는데요. 그러다 지난 2018년, 가장 존경한다는 영화감독 이냐리투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 함께하자고 제안하면서 다시 음악 작업을 시작합니다. 투병 중인 음악가의 이 작업은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에 담겼어요. 죽음 앞에 선 음악가가 음악과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어요. 하루 수십 알의 약을 목구멍으로 넘기면서도 사카모토는 작업을 계속해 나갑니다. 도대체 음악이 무엇일까요? 또 죽음은요? 삶의 마지막을 앞둔 음악가가 보내는 그 뭉근한 시간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한편, 얼마 전 우리는 준비는커녕 예상할 수조차 없던 수많은 젊은 생의 마지막을 목도했습니다. 직접 보고도 믿지 못할 끔찍한 사건으로 충격에 휩싸였어요.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그 상처를 아파할 틈도 없이 책임자 색출에 나섰습니다. 그러더니 계획되어 있던 음악회들이 잇따라 취소되기 시작했어요.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되었다는 이유로요. 음악은 무엇일까요? 죽음은요?


비극 앞에서 음악은 사치인 걸까요? 지난주, 전 가까스로 취소를 피해 간 한 음악회에 다녀왔어요. 공연을 시작하기 전, 첫 번째 곡 후에는 박수를 삼가달라는 안내를 전달받았어요.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비극적 참사를 추모하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시간이 되자 단원들과 지휘자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입장하기 시작했고요. 1,000석이 넘는 규모의 객석 안이 긴장되는 침묵으로 가득 찬 그 순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 시작한 음악은 원래 첫 곡으로 예정되어 있던 현대 작품이 아닌,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였어요. 첫 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그리고 연주가 끝날 때까지 눈물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그제야 저 자신도 이 일로 상처받았다는 걸 알았어요. 언론이 매일 같이 떠들어대는 온갖 시끄러운 소리를 뒤로 하고, 그 자리에서야 비로소 이태원에서 죽어간 이들을 마음 깊이 애도할 수 있었습니다.


� Queensland Symphony Orchestra - E. Elgar: Enigma: Nimrod Variation


사카모토는 〈코다〉에서 "지속되는, 사라지지 않는, 약해지지 않는 그런 소리를 내내 동경"해왔다고 술회합니다. 그러면서도 피아노로 주로 작업한다는 그는 또 이렇게도 말해요. "피아노는 울림이 지속되지 않거든요. 그냥 두면 소리가 약해지다가 없어져요." 그에게 음악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무언가이면서 동시에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져버리는 것이죠.


생과 사는 분리될 수 없어요. 음악은 상반되는 것 같은 그 둘을 모두 품고 있고요. 하지만 '국가애도기간'에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그 선언은 죽음과 삶을 갈라놓았어요. 음악가들은 침묵 당했고요. 삶을 잃은 음악가들은 죽어가고 있어요. 음악은 무엇일까요? 또 죽음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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