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콘은 트라우마다

나의 사전 100_ Day 14. 리모콘

by 수인살롱

리모콘은 트라우마다. 아이들이 한창 말을 듣지 않던 어린 시절이었다. 지금은 이유도 상황도 또렷하지 않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도 흐릿하다. 다만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났고, 그 순간 화를 참지 못했다. 마침 내 손에 쥐어져 있던 리모콘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꽁 하고 내리쳤다. 체벌이나 폭력을 거의 쓰지 않던 나였기에 맞은 아이도, 때린 나도 동시에 당황했다. 너무 짧은 순간이었고, 나 역시 내가 한 행동을 믿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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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훌쩍 넘은 지금도 아이들은 가끔 리모콘 이야기를 꺼낸다. “어릴 때 엄마가 리모콘으로 머리 때렸잖아.” 나는 늘 덧붙인다. 딱 한 번이었다고, 정말 그 한 번뿐이었다고. 솔직히 억울한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 ‘딱 한 번’이 아이들에게는 오래 남은 기억이었고, 어쩌면 상처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트라우마는 상처와 아픔이 학습된 상태라고 한다. 아이들은 그 순간, 물리적인 아픔보다 감정의 혼란을 배웠을 것이다. 안전하다고 믿던 사람에게서 예상치 못한 행동이 나왔다는 경험을. 사랑과 배려를 충분히 학습시켜주지 못한 나의 미숙함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이라도 아이들이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 자신부터 잘 가다듬어야 한다. 감정을 다루는 법을 다시 배우고, 더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 리모콘은 여전히 트라우마다. 하지만 그 기억을 외면하지 않고 배움으로 바꾸려는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조금은 나아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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