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과거에서 왔니? 우리는 취향이 좀 다르다

아날로그 취향 vs 효율 취향

by 수인살롱

토요일 휴일은 언제나 꿀맛이다. 느즈막이 일어나 집을 정리하고 수영장에서 몸을 풀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며 마음까지 단정히 다듬었다. 모처럼 전혁림 미술관과 봄날의 책방을 거쳐 통영의 물회 식사 까지 친구와 함께 기분 좋게 통영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친구는 매우 아날로그적인 취향을 갖고있다. 아직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고 하이패스도 사용하지 않는다. 네비게이션도 잘 활용하지 않고 인터넷 검색 보다 본인의 경험이나 기억에 더 의존한다. 기계에 의존하기 싫다고 한다. 친구가 통영 물회 맛집을 추천했다. 친구가 추천해서 갔던 식당중에 폐업을 하거나 이전을 하거나 등등의 이유로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던 일이 여러번 있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까봐 영업하는지 인터넷 검색 해 보라고 하니 유명해서 망할 리 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문은 닫혀 있었고, ‘내부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 앞에서 기대와 기분이 동시에 깨졌다. 한두 번이 아닌 반복된 상황에 쌓여 있던 감정이 불뚝 솟아나왔다. 다른 선택지를 두고 우리는 또 엇갈렸다. 친구는 “아는 데가 있다”고 했고, 나는 “확실한 곳 아니면 싫다”고 했다. 결국 바로 옆 식당으로 들어갔지만, 음식도 기분도 모두 맛이 없었다. 맛 없이 차고 딱딱했던 물회는 차가운 국물보다 더 차가운 감정을 남겼다.


취향이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개인이 선호하는 경향을 뜻한다. 실제 삶에서는 훨씬 복합적이다. 취향은 선택의 방식이고, 삶을 대하는 태도다.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한계선이다. 어떤 사람은 아날로그의 느림과 번거로움을 낭만으로 느낀다. 어떤 사람은 그 모든 과정을 불필요한 비효율로 느낀다.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하이패스 없이 표를 뽑고, 네비게이션 없이 길을 헤매는 친구에게 그것은 ‘불편’이 아니라 ‘자기다움’이다. 반면 나에게는 이유 없이 감당해야 하는 불편함이다. 취향의 차이는 이렇게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게 만든다.


취향의 차이는 왜 생길까. 살아온 환경, 익숙해진 방식,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친구는 불편함을 견디는 대신 감성을 지켜왔다. 나는 감성을 조금 내려놓는 대신 효율과 안정성을 선택해 왔다. 문제는 이 차이가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바뀌는 순간이다.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냐”와 “왜 그걸 이해 못 하냐” 가 충돌한다. 취향은 설명되지 않을 때 고집으로 보이고, 이해받지 못할 때 공격이 된다.


취향이 같으면 편하다. 결정이 빠르고, 갈등이 적다.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덜 소모한다. 여행도, 식사도, 생활 방식도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하지만 취향이 같다는 것은 동시에 시야가 좁아질 위험도 안고 있다. 서로를 확장시키기보다는 확인해 주는 관계에 머물 수 있다. 반대로 취향이 다를 때는 불편하다. 작은 선택 하나에도 신경이 쓰이고, 양보와 조율이 필요하다. 하지만 잘만 다뤄지면 서로의 세계를 넓혀주는 자극이 된다. 문제는 ‘다름’ 그 자체가 아니라, 다름을 다루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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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다 큰 어른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신 경계 설정이 필요하다. 어디까지는 이해하고, 어디부터는 조율이 필요한지 솔직하게 말하는 것. 그리고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과, 그 취향으로 인해 내가 계속 불편해지는 상황을 감내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취향을 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성숙이다.


취향의 차이를 통해 우리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인지, 어떤 관계가 나에게 맞는지를 알게 된다. 취향은 맞춰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범위를 가늠하게 해주는 기준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취향이 같은가 다른가가 아니라, 그 차이 앞에서 서로를 얼마나 존중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 자신에게 얼마나 솔직할 수 있는가다. 나와 다른 친구의 아날로그적인 취향을 존중 해 주어야겠다. 그리고 친구도 기계적인 편리함과 깔끔함을 추구하는 나의 취향을 존중 해 주면 좋겠다. 세상을 조금 더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도 많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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