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전 100_ Day 22. 밥솥
밥솥은 즐거움이다.
전기밥솥이 영 시원찮아서 바꿔야 될 때가 되었다. 이것저것 고르다가 갑자기 압력밥솥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우연찮게 솥밥을 해먹기 시작했다. 압력밥솥에 밥을 앉혀 가스렌지에 불을 켜면 금방 압력이 차오르고 압력밥솥 단추가 돌기 시작한다. 치치치치치, 압력을 뿜어내며 단추가 돌기 시작한다. 기차 소리 같기도 하고 요란한 소리가 부엌과 거실을 가득 채운다. 누룽지를 해 먹으려고 일부러 밥을 살짝 누린다. 고소한 밥 냄새가 온 집안을 채우면 기분이 좋아진다. 갓 지은 찰진 밥과 고소하고 따뜻한 누룽지까지 한 그릇 하고 나면 세상 다 가진 기분이다.
처음에는 불 조절을 몰라 밥이 질기도 하고, 바닥이 새까맣게 타기도 했다. 몇 번을 실패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밥이 끓어오르는 소리의 크기, 추가 돌아가는 속도, 불을 줄여야 하는 타이밍. 설명서보다 더 정확한 건 내 귀와 코와 눈이었다. 그렇게 한 끼를 짓기 위해 감각을 동원하는 시간이 쌓였다.
배움도 그렇다. 처음에는 서툴고, 때로는 타버린 밥처럼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지나면 ‘아, 지금이구나’ 하는 감이 생긴다. 압력이 차오르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알고, 불을 줄여야 할 순간을 알아차리게 된다. 배움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이런 작은 체득의 순간에서 온다.
압력밥솥이 밥을 더 쫀득하게 만들 듯, 적당한 긴장과 반복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오늘도 나는 한 끼의 밥을 지으며,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고소한 누룽지처럼, 배움의 즐거움은 천천히 씹을수록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