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곧을 정 Jul 24. 2022

나도 누군가의 부러움의 대상 일 수 있구나?

통계학적인 금수저는 있지만 우리는 상대적으로 금수저를 매기니깐

나는 부러워 했다.

Sns에 올라오는 부자들을.


나는 부러워 했다.

이따금씩 들리는 건너 건너 사람의 부유한 집안을.


나는 부러워 했다.

금수저와 결혼하는 사람들을.


나는 부러워 했다.

우연히 데이트를 했던 그 남자들의 탄탄하고 부유한 사업가 집안을.


내가 이따금씩 부러워 한 사람들은

당연히 나의 기준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우리 집보다 더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 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부러워 하거나

우리 집안을 부러워 할 대상이라고 크게 생각한 적이 없다.


물론, 단칸방에서부터 어렵게 시작하신 부모님께서

자수성가 하셨고, 눈치 보지 않고 살아도 되는 자가 한채와 으리하지 않은 작은 주택 두어개정도가 있으실 정도의 자수성가셨다. 

욕심이 꽤 있는편인 내가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지원해주셨고 감사히 대학등록금도 지원해주셨다. 다행히 장학금으로 부담을 많이 덜어드렸지만


나는 이 환경속에서 사는 나를 보고 금수저이고 남들이 부러워 할만한 위치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쓰던 모자가 헤져도 바느질 해가며 쓰시고 냉장고 문짝이 떨어져도 수리해가며 쓰시고 이사하며 옮겨 20년째 쓰는 에어컨 등  극심한?검소함을 지닌 아빠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해두면 좋을까?

경제적으로 큰 부족한 없이 자라긴 했지만 부러움의 대상이 나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업수완이 나쁘지않게 흘러가서 오래 잘 일구고 계신 정도였다.


그러다가 정말 몇십년만에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내가 사립초등학교에서 공립으로 옮겨가서 만나 친해진 친구였다. 그땐 참 친했는데 살다보니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야 만났다.


그 친구가 하는 말들은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당시에 그 친구는 엄청 작은 주택 혹은 단칸방에 살고 있었고 나는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자기는 그게 되게 어린마음에 컸다고 한다. 나는 당시에 또 부모님이 바쁘셔서 집안일이랑 밥을 챙겨주시는 이모가 매일 출퇴근을 하셨는데 그것도 되게 커 보였다고 했다. 모든것들이 합쳐져 가난에대한 분노와 보여지는 나의 부유함이 되게 부러웠다고 했다.

이제와서 그 친구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친구의 집과 나의 집 그리고 상황들이 다 새로운 세계였을 것 같고 그 마음도 이해가 된다.


당시 그 사립초등학교와 공립이 사이가 안 좋았는데도 나는 전학간 친구들과 잘지냈고 반장까지 했었다.

나는 그 모든것들이 다 잘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십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의 같이 지내던 몇몇 친구들의 집은 나도 처음보는 집이기도 했고 생각해보니 이아파트에 사는 친구도 정말 드물었고 그 와중에도 제일 큰 집 이었으니..


그래서 나도 이래저래 얼떨결에 진심담긴 고백을 들으며 마음이 이상했다. 그런마음을 가진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얘기했겠지 하는 마음과

내가?내가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라는 마음과

사실 내가 쳐해져 있는 속사정은 내 기준 부러울 게 없는 삶인데 하는 마음과

왜 나를 부러워하지? 쟤정도를 부러워 해야 하는데?라는 마음과

이게 뭘까? 이 웃긴 쫓고 쫓기는 자본주의의 굴레는 뭘까 하는 생각과


참 이 모든 건 상대적이구나.

통계학적으로 금수저가 자산 얼마이고 은수저가 얼마이고 동수저가 흙수저가 이렇게 모두가 공식으로 외우고 있지않는 이상 이 모든 부러움의 대상은 각자의 마음과 주변의 사람과 상황에서 나오는구나.


하물며 이 글을 쓰는 나도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겠구나.


끝도없는 부러움을 쫓기보단

과연 우린 뭐를 해야할까..

마무리 지어지지 않는 모호한 글이다


작가의 이전글 단단함과 긍정적의 상관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