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군가의 부러움의 대상 일 수 있구나?

통계학적인 금수저는 있지만 우리는 상대적으로 금수저를 매기니깐

by 곧을 정

나는 부러워 했다.

Sns에 올라오는 부자들을.


나는 부러워 했다.

이따금씩 들리는 건너 건너 사람의 부유한 집안을.


나는 부러워 했다.

금수저와 결혼하는 사람들을.


나는 부러워 했다.

우연히 데이트를 했던 그 남자들의 탄탄하고 부유한 사업가 집안을.


내가 이따금씩 부러워 한 사람들은

당연히 나의 기준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우리 집보다 더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 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부러워 하거나

우리 집안을 부러워 할 대상이라고 크게 생각한 적이 없다.


물론, 단칸방에서부터 어렵게 시작하신 부모님께서

자수성가 하셨고, 눈치 보지 않고 살아도 되는 자가 한채와 으리하지 않은 작은 주택 두어개정도가 있으실 정도의 자수성가셨다.

욕심이 꽤 있는편인 내가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지원해주셨고 감사히 대학등록금도 지원해주셨다. 다행히 장학금으로 부담을 많이 덜어드렸지만


나는 이 환경속에서 사는 나를 보고 금수저이고 남들이 부러워 할만한 위치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쓰던 모자가 헤져도 바느질 해가며 쓰시고 냉장고 문짝이 떨어져도 수리해가며 쓰시고 이사하며 옮겨 20년째 쓰는 에어컨 등 극심한?검소함을 지닌 아빠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해두면 좋을까?

경제적으로 큰 부족한 없이 자라긴 했지만 부러움의 대상이 나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업수완이 나쁘지않게 흘러가서 오래 잘 일구고 계신 정도였다.


그러다가 정말 몇십년만에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내가 사립초등학교에서 공립으로 옮겨가서 만나 친해진 친구였다. 그땐 참 친했는데 살다보니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야 만났다.


그 친구가 하는 말들은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당시에 그 친구는 엄청 작은 주택 혹은 단칸방에 살고 있었고 나는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자기는 그게 되게 어린마음에 컸다고 한다. 나는 당시에 또 부모님이 바쁘셔서 집안일이랑 밥을 챙겨주시는 이모가 매일 출퇴근을 하셨는데 그것도 되게 커 보였다고 했다. 모든것들이 합쳐져 가난에대한 분노와 보여지는 나의 부유함이 되게 부러웠다고 했다.

이제와서 그 친구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친구의 집과 나의 집 그리고 상황들이 다 새로운 세계였을 것 같고 그 마음도 이해가 된다.


당시 그 사립초등학교와 공립이 사이가 안 좋았는데도 나는 전학간 친구들과 잘지냈고 반장까지 했었다.

나는 그 모든것들이 다 잘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십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의 같이 지내던 몇몇 친구들의 집은 나도 처음보는 집이기도 했고 생각해보니 이아파트에 사는 친구도 정말 드물었고 그 와중에도 제일 큰 집 이었으니..


그래서 나도 이래저래 얼떨결에 진심담긴 고백을 들으며 마음이 이상했다. 그런마음을 가진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얘기했겠지 하는 마음과

내가?내가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라는 마음과

사실 내가 쳐해져 있는 속사정은 내 기준 부러울 게 없는 삶인데 하는 마음과

왜 나를 부러워하지? 쟤정도를 부러워 해야 하는데?라는 마음과

이게 뭘까? 이 웃긴 쫓고 쫓기는 자본주의의 굴레는 뭘까 하는 생각과


참 이 모든 건 상대적이구나.

통계학적으로 금수저가 자산 얼마이고 은수저가 얼마이고 동수저가 흙수저가 이렇게 모두가 공식으로 외우고 있지않는 이상 이 모든 부러움의 대상은 각자의 마음과 주변의 사람과 상황에서 나오는구나.


하물며 이 글을 쓰는 나도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겠구나.


끝도없는 부러움을 쫓기보단

과연 우린 뭐를 해야할까..

마무리 지어지지 않는 모호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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