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RYSTAL KIM Jan 07. 2020

너라는 위로는, 내게 있어서




@kr2stal_kim






다이어리를 정리하다가 너를 생각했어.
가만히 너를 떠올렸어.

요즘의 나는 축하와 격려 그리고 습습한 일들로 썩 유쾌한 매일을 보내는 건 아닌 것 같아. 다정한 이들은 언제나 쪽빛처럼 따뜻한데, 그렇지 못한 범주에 속한 이들은 여전히 내 마음에 물이 들게 해. 늘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나에게 독이 되는 이들인 게 맞는 건지 아니면 그런 상황으로 치부하는 내 편견인 건지 그걸 늘 고민해. 그건 늘 어려워. 마음의 직감과 머리의 이성이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해. 이런 따위의 일들은 늘 어려운 것 같아.

있잖아
지난번에 너를 만나기로 했던 날, 네가 약속 장소에 없었던 날 말이야. 분명히 도착했다는 연락을 주었는데 갑자기 전화도 받질 않았고, 메시지도 확인하질 않았어. 무슨 일이 있나,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없는데 하는 마음에 20분 정도를 걱정하며 서성이다가, 걸려오는 네 전화를 받았지.
 전화를 확인 안 해서 미안하다고. 나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어.
너는 길을 묻는 할머니를 직접  근방까지 데려다 드리고 왔다고 했어. 너는 무작정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보다 나는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싶어 걱정이 되었던 거라 무사한 너를 보고서야 심장이 요동치는걸 차분히 가라앉힐 수가 있었어. 내가 널 기다리는 일은 그게 얼마의 시간이든 언제든지 기다릴 수 있어. 만약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상상만으로도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니까.

너는 카페에 앉아 가만히 듣고 있는 나에게 말했어.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님이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데, 말이 어눌해서 아무도 할머니 얘기를 들어주질 않았다고. 그게 너무 슬퍼 보여서 도와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얘기를 들어보니 보청기 가게를 찾고 있는데 어느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몰라서 알려 달라고 하는 것이었는데, 근방이라서 직접 모셔다 드리고 오고 싶었다고 말이야.

나는 그 할머니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얘기를 듣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 마치 내가 그 할머니의 손녀가 된 것처럼 말이야. 멀리 계시는 다리가 불편한 우리 할머니가 지하철에서 출구를 묻는데,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상상을 했어. 얼마나 가슴이 답답해지는 상황이니. 그런데 기적처럼 누군가 나타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낯선 공간 속에서 헤아려 준다고 한다면 그게 얼마나 고맙지 않을 수가 있겠어.

우리의 세상과 일상은 가끔 이상한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고, 오해를 사고 또 내가 타인에게 실례를 일으키기도 해. 그게 얼마나 마음에 큰 생채기를 내는지 몰라.

하지만  너를 떠올리며 가만히  생각했어.
그래도 세상은 말야, 이렇게 보드랍고 따뜻하구나 하고 말이야.

그런 너의 오늘에서의 하루는 어땠을지  궁금해.
아침엔 제법 겨울이 성큼 다가왔구나 느꼈을 것 같아. 너는 추위를 많이 타니까 곧바로 이불을 뿌리치고 일어나진 못했을 것 같아. 상상하면 웃음이 일어.
그리곤 뒤적거리면서 핸드폰을 보았겠지. 나의 메세지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말야.
너와 매일의 나를 나누는 건 나에겐 슬픔을 봉합하는 일과도 같아.
어마어마한 슬픔을 품고도 곧잘 새살이 차오를 거란 걸 아니까, 나는 어떤 아픔도 견뎌 낼 수 있는 것 같아.

10여 년 전의 그때에서나 지금의 나의 하루에서나
너는 나를 배려하고 나는 너를 염려하고
너는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나는 너를 응원하는 그런 일련의 일들 말이야.
그런 것들이 이 세계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게 나는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그건 지금의 내가 가진 그 어떤 문장으로도 표현 못해.

그렇게 앞으로도 계속 나의 슬픔 따위나 내 정의들을 너랑 같이 배워가고 싶은 마음이야.

그럼 말이야

 오늘의 하루에서도

너는 잘 자.

곱고 좋은 꿈을 꾸었으면 하고 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