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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YSTAL KIM Jan 08. 2020

진실로, 먹방


아침 출근 후 회의시간 전 마주친 그녀의 모습은 왜인지 넋이 나간 듯 보였는데, 간밤에 애인과 진탕 술을 마셨단다. 머리가 팽팽 돌아서 미쳐버리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하겠다고 해서 점심을 국밥으로 선택했다.
회의를 갈무리하고 우리는  순대국밥 한 그릇, 돼지국밥 한 그릇을 주문했다. 자주 가는 국밥집이라서 이모님께서는   국밥과 함께 바로 가위를 냉큼 내어주셨다.
우리가 땡초를 춍춍 썰어 넣는 걸 보고 뒷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시던 중국인 커플이 갑자기 헤이 헤이! 를 시전 하더니, 우리 테이블에 있는 것과 같은 가위를 달라고 손짓을 했다. 그리곤 따라서 땡초를 춍춍 넣더라. 그런데 그게  돼지국밥이 아니라 땡초 국밥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이 넣더라. 걱정이 될 정도로 말이다.
역시나 국물을 퍼먹은 커플은  매우 괴로워했다.
땡초가 약 다섯개가 들어갔으니 그게 안 매울수가 없겠지.  보고 있자니 갑자기 너무 미안해져서는 아 내가 번역기라도 돌려가며 땡초는 얼마만큼 넣어야 한다라는 걸 알려줄걸 그랬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고 다행히 센스 넘치는 이모님께서 다정하게 국물을 리필해 주시더라.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내가 깍두기를 국밥에 올리면 뒷테이블에서 따라서 올려먹고, 부추를 얹으면 따라서 부추를 얹는 모습에 나는 부담스러워서 코로 밥이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는 지경에 이르렀다.
등지고 있어서 상황을 알 수없는 숙취해소 중인 그녀는 속없이 "김수정, 왜이렇게 못 먹어?" 하는 말에 조용히 열심히 퍼먹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마치 실시간으로  먹는 걸 보여줘야만 하는 방송을 찍고 있는 것만 같아서 여간 불편했다.

뒷테이블의 중국인 커플은 우리가 나가는 시점에서도 맛있게 식사를 했다. 다행히 나의 레시피가 괜찮았나 보다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다만 국물은 너무 매우셨겠죠 하는 마음과 함께, 그들의 위장이 탈 나지 않기를 염원했다.

 나가는 순간에 눈이 살짝 마주쳤는데 나만 아는 눈인사를 했다. 그리곤 나는 아직 술이 덜 깨서 토 할 것 같다는 그녀를 보필하여 모시고  시원한 커피를 사러 또 다른 길을 나섰다.
마치 순례자의 그것처럼, 그녀 육체가 고통의 번뇌를 벗어 던 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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