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오랜 친구 J 가 있다 그 J와의 첫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게 살아있다 17살, 기숙사 화장실 앞에서 마주쳤던 순간이다.
그게 J를 만났던 첫 기억인데, 어째서인지 뇌리에 박혔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그냥 느낌이 너무 좋았으니까. 난 전생의 이야기를 꽤나 재밌어하는데, 최소 부부 이상이지 않았을까 하고 연상을 한다면, 나는 J를 꼽겠다.
하여튼, 그런 나의 J는 염세적인데, 본인도 인정하는, 못 말릴 염세주의자이다.
늘 입버릇처럼 내게 속삭여 주는 일은 "수정아, 인간은 누구나 싫은 부분을 가지고 있어 다만 그게 얼마나 발현되느냐의 일인 거지. 그래서 난 인간은 다 별로야." "인간은 본디 악하게 태어나는 법이지, 그래서 보통의 어린것들은 반인반수라고 볼 수 있지. 사회화를 통해 비로소 인간이 되는 거라고 본다." 하며 현실은 삶아빠진 닭가슴살 만큼이나 퍽퍽한 것이라며 되뇌어 준다.
사실보다는 가슴의 설렘이 더 중요한 지표가 되는 이상주의자에 낭만을 좋아하는 나와 지독하게도 날카롭고 현실적인 사실에 입각한 현상만을 인정하는 J는 닮은 듯 닮지 않은 듯한 언어를 구사하며 서로를 맞춰 나간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오늘의 하루에서도 J는 내 카톡의 상단 제일 첫 번째를 차지하고서는 나의 하루 속에서 머무른다.
17살의 기숙사 화장실 앞에서 왜 나는 이 J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는지 정말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너처럼 조건 없이 날 좋아하는 녀석도 없을 거야. 너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어. 이 불나방 같은 녀석아.' 하며 혀를 끌끌 찬다. 와중에는 내가 밥은 먹었는지, 제대로 잠은 자는지, 쉬고는 있는 건지, 속상하게 하는 인물은 없는지 하여튼 등등 종류별로 요모조모 잘도.
그래서, 나는 이 J가 참 좋다 마구잡이 상처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헤실거리며 서있는 나에게 "다 불태웠냐? 다음엔 어디로 날아갈래" 하면서 덤덤하게 위로해주거든.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어쩜이나, 한결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