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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YSTAL KIM Oct 03. 2020

17살의 그 때에나 지금이나

우리 집에 심바를 위한 드라이기를 보냈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추석 선물이라고 하는데, 그건 나를 위한 선물이기도 했지만 심바를 생각해서 고심했을 너를 상상하니, 나는 웃음이 일었다. 예정대로라면 우리는 수요일날 얼굴을 보았을 테지만, 장을 보고 차례상 음식을 만들고 또 코로나로 연일 핸드폰이 울려댄다는 이유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너와 이렇게 오래도록 얼굴을 보지 못한건 제법 낯설기도 하다.

첫 직장을 가진 너를 보며 옛날의 나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회식자리의 어려움,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들 속에서 모든게 처음인 내가 너무 보잘것 없이 느껴지는 상태가 어떤 마음을 만들어내는지 잘 알아서, 늦은밤 드디어 회식을 마무리했다는 연락이 닿을때면 걱정과 염려 그리고 안타까움이 범벅이되곤 한다. 좋지 않은 어른이 네 주변을 서성거리지 않기를. 오늘은 야근하지 않기를. 그렇게 몇 밤은 소원해보기도 했다. 내가 첫 직장을 가지고 적잖이 맘 고생을 할 때에 네가 할 수 있는 모진 욕이란 욕설은 다 끌어다 함께 욕해주었던 일이며, 오래도록 다니던 직장을 퇴사할 무렵의 휴일없는 나를 염려하던 너의 마음을 내가 소원하며 되돌려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어리고 어려운 시절을, 너로 인해서 잘 버텨 낼 수 있었으니까. 시간이 흐른 지금의 내가 널 버티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니까.

언젠가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나 네가 걸어가고 있는 길 위를 보며 우리는 서로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내 일기장의 많은 이야기를 담당하고 있고, 내가 연락하는 지인들의 팔할을 담당하고 있는 너.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감정이 어렵게 만들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게 만드는 너.
너의 하루하루가 힘들지 않고, 무탈하고 무던하기를, 난 항상 바래.
17살의 그 때에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이 고마운 너라서 나는 제법 많이 행복하곤 해. 나의 일상에 네가 존재함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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