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자동차 볼보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일이 있었다. 갑자기 왜 1위에 올랐을까? 이유를 찾아보니 박지윤 아나운서 가족 차가 2.5톤 트럭과 정면충돌하는 교통사고가 있었다. 박 아나운서 가족이 탑승했던 차는 볼보 XC90으로,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스웨덴에서도 자주 본 적 있는 차량이다.
사고 당시 찍힌 모습을 보니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차가 반파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차량 충돌 후 박 아나운서 가족은 자력으로 차에서 탈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미한 부상을 입긴 했지만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볼보가 안전의 대명사로 알려지긴 했지만 이 사고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차"라는 존재를 다시 입증한 셈이다. 검색어 1위에 오를 만한 일이었다.
내가 사는 스웨덴에서 남편이 곧 운전면허를 딴다. 걸으면 건강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며 차 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 때문에, 또 내 등쌀에 못 이겨서 운전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 부지런히 학원을 다니고 있다. 마지막 주행 시험만 앞두고 있으니, 나는 남편에게 슬슬 차를 알아보자고 말했다. 그러자 자기는 이미 정했단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연히 볼보라는 거다.
7년을 함께 살면서 남편이 차에 대해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트레킹, 마라톤과 같은 활동을 좋아해서인지 차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볼보차 보는 재미에 빠져 산다. XC40로 할지 XC60로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아주 낯설 지경이다.
남편이 볼보를 타고 싶은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스웨덴 사람이라면 모두가 안단다. 볼보 차를 타면 크게 다치지 않을 거라며 볼보가 내세운 '제로비전'에 무한한 신뢰를 보였다. 그래도 아주 큰 사고가 나면 죽을 수도 있지 않냐 되물어도 끄떡없다. 볼보라서 믿을 수 있고 볼보라서 그냥 안전하단다. 남편은 볼보를 타는 것이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남편만 그럴까? 아니다. 스웨덴 사람들이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아는 표현이 있다. 바로 3V(Villa, Vovve, Volvo)이다. 그들이 살면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인데, 이 세 가지를 가지게 된다면 '성공한 삶'이라고 여긴다.
처음 이 말을 듣고서 '뭐지? 이 나라 사람들은 야망도 없나? 꿈 한 번 참 소박하네' 생각했다. 그런데 스웨덴에 살다 보니 이보다 더 스웨덴을 잘 표현한 말이 어디 있겠나 싶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성공이란 대단하고 위대한 게 아니다. 그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화려한 삶을 꿈꾸지 않는다. 그저 집이 있고, 정원에서 뛰어노는 강아지가 있고, 그 개를 실을 수 있는 큰 볼보가 있으면 인생의 목표를 이룬 것이다.
나는 스웨덴 사람들이 무언가를 뽐내거나 자랑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나라답게 소소하고 여유 있는 삶에서 행복을 느낀다. 내 삶의 여유가 중요하고 현실적인 삶을 목표로 삼는다. 그 행복의 기준에 볼보는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이처럼 스웨덴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보를 가지는 꿈이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견고하고 안전을 지향하는 합리적인 자동차. 휴머니즘과 생명에 가치를 두는 스웨덴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볼보를 볼 때면 마치 스웨덴 사람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볼보가 안전의 대명사가 되기까지, 볼보는 회사 차원에서 수십 년간 안전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그 노력은 인류 전체를 보호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3 점식 안전벨트는 볼보의 엔지니어였던 닐슨 볼린이 최초로 만들었다.
이 벨트는 약 60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획기적인 안전 발명품으로 꼽힌다. 또 전방 에어백, 사이드 에어백, 커튼형 에어백, 차일드 시트 뒤보기도 볼보에서 개발한 것이다. 독점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이 모든 기술에 특허를 내지 않았다.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했는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모두가 안전하길 바라는 볼보의 가치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볼보는 홈페이지에 지난 70년간 안전에 대해 연구한 자료를 모두 공개해 놓았다. 이 정도면 '인류 안전 지키미상'을 줘야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볼보가 이토록 안전을 중요시 여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볼보가 태어난 곳, 바로 스웨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스웨덴에서 안전은 기본 중에서도 아주 기본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무슨 특별한 안전DNA가 장착된 것처럼 정말 안전을 중요시 여긴다. 특히 볼보의VolvoSafetyVision–ZeroAccidents(사망자, 중상자 0 프로젝트)가 있기 전에 스웨덴 정부에서 내세운 비전 제로(VisionZero)가 존재했다. 1997년도에 스웨덴 정부는 도로 안전을 위해 비전 제로라는 프로젝트를 세웠다. 교통 사고로 인해 사람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지 않는 게 목표이다. 인간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용납하지 말자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그러나 사람이라서 완벽할 수가 없지 않은가. 완벽한 인간을 창조하자는 말 자체가 불가능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사람의 생명이나 건강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스웨덴은 도로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정면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중앙 장벽을 더 많이 설치하고 일반 교차로들을 회전 교차로로 교체했다. 특히 스웨덴 정부는 더욱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자동차 산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사망자 수치를 전보다 반으로 줄일 수 있었지만 제로에 근접한 수치는 아니었다. 그래서 정부의 비전 제로와 함께 현재 볼보도 '제로비전'을 내세우고 도로 위 안전 강화에 힘쓰고 있다. 국가와 기업이 뜻을 함께해 스웨덴이 더 안전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실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안전에 강화를 두다 보니 스웨덴에서는 운전대 잡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특히 운전면허 시험은 한 번에 합격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모든 게 안전과 연결되어 있어 더욱이 그렇다.
내가 운전을 하지 않더라도 차가 안전에 신경 쓴다는 걸 저절로 느낄 정도다. 실제로 스웨덴에서 보행자로서 위협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횡단보도 근처로 가는 나를 보고서 멀리서부터 차는 서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길을 건널 때까지 기다려준다.
스웨덴 사람들의 공통적인 습관으로 꼽을 수 있는 것도 안전벨트다. 그들은 차만 타면 무조건 안전벨트를 매는 습관이 있다. 한번은 한국 뒷좌석에서 안전벨트를 매는 남편을 택시 기사님이 신기하게 바라볼 때가 있었다. '불편하게 왜 뒤에 타면서 안전벨트를 매지?'라는 눈빛으로 말이다.
그런데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어떻게 차를 탔는데 안전벨트를 안 맬 수 있지?"라는 반응이었다. 나도 처음엔 불편했지만 지금은 습관처럼 차만 타면 무조건 안전벨트를 멘다.
아동 카시트도 빼놓을 수가 없다. 스웨덴에선 카시트 없이 아이를 태우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택시를 탈 때도 마찬가지다. 택시를 부를 때 카시트 여부를 확인하고 아이 시트에 해당되는 추가요금 약 50~100kr(한화 약 8000~14000원)를 낸다. 처음에 가격을 듣고 너무 비싸 화가 날 지경이었지만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안전벨트를 만든 것도 볼보가 처음이지만 뒷좌석 안전벨트 의무, 카시트 뒤보기를 시행한 것도 스웨덴이 최초이다. 그리고 스웨덴 사람들은 차를 타기 무섭게 어디서든 몇 분을 타든 안전벨트를 맨다. 모두가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걸 알고 그 의무를 다한다. 아무튼 안전을 생각하는 건 스웨덴이나 볼보가 참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볼보는 명실상부 이케아IKEA와 함께 스웨덴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중국의 지리에서 '볼보자동차'를 인수해 이제는 중국 기업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자본만 중국일 뿐 기술과 디자인을 비롯한 자동차 개발은 여전히 스웨덴에서 이루어진다.
내가 살고 있는 예테보리Göteborg(스웨덴 제2의도시)는 볼보의 고향으로, 볼보 그룹과 볼보 자동차의 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일화로 서울과 부산처럼 지역 싸움(?)이 일어날 때 예테보리 사람은 수도 스톡홀름 사람에게 "우리는 볼보가 있어" 말한기도 한단다. 그만큼 예테보리 사람에게 볼보는 지역의 상징이자 자부심으로 여겨지는 게 아닐까 싶다.
스웨덴 정부가 투자를 아끼지 않는 분야가 있다면 환경, 재생에너지와 같은 지속가능성 개발이다. 볼보에 다니는 지인도 "볼보가 추구하는 가치는 안전뿐만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볼보가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자동차와 에너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정부도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볼보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차를 만들고 있다며 드라이브 미(Driveme)라는 프로젝트 영상을 나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예테보리시, 스웨덴 정부와 함께 하는 자율주행(AD) 자동차 실험 드라이브 미는 예테보리를 친환경 미래혁신도시로 만드는 계획이다. 여기서 볼보 자동차의 자율주행 기술은 환경 오염을 줄이고 혼잡한 도로에서 벗어나 운전자들이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동차, 주차 공간 걱정 없는 세상, 혼잡하지 않은 도로가 실현될 수 있도록 스웨덴 정부를 비롯해 스웨덴 도로교통공사, 예테보리시까지 지원에 나선 거다. 국가와 기업, 지자체가 비전을 함께하는 이 계획으로 예테보리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이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 기대가 된다.
스웨덴에 살면서 볼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다면 단순히 자동차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스웨덴에서 누군가는 볼보를 갖고 싶은 꿈이 있고 누군가는 그 차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한 고장의 상징이자 스웨덴의 미래 산업을 이끌고 있는 볼보가 스웨덴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모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 대부분 허탈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스웨덴 사람들의 삶에 늘 볼보가 함께 했다. 스웨덴 사람들의 많은 추억과 안전을 책임져준 볼보는 그들에게 친근하고 익숙한 브랜드 그 이상이다. 오랜 시간 사람을 먼저 생각해 온 볼보의 가치관 역시 스웨덴 사람들에게 '찐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우리 가족은 볼보의 어떤 차를 타게 될까? 뭘 고르든 안심이 된다. 볼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