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럴줄은 몰랐는데,
수능이 끝난 19살 겨울부터 지금까지 32살인 지금까지 끊임없이 '일'을 했다. 학생 시절에는 온갖 아르바이트와 인턴, 임시 계약직을 오가며 사회를 경험했다. 학생 신분을 벗어던짐과 동시에 2호선에 몸을 맡긴 회사원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이직을 거듭하고 사업까지 경험하며 자타공인 일복이 타고난 자로 살아왔다.
쉰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조금 쉬려는 찰나가 생기면 작건 크건 '일'이란 기회들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 기회들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조금은 자부심 있는 지금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 내가 임신과 출산이라는 큰 벽 앞에 속수무책으로 카운터 펀치를 얻어맞는다.
임신을 처음 알게 된 그날, 내가 울면서 내뱉은 말의 90%는 '나 일하고 싶단 말이야'였다. 뱃속의 아기와 함께하는 날이 늘어감에 따라 내 마음은 모성애와 책임감으로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이따금씩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주워 담기 어려운 날도 찾아왔다.
가령 오늘 같은 날 말이다.
내게 쏟아지는 기회를 놓치는 기분, 차마 욕심 낼 수 없음에 생겨난 무기력함이 나를 채워내는 며칠을 보내고 있다. 가끔씩 찾아오던 우울감과는 조금 다르게 조금 오래가는 지독한 놈이 찾아왔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무기력감의 원인이 지금 내 인생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부부는 꿈도 야망도 그 크기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서로의 꿈을 이해를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의 뇌가 동기화되어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각자 쌓아 올린 커리어는 상이하게 다르다는 것이 더 신기한 포인트였다. 남편은 대기업 공채 출신으로 나름 남부러울 것 없는 연봉과 탄탄한 회사에서 전공을 살린 커리어를 쌓고 있었고, 나는 전공과 전혀 다른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시작해 지금의 자리까지 수 차례 이직을 반복하며 다양한 필드의 커리어를 쌓아 올렸다.
대학시절까지 포함한다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이 더 어려울지 모르는 각자의 10년을 보낸 우리가 이렇게나 잘 맞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우리의 통일된 목표는 '사업', '내 일'이었다. 물론 함께하는 사업이 아닌 각자의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정확한 목표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각자의 원대한 목표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꿈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며 부부이자 인생 파트너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뱃속의 아기가 찾아왔고, 나의 인생 플랜은 무너졌다. 그리고 다시 세워졌다. '아기를 직접 키워낸다.', '가장 사랑이 필요한 3살까지는 부모의 손으로 키운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아직 아기를 낳은 것도 아닌데, 목표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이 마음은 참으로 가냘픈 갈대처럼 사방을 휘휘 나뒹구며 흔들리며 헝클어졌다. 아직, 뽑히진 않았으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아기가 생기기 전부터 나는 남편에게 줄곳 이직에 대한 '뽐뿌'를 불어넣었다.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남편에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양한 경험을 심어주고 싶었다. 대기업에서는 절대로 경험하지 못할 것들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남편의 이직 욕구는 여러 번의 진화를 걸쳐 스타트업까지 닿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커리어는 스타트업에 지원하긴엔 너무 접점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중 지인을 통해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남편은 곱절로 그러했을 것이다.
남편의 직무와 다른 포지션의 채용이었기 때문에, 핸디캡을 뛰어넘게 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가 필요했다. 그 무기 중 하나로 나는 내 본업의 장기를 살려 남편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고, 남편은 기업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기업의 사업모델로 토론을 했고, 내가 갖고 있는 인사이트를 남편에게 쏟아내기도 했다. 남편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나는 오랜만에 희열을 느꼈고, 다양한 인사이트를 뽐내며 스스로 존재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 과정이 참 즐거웠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였고, 나는 그 안에서 충분한 역할을 하는 멋진 아내같이 느껴졌다.
그 결과, 남편은 전혀 다른 직무로의 이직이라는 티켓을 거머쥐게 되었고, 로켓에 올라탔다.
의아하게도 나는 갑작스러운 우울감에 휩싸였다. 너무 기뻤지만 마음 한 구석이 잿빛으로 물드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함께 올라와있던 무대의 스포트라이트가 이젠 남편을 비추고 있었고, 나는 컴컴한 무대 아래로 터벅터벅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돌아가는 조직을 경험하며 기회의 홍수 속에서 성장을 거듭하겠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나에게 약 100일 남은 임신 기간이 지나면 육아의 길로, 맘 카페의 길이 펼쳐지겠지라는 생각이 어느 때보다 어둡게 다가왔다.
'우리는 같은 꿈을 품고 다른 길을 걷겠구나, 내 기회가 오는 길을 잃지 않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마음을 휘젓는다.
나는 요즘 임신이라는 이벤트를 겪으며 확장된 시야에 놀라워한다. 임신 전에는 보이지 않던 수많은 기회들을 마주하고, 기대한다. 동시에 그 기회를 '언제'잡을 수 있을지, 도태되어 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한다.
남자에게 처와 자식이란 "책임감"의 대명사인데,
여자에게 남편과 자식이란 그렇지 못할까?
일하는 여자에게 '아이'가 있음은, '일'에 있어 온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2021년을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렇다.
나는 남편을 잘 만나 호위 호식하는 '여자'로 '아내'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여전히, 앞으로도 '나'로 살고 싶다. 내 꿈을 펼치며 내가 이 세상에 와 있노라고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말이다.
이렇게 못난 마음에 물들어 버린 오늘 같은 날은 나 스스로가 참 밉다. 내가 이럴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