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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Feb 22. 2023

그냥 나답게 살고 싶은 거야

우리의 삶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하기엔 우리 모두는 너무 아름다운 존재이다

2006년에 ‘천하장사 마돈나’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여자가 되고 싶은 고등학교 1학년인 오동구 (류덕환 배우)가 성전환 수술비를 벌기 위해 씨름부에 가입하고 상금이 있는 씨름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너무 사랑스러운 성장 영화이고 모든 좋은 작품이 그렇듯이 울면서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내가 아직 또렷이 기억하는 동구의 대사가 있다.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거야"       


나는 극장에서 이 장면을 보고 온 마음이 다 흔들렸고 눈물이 핑 돌았다. 오동구는 무엇이 되는 건 중요하지 않아, 나는 그냥 나답게 살고 싶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동구가 내 속마음을 외치는 것 같았다. 당시의 나는 대학 졸업 후에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 사회적 요구를 앞두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지쳐있었다. 입사하고 싶은 회사 리스트, 그리고 그곳에 입사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을 빼곡하게 정리한 친구나 선배들의 노트를 봐도 도저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너는 이게 되고 싶은 거야? 우린 졸업하면 뭐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취업에 매우 진지한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함부로 던질 순 없었다.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나는 장래 희망을 묻는 말에 잘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이전에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이 있었다. 꾸준히혼자 하던 고민은 보통 ‘어떻게’와 ‘왜’이다. '무엇'은 그 다음 문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경제적 독립 이외에 내가 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등등..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갖게 된다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분명해질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계속 이어 나갈 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기에 가질 수 있는 직업도 더 폭넓어지겠다고 생각했다. 혹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기준들은 찾아서 내 삶의 태도에 반영이 되고 그러한 태도를 갖게 된다면 무슨 일을 하든 밥벌이만 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던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동구처럼 나도 뭐가 되는 것보다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어느 정도의 답을 스스로 찾았을 때쯤 나도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하게 되었다. 나를 꽤 중심에 두고 취업 준비를 했지만, 철저히 대학 시절 누가 더 많은 성과를 만들어내고 소유했는지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시스템 앞에 나는 여전히 무력감을 느꼈다. 한국 특유의 공채 시스템 안에서는 동일한 평가 기준을 반영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입시부터 취업까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하나이고 평가 기준도 동일한 사회에서 나는 영원한 제로섬 게임에 갇힌 것 같았다. 정해진 제로섬 안에서 내 마음은 항상 초조했고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이 프레임 안에 갇혀 살아야 할까?



뉴욕은 너무나 다양한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이고 이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끊임없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수밖에 없다. 한국과 비교하면 뉴욕에는 주변에 나와 다른 사람이 상상 초월 많아서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 훨씬 잘 보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혹은 정반대로 너무나 다양한 종류의 뉴요커들을 만나면서 그 만남을 통해 자신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새로운 문화권에서 이방인으로 살게 되면서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 삶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것 같았다. 대신 내가 누구인지,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나의 문화가 그들과 무엇이 다른지를 더 촘촘히 고민하고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는 것이 더 우선시되었다.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하고 백인 우월주의가 문화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자기 색깔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 백인 우월주의에 나도 모르게 휩쓸리게 된다. 이 사회의 주류는 여전히 백인 남성 문화이고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성공 하기 위해 그 문화에 휩쓸리기 쉽다. 미국에서는 보통 이런 과정을 whitewashing이라고 부른다. 유색 인종들이 주류 사회에 입성하기 위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숨기고 백인 문화를 흡수하는 것이다. 내가 만난 많은 유색인종 뉴요커들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 노력했다. 아시안 친구들은 우리가 가진 공동체주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을 미국 업무 문화에 어떻게 녹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애썼다. 히스패닉과 흑인 친구들로부터는 어떤 순간에도 여유를 가지고 유머를 날릴 수 있는 예술가의 마음을 배웠다. LGTBQ 친구들은 터부시되는 선을 과감히 넘어버리는 용기를 나에게 가르쳐 줬고,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살 때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온전한 자신으로 아름답게 사는 인간을 보게 되면 나는 그 삶을 응원해 줄 수밖에 없고 그들이 그 길을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도와주고 싶다.


사이다 같은 작지만, 큰 에피소드가 있다. 회사에서 협업 차원으로 다른 팀 미팅을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미팅 참여자 중 가장 직급이 높은 40대 초반의 남자 디렉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전반적인 배경 설명을 해주는데 주니어 여자 직원들에게 너무 기본적인 설명을 하면서 마치 아직 너넨 이것도 모를 테니깐 하는 태도. 그리고 중간급 매니저 여자 직원이 하는 말을 듣고 똑같은 말을 마치 자기가 처음 하는 것처럼 반복하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참가하는 다른 팀 미팅이었기 때문에 속으로 이 팀은 분위기가 왜 이런가 하고 혼자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팅이 끝나고 중간급 매니저 여자 직원 2명이 그 남자 팀장에게 방금 미팅에서 계속 mansplaining 한 거 알고 있냐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정확히 이런 상황을 mansplaining이라고 디렉터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그랬더니 그 남자 팀장은 “오, 내가 그랬었나?” 하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세상에나 역시 이런 것이 가능한 곳도 있구나 싶었다. 물론 그 남자 팀장이 진심으로 반성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할 말은 하고야 마는 그 언니 2명을 보면서 (실제론 물론 다들 동생! 하지만 멋있으면 다 언니!) 내가 용기를 내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곳이 어느 방향인지 알게 되었다. 속으로만 그 언니들에게 손뼉 치는 것이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들의 데스크로 가서 너네 진짜 진짜 멋있었어. 너 말이 100% 다 맞았다고 주변 사람 다 들리게 인사를 하고 왔다.




구체적 성과에 집중하다 보면 정해진 파이 안에서 서로에게 부대끼며 우리의 세상이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더 소유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존중하고 서로 지지할 때 비로소 제로섬 게임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작은 파이에서 벗어나 무한대로 넓어진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내 마음을 정한다. 그 무엇보다 지금의 너라서 고마워 (Thanks for being you). 너의 목소리와 색깔을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노력해줘서 고맙다고. 동구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뭐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어. 그냥 나답게 살고 싶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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