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창작자가 되고 싶은가
Q. 내 이름 석자가 들어간 책이 나왔는데 왜 기쁘지 않을까?
A. 창작 관련 일을 하지 않았을 때 ─ 다른 사람이 만든 작업물을 검토하고 심의하는 사무직 업에 종사할 때 ─ 늘 내 안엔 목마름이 있었다. 창의성은 메말라 가는 것 같았고 반복되는 사무 일 처리에 진저리가 났었다. 특히 내 이름 하나 노출되지 않는데 고생과 책임은 모두 떠맡아야 하는 일에 대한 부담감과 싫증은 날로 심해져 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은 이것이 아니야. 기회가 온다면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 진짜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말테야’라고 되뇌곤 했다. 그 일을 하게 되면 적어도 내 이름으로 만든 작업물이라는 뿌듯함과 보람 그리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싫증보다는 재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았다.
3년 반 정도의 고민과 준비 끝에 나는 여태껏 해 오던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로 전직을 하게 되었고, 편집 디자이너로 일한 지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이름을 내건 작업물을 선보이게 되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지식그림책 전집 작업이 그것인데 10권 모두 내가 도맡아 디자인을 했고 그중 1권은 그림작가로도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책 판권에 디자이너 아무개, 그림 작가 프로필에도 내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작업기간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막상 책이 출간되었을 때의 기쁨은 내가 생각했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작업하는 2년 동안의 시간 내내 ‘언제 끝나나, 빨리 완성했으면 좋겠다’ 고대해 왔는데 정작 책이 완성되고 나니 그 기대감과 희열은 온대 간대 사라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원하는 것만 얻는다.’는 문장을 믿는 편이다. 어떤 일을 하고 나면 그 과정에는 몰랐을지라도 끝나고 나면 내가 진정 원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하는 것‘만’이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좀 씁쓸할 수 있는 부분인데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30년가량의 시간을 살아오며 터득한 것 중 하나이다. 때론 내가 이렇게 속물이었나? 싶을 때도 있고 고작 이런 걸 원했던 것인가? 하며 허무했던 적도 있었다. 이번의 책 출간도 이 중 하나이지 싶어 진짜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며 그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질문 하나. 기독 출판물이 아니어서일까?
디자인 직무로의 전환과 출판사 취업을 준비할 때 내 뜻은 기독 출판사에 들어가 일하는 것이었다. 크리스천으로서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에 기독 출판사로의 취업은 더할 나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TO가 나지 않았고 지원서를 넣은 몇 군데에서도 낙방 소식을 듣게 되면서 내 꿈은 잠시 접어둬야 했다. 책에는 저자의 생각이 담기고 사상이 깃들 수밖에 없다. 내 가치관과 맞지 않은 책을 작업하는 것만큼 곤욕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비단 디자이너뿐 아니라 편집자, 마케터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과연 기독 출판물이었다면 그 의미와 욕구가 모두 충족되었을까? 오히려 안이한 마음으로 일을 대하지는 않았을까? 마치 매주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신실한 삶을 산다고 착각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기독교 관련 일을 하는 것만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복음이 없는 자리에서 내 삶과 태도를 통해 복음이 드러나게 하는 일이 더 의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질문 둘. 글과 그림 모두 내가 한 순수 창작물이면 달라졌을까?
순수 창작만큼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완전히 직면해야 하는 일도 드물 것이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부터 어떻게 표현하고 전할 것인가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내 목소리가 들어가야 하며 그 작업에 대한 책임 역시 오롯이 내가 되는 일! 순수 창작은 내 작품에 대한 온전한 책임이 있으며 그 가치 또한 유일무이하다는 점에서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다. 디자인 작업이든 그림 작업이든 내가 원하는 방향,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의욕이 꺾이고 에너지가 고갈되는 경우가 많은데 설령 그것이 더 좋아지는 방향일지라도 반복되는 클라이언트의 입맛에 맞춘 작업을 하는 것은 창작자로서 참 재미없고 때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고맙게도 이번 작업은 내 작업에 대한 클라이언트의 평가 및 관계자들의 만족도가 거의 일치했고 덕분에 더 열정을 갖고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아직 오롯한 순수 창작물을 내 본 적이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 기획과 방향대로 작업한 오롯한 창작물이 주는 기쁨은 다를 것이다’에 50%를 거는 바이다.
질문 셋. 나는 정말 내 이름 석자가 들어간 작업물(결과물)을 원했던 것일까?
내가 이 전집 작업을 하면서 가장 설레고 기뻤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미팅을 하던 순간과 작업에 대한 인정 및 태도에 대한 칭찬을 들었던 순간들이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주 하루는 이 작업을 위한 미팅을 했다. 기획자, 편집자, 디자이너가 한 데 모여 작업방향을 논의하고 작업물을 발전시켜 나갔다. 1년이 52주니까 2년이면 100번이 넘는 회의를 한 셈인데 회의 때마다 그 회의가 기다려지고 재밌게 느껴졌다. 물론 계속되는 수정과 번복에 때론 화도 나고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건 아주 일부일 뿐, 전체적인 기억은 설렘과 기쁨이다.
매주 새롭게 나오는 의견들과 그로 인해 내용이 탄탄해지고 작업의 퀄리티가 올라갈 때 희열이 있었다. 10권의 책을 그것도 1년 차 디자이너가 주축이 되어 혼자 해낸다는 것이 흔하지 않은 일이었고 보수 대비 각 권 모두 단행본 수준의 퀄리티로 뽑아냈다는 점이 함께 일하는 출판사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었을 것이다. 아마 해당 분야의 새내기로서 시장의 기준과 흐름에 눈이 밝지 못해(실리를 따지지 않은 무모함으로) 무조건 최선을 다하고 본다는 마인드가 한몫을 했을 것이다. “어떤 씨는 매 회의 때마다 한 건 이상은 하네요.”, “감이 좋네요, 이런 감각은 어떻게 기른 거예요?”, “힘들 텐데 고생 많았어요.” 등 칭찬과 격려에 힘이 나고 신이 났다. 어쩌면 나는 작업의 결과물 자체보다는 그 ‘과정’에서 이미 누릴 기쁨을 다 누렸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을 맺자면 나는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어려운 일을 해내는 그 ‘경험’ 자체에 많은 의미를 두는 사람인 것 같다. 그 경험 가운데 성실한 태도를 인정받고 결과물 또한 작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디벨럽 시켜 나가는 그 전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작업기간이 늘어지는 내내 과연 언제나 완성이 될까 막막하고 그 결과만을 기다리는 듯했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나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타입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작업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음도 살짝 고백한다. 이에 관해서는 더 이야기가 있는데 나중을 기약하기로 하고 이쯤에서 자문자답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내 이름을 건 디자인 작업, 더 정확히는 그 경험을 원했고 그 ‘과정’이라는 열매를 얻었다. 이 경험은 앞으로의 다른 작업에 주는 의미가 깊다. 언제 완성되느냐 보다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데 좀 더 의의를 둘 것이다. 좋은 기억 위주로 나열했지만 그 2년 동안엔 정말 무수한 일들과 감정들이 오고 갔다. 일 후반부에 가서는 모두가 지쳐 온갖 불평불만과 극도의 예민함에 상처되는 말들을 쏟아 내기도 했고 말이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그 과정들 모두가 참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아픈 만큼 모두가 성장했으리라 믿는다. 앞으로의 작업에서는 가능하면 좀 더 부드러우면 좋겠고, 서로를 세워주고 쓰다듬는 말과 태도를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엄청난 대작을 만들어 선보이겠다는 열정만큼 그보다 더 소중한 그 과정들에 온전히 젖어 들어 그 순간을 감사하며 작업을 이어가는 작업자가 되고 싶다.
*작년(23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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