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기사로 발제하지 못할 것 같다. 기사를 쓸 땜 감정은 배제해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으므로. 그래서 브런치스토리 매거진에 풀어놓는, 발레 무대 밖 나쁜 남자의 대표주자, 밀피예 이야기.
영화 '블랙 스완' 마지막 장면. 출처 네이버, 저작권 해당 영화사
"발레 속 남자들은 거의 다, 나쁜 남자죠?"
2024년 3월 10일, 감사한 기회로 수강했던 세종발레디플로마 과정. 세종대 용덕관 2층 발레실에서 진행된 마스터클래스의 마지막, 무용수이자 선생님들과의 Q&A 시간은 진행자 선생님의 이 질문으로 시작됐다.
격하게 공감한 터라, "맞아요, 그리고 바보 같아요"라고 큰 소리로 답해버리고 말았다. 부끄럽게.
어쩌겠나. 진짜 그런 걸. '백조의 호수' 지그프리트 왕자는 백조와 흑조를 헷갈려 오데뜨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렇지 않은 엔딩도 물론 많다, 아래 링크 참조), '지젤'의 알브레히트는 정혼자가 있으면서 순수한 시골 소녀 지젤을 유혹해 죽게 만든다.
이 링크도 참고되실 듯. https://m.blog.naver.com/writer_ballet_home/223377899773
영화 '블랙 스완' 속 발레 클래스. 출처 네이버, 저작권 해당 영화사
하지만, 나쁜 남자는 무대 밖에도 있으니, 밀피예.
그를 비판하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객관적으로 그의 이력을 살펴보자.
1977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나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성장.
13살부터 프랑스 리옹 발레학교에 다님. 15살에 미국 발레의 아버지, 조지 발란신이 설립한 발레학교 SAB(the School of American Ballet) 수학. 이후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받고 공부를 다시 했으나 다시 발레로 돌아옴. 당대의 안무가 제롬 로빈스가 멘토를 자처함. SAB에서 본격 교육 시작.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 입상.
뉴욕시티발레단(NYCB) 입단, 1995~2011년까지 활동. 최고 등급인 프린시펄까지 승급.
이후 안무에 눈을 뜨고 2011년 L.A. 댄스 프로젝트를 시작. 2010년 영화 '블랙 스완'에서 나탈리 포트먼에게 발레를 지도하면서 동시에 포트먼의 극 중 '백조의 호수'의 상대역인 지그프리트 왕자 역할로 출연.
2014~2016년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예술감독으로 활동. 현대발레 등을 적극 도입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평가와 함께, 오락가락하는 정책기조로 혼란을 야기했다는, 특히 단원들 사이의 불만이 자주 제기됐음. (참고로, 그의 석연찮은 사임 이후, 전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인 에뚜왈 출신인 오렐리 뒤퐁이 예술감독을 맡았고, 뒤퐁 감독은 발레단 최초의 아시아인 무용수로 한국 박세은 발레리나를 전격 발탁함)
밀피예와 나탈리 포트먼은 영화를 촬영하며 불같은 사랑에 빠진 모양이다. 문제는 당시 밀피예에겐 연인이 있었다는 것. 현재에도 왕성히 활동하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 이자벨라 보일스턴이 그 주인공이다. 맞다, 걸크러쉬 발레리나.
밀피예의 매력이 대체 뭔지 잘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나탈리 포트먼은 당시 그에게 흠뻑 빠졌다. 밀피예 역시 마찬가지. '블랙 스완'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발레단 예술감독 역할을 맡은 배우 뱅상 카셀이 밀피예에게 "Do you wanna fOOO her?"라고 외치는 장면. 그 정도로 매력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
다시 돌아와서, 여하튼 둘은 크랭크 업 이후 결혼식을 올렸고, 아들 하나 딸 하나도 낳았다. 알콩달콩 잘 사는 듯했으나, 2023년 밀피예가 혼외 관계를 들킨다.
별거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나왔고, 포트먼 측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 후 약 1년. 포트먼은 관련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친구들은 익명을 전제로 피플(People) 매거진에 이렇게 얘기했다.
"나탈리에겐 고통스러운 1년이었어요. 밀피예를 용서하려고 나탈리가 정말 많이 노력했답니다. 하지만 결국, 갈라서기로 결정했어요. 나탈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아이들이 상황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나마 가장 부드러운 방식의 결별을 하는 거였습니다."
잘 참았어요 나탈리. 얼마나 많은 밤을 베갯잇을 눈물로 적셨을까. 나까지 마음이 아프다.
노파심에 사족 하나.
사실, 쓰면서 조심스럽다. 모든 사랑의 관계는 당사자들이 아니면 내막을 정확히 모른다. 아니, 당사자들도 잘 모를 수 있는 게 사랑 이야기 아닐까. 각자가 각자에게 편한 방식으로 각자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선별적으로 기억하는 게 사람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피예 이야기는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 역시 불륜을 했던 것은 인정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불륜남 이태오는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궤변 명대사를 남기긴 했지만.
드라마 '부부의 세계'. 출처 및 저작권 JTBC
사랑에 빠지는 건 죄일 수 있다. 이 사람과만 사랑하겠다고 맹세를 해놓고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경우엔 말이다. 그래서 결혼은 미친 짓이며 어렵고도 소중한 것이다. 잘 지켰어야지.
이자벨라 보일스턴의 마음을 찢어놓고, 이젠 나탈리 포트먼의 가슴까지 짓밟았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게 사랑인 듯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최후의 승자는 보일스턴인 듯.
그는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했고, 혼인 상태에 대한 별다른 소식은 없으며(무소식이 희소식), 2022년 서울에서 열린 발레 슈프림(Ballet Supreme) 공연에서 멋들어진 무대 spring water도 선보였다. 에너지 넘치는 생기 있는 무대였다. 여전히 ABT의 주역으로 왕성한 활동 중. 박수를 보낸다.
밀피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갈 것이다. 그러든 말든 별 관심도 없긴 하지만. 지금까지 그의 삶은 너무 쉬웠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른데, 그에겐 같았다. 돈과 사랑과 명예를 수월하게 얻어왔으니, 발레 영화 '라이즈'의 대사처럼 "좀 힘들어봐도 돼". 예술가로선 외려 거름이 될 수도.
가장 빛나는 존재는 나탈리 포트먼이 아닐까. 가장 믿었던 사람의 배신을 안고 전 세계에 그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묵묵히 쌓아갔다. 최근 개봉한 그의 신작 '메이 디셈버'를 그래서 오늘 보러 갈 예정. 그리고 포트먼에게 밤양갱 한 박스 보내주고 싶다. 회심의 미소를 속으로 짓고 있을, 이자벨라 보일스턴에게도.
영화 '메이 디셈버' 공식 스틸컷. 출처 네이버, 저작권 해당 영화사
갑자기 떠오른 노래, '밤양갱.'
가사가 새삼스럽다.
"(전략) 상다리가 부러지고 / 둘이서 먹다 하나가 쓰러져버려도 / 나라는 사람을 몰랐던 넌 / 떠나가다가 돌아서서 말했지 /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우린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아는 걸까.
안다고 생각하는 걸 아는 거에 불과한 건 아닐까.
사랑이 이제 무서운 나. 가끔은 그립지만, 그 불구덩이에 다시 들어갈 자신은 없다.
나를 아는 것도 어려운데 남까지 알고,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랑까지 하다니. 너무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