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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Nov 17. 2024

발레 에스메랄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1

Sujiney의 발레의 전설을 쓰다. 작품편

반가워, 내 이름은 에스메랄다. 성(姓)? 그런 건 모르겠어. 떠돌이에게 성이 뭐가 중요해. 직업은 집시. 거리의 무희라고도 하지. 그래, 춤을 춰서 먹고살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바게트를 사고 잠잘 곳을 마련할 수 있다는 건... 글쎄. 행운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어. 어쩌겠어. 나의 현실이잖아. 지금은 게다가 중세라고. 21세기에 사는 여러분처럼 계급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길은 아예 없어. 어쩌겠어. 즐겨야지.

낙천적이라고? 맞아. 내 장점 중 하나지. 젊음, 아름다움, 춤솜씨에 이어 낙천적인 성격. 젊음과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질 테지만, 낙천적 성격만큼은 호호백발이 돼도 갖고 있고 싶군. 세상에 영원한 건 없지만 말이야.  

그래서 지금 몇 살이냐고? 초면에 질문이 많으시네. 숙녀에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숙녀가 아니지 않냐고? 훗. 핵심을 짚어버리셨군. 그래, 난 숙녀라 할 수 없어.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었지.


발레 '에스메랄다'라는 작품이 내 이야기야. 원작은 위대한 소설가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노트르담의 꼽추'라고도 알려진 '파리의 노트르담.' 내 얘기만 듣자면 지루할 수 있겠네. 시간 없는 사람은 이 글 맨 아래에 '에스메랄다' 작품 탐구만 읽어도 좋아.         

 

영원한 에스메랄다, 김시현 양. 출처 및 저작권 Prix de Lausanne YouTube


다시, 내 얘기로 돌아가볼까. 인간은 필멸의 존재라지만 나의 이야기는 불멸로 남았어. 빅토르 위고라는 위대한 소설가에 의해 '파리의 노트르담'으로 영원히 살게 됐고, 심지어 발레로도 남았다지. 춤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어.

게다가 이 발레 작품에서 내가 탬버린을 들고 추는 솔로는 일명 '에스메랄다 배리에이션'으로 콩쿨이나 갈라 공연에 자주 등장한다며?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그 사람을 추기 위해선 먼저 그 사람을 알아야 하잖아.       


탬버린. By Sujiney


아까도 살짝 말했지만, 나는 가난해.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그다지 나쁘지 않아. 풍족하진 않아도 스스로 먹을 걸 벌 수 있어서 행복해. 결국 나를 책임지는 건 나 자신이라는 걸, 어린 시절부터 집시 생활을 하면서 터득했지. 19세기에 보기 드문 자립적 여자라고?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하고 싶지 않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더 많아. 어찌 보면 귀족이나 성직자들도 그렇지. 지켜야 할 재산과 명예가 많은 만큼,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존재들이야. 그래서 나는 부자가 그다지 부럽진 않아.


사진설명 위와 동일.


하지만 춤추며 살아가는 삶이 귀찮을 때도 많아. 내가 사랑하지 않는 남자들이 나를 사랑한다며 힘들게 하거든.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누군가도 나를 사랑해 줄 의무는 없어. 오히려 서로 사랑을 한다는 건 기적에 가깝지. 이 단순한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을까. 이 마을의 고위 성직자인 프롤로(Frolo)라는 사람처럼 말이야. 그는 자꾸 나를 유혹하려 해. 자기의 본분도 잊고 말이지.

프롤로에겐 충복이 있어. 그가 근무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Quasimodo). 등이 굽은 꼽추야. 내 이야기가 때로 '노트르담의 꼽추'라고도 불리는 까닭이지. 콰지모도는 착한 사람이야. 외양은 아름답다고 할 순 없어도 그의 영혼은 착하다는 거, 나는 느낄 수 있지.  




사람을 그리 쉽게 믿어서 어쩌냐고? 음...사실 내가 좀 쓸데없이 착한 구석은 있어. 인정해. 나도 답답해. 내 이야기 좀 들어봐. 얼마 전에 그랭구아르라는 특이한 이름의 시인이 동네 깡패들에게 붙잡혔는데, 돈이 없어서 죽임을 당할 위험에 처해있더라고. 나는 우연히 그 옆을 지나가다가, 그 시인이라는 작자가 너무 가여운 거야. 마침 우리 마을엔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한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는 여자가 있으면, 사형을 면할 수 있다는 희한한 법이 있어. 괴상망측한 법이지만, 뭐 악법도 법이라니까.

내가 그래서 정말이지 바보 같지만 말이야. 그랭구아르라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나서버렸지 뭐야. 초면이고 이름 발음하는 것도 아직 어려운 데 말이지. 에휴. 정말 이 오지랖. 프롤로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혹 하나 더 붙인 셈이야.

그런데 말이야. 내게 인생의 사랑이 나타나고 말아. 이름도 멋진 페뷔스(Phoebus). 근위대장이야. 아, 나의 페뷔스.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서 잠시 말을 할 수 없겠어. 너무 길어지기도 했으니, 우선 여기까지. 2회로 돌아올게.

'에스메랄다' 배리에이션을 추는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기를. 나의 열정과 밝음, 자립심과 어릴 적부터 겪은 산전수전의 스토리를 안다면 내가 왜 이리 계속 밸런스를 잡고 탬버린을 치고 끼를 부리면서도 슬픈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Bonne chance. Good luck.

내러티브가 아니라, 줄거리나 배경지식만 궁금한 분들은 아래 링크 클릭하시길.


https://brunch.co.kr/@sujiney/150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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