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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Nov 25. 2024

"사랑의 쓴 맛" 발레 에스메랄다

Sujiney의 발레의 전설을 쓰다. 작품편 (2)

안녕, 또 나야. 에스메랄다. 지난번에 이어 오늘은 나의 사랑과 집착, 배신과 희생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해.


집착과 배신이라니 무섭다고? 인생이 원래 무서운 거 아니겠어.


나를 발레 작품으로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프랑스 출신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한 말이 있어. "에스메랄다로 캐스팅해달라"는 당대 최고 발레리나 중 한 명에게 이렇게 물었다는군.

프티파="사랑, 해봤어?"
발레리나="당연하죠."
프티파="상처받았나?"
발레리나="당연, 아니죠."
프티파="그럼 안 되겠네. 이 역할은 사랑에 상처받아본 여성이 춰야 살거든."

사랑에 좀 울어봤다면, 그래, 날 춰도 좋아.     


프티파에게 그 질문을 했던 발레리나, 마리아 크센시스카. 출처 The Marius Petipa Society -
같은 발레리나, 다른 표정. 출처 The Marius Petipa Society -



지난번 회차에, 어디 보자. 그래, 내 사랑 페뷔스 이야기까지 했었지. 내 꿈의 남자. 외모뿐 아니라 내게는 고결한 성품까지 보여줬어. 그런데 역시 꿈이 이루어진다는 건 어려운 건가 봐. 이 남자, 알고 보니 정혼녀가 있더라고. 부유하고 아름답고 젊고 곱게 자란 아가씨. 이름도 플뢰르(Fleur), 꽃이란 뜻이야.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과정은 또 하나의 막장 드라마지. 페뷔스가 내게 사랑의 징표로 스카프를 줬었거든? 근데 그 스카프가 원래는 플뢰르가 페뷔스에게 준 거였지 뭐야. 나 참.

이건 시작에 불과해. 플뢰르네 부모님이 딸의 사랑과 예비 신랑, 즉 나의 꿈의 남자인 페뷔스를 위해 연회를 마련하고 무희들을 불러. 그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무희 중에 내가 주인공이었어.


내가 얼마나 실망을 했을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거야. 대체, 발레 작품의 남자들은 어쩌면 그렇게들 이기적이고 나쁜지. 할 말이 정말 많다고.  



1844년작 '에스메랄다' 발레리나는 전설의 무용수, 카를로타 그리시. 출처 The Marius Petipa Society -



하지만 다시, 내 얘기. 여차저차해서, 결국 나는 감옥에 들어가고 말아. 나를 사모했지만 내가 매몰차게 거절했던 성직자, 프롤로 기억나? 나의 거절에 분노한 프롤로가 누명을 씌우거든. 사형까지 받게 되지. 하지만 프롤로의 충복이었던 종지기, 콰지모도가 구출을 해줘. 여러 곡절 끝에 이야기 자체는 해피엔딩을 맞이하긴 해.     



1886년의 에스메랄다. 출처 The Marius Petipa Society -


중요한 건 이거야. 나의 이야기는 복잡하고도 미묘하다는 것. 사랑의 이야기인데 곡절이 많지. 나의 성격도 좀 복잡해. 나를 설명하는 단어로는 이런 게 있겠네. 열정, 도도함, 뜨거움, 사랑. 여기에 싫으면 싫다고 확실하게 의사를 표현하기도 하지. 오지랖도 있어. 전편의 그랭구아르 이야기를 떠올려봐. 불쌍한 남자 구해주겠다고 결혼한 건 좀 심했지.

여하튼, 나는 말이야, 색상으로 따지면 핑크보다는 열정의 레드. 발레라고 하면 핑크가 떠오르겠지만 나는 열외로 부탁해. 작품 의상은 대개 검은색과 붉은색이 섞이거나, 골드와 그린, 또는 오렌지 색도 많이 쓰긴 해. 탬버린도 잊지 말아 줘. 탬버린은 내 반려 염소(실제 줄거리에도, 러시아의 전막 발레에선 실제 염소가 등장!)와 함께 내 곁을 끝까지 지켜준 존재야.         


1845년의 '에스메랄다.' 역시 전설의 무용수, 파니 체리토. 출처 The Marius Petipa Society -



나를 추기로 했다면 지도자들에게 이런 표현을 들을 거야. 실제로 내가 빙의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Sujiney도 듣고 있는 말이지.

에스메랄다는 열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캐릭터. 몸 방향을 크루아제와 에파세로 각각 정확하게 끊어주기. 모든 순간을 밸런스라고 생각하기. 코어를 미친 듯이 잡고 있어야 해. 똑바로 서있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 알고 있지?

두 번째 시퀀스에선 턴이 나오지. 시선 처리와 탬버린 방향도 신경 쓰길 바라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쁠리에야. 깊게 눌러야 춤에 입체감이 살거든. 도는 게 걱정된다고 쁠리에를 건너뛰면? 결코 잘 돌 수 없어. 어중간해지지.

그러면서 표정도 중요해. 매 순간에 도도하고 열정적이면서 확신의 미소를 지어야 해. 눈 화장도 좀 무섭게 하는 게 좋겠어. 아이라이너는 선택 아닌 필수. 나의 회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생글생글 미소는 어울리지 않아. 복잡다단 인생, 고단한 일상, 그럼에도 사랑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의 이야기를 잘 전달해 주길 바라.

쉬워 보였는데, 뭐 이리 복잡하냐고? 고마워. 내겐 칭찬이거든. 뭐든지 쉽게 보이도록 하는 건 어려우니까.

이 세상 모든 에스메랄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사랑으로 받았던 상처와 아픔, 탬버린과 함께 날려버리길.


By Sujiney



참고자료

Esmeralda | The Marius Petipa Society - https://petipasociety.com/esmera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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